소설리스트

흙수저의 채무 탈출기-186화 (186/249)

#186

조우(7)

쿠웅- 쿠웅-

열쇠를 품고 있던 두 명의 인간이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모든 걸 꺼내어 버린 탓이었다.

모든 힘이 빠진 듯 그저 바닥에 누워 있는 둘.

죽은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쌔액쌔액거리는 숨소리가 예민한 그의 귀에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라이의 신경은 이내 열쇠에게로 되돌아갔다.

그에게 있어 인간 따위는 하찮은 날파리 같은 것들.

더군다나 이용 가치가 없는 인간들의 생사 여부 따위는 알 필요조차 없다.

열쇠.

오직 열쇠 만이다.

파아아아아앗-

여전히 빛에 둘러싸인 열쇠.

그런데 어느 순간에 얼음이 녹아 내리듯 사라져 버린 열쇠.

그 곳에 남은 건 그저 눈이 부시게 새하얀 빛덩어리 뿐이었다.

"...?"

빛에 눈이 침침해진 건가.

왜 갑자기 안 보이는 것이지...?

자라이가 재차 눈을 비비는 순간.

터져 나왔다.

순간 이 공간 전체를 가득 채우는 빛.

그 빛은 강력한 바람을 동원하며 일순 건물 전체를 날리며 바깥의 전장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윽-

자신도 모르게 팔로 눈을 가리는 자라이.

바라만 보기에는 그저 눈이 멀 것만 같은 느낌이었기에 본능적으로 취한 행동이었다.

잠시 후 주변을 가득 채운 빛이 사그라든 느낌이 들었다.

팔을 슬쩍 내리며 열쇠가 있던 곳을 쳐다보는 자라이.

헌데...

열쇠가 사라졌다.

대신 그 곳에 있는 건 허리까지 내려오는 새하얀 머리카락을 찰랑이는 한 명의 꼬마였다.

뀨~?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입에 문 채 자신을 쳐다보는 어린아이.

'이럴 수가... 이게 다 무슨...?'

팟-

순간 아이가 사라졌다.

"여...열쇠...는?"

어찌나 당황했는지 말조차 제대로 못 잇는 자라이였다.

****

정체 모를 빛을 머금은 해일 같은 바람이 전장을 휩쓸기 전.

전반적인 전장의 상황을 둘러봤을 때에는 전체적으로 마수들이 점점 밀리는 형세였다.

아무래도 데려온 마수들의 수가 적은 탓도 있겠지.

게다가 이 곳으로 치고 들어온 인간들.

인간계에서도 손에 꼽히는 강자들이 이끄는 자들 아닌가.

그 탓에 여기 이 전장에서 제일 고생하고 있는 자.

어글리불이었다.

헉헉헉-

쉽지 않네.

숨을 잠시 고르는 어글리불.

그의 상징임에 다름없던 보라색의 연미복.

어딘가에 찢겨나간 듯 상의의 꼬리 부분이 중간 즈음부터 부욱 찢겨져 나가고 없다.

"처음의 그 자신만만하던 모습은 어디로 갔냐? 이번에는 잡는다며?"

비웃는 듯한 말투.

의기양양한 자세로 말을 내뱉는 데프트였다.

험험-

그제야 옷매무새를 다듬는 어글리불.

"오호홍. 이 정도 뭐 별 것도 아니죠."

"왜? 이번에도 하다가 안 돼면 지난 번처럼 꽁지 빠지게 도망가려고?"

"아...아니! 누가 꽁지 빠지게 도망갔다고!"

순간 발끈하는 어글리불.

애써 미소를 유지하고는 있으나 볼살이 푸들푸들 떨리는 게 참느라 여간 고역이 아닌 듯했다.

"뭐 그건 그거고 난 공주님만 찾으면 되니까. 저 안에 있는 게 맞겠지? 결계까지 친 채로 이렇게까지 있는 걸 보면 말이지. 자~ 그럼 2라운드 개시다."

라며 데프트가 다시 공격을 하려는 순간.

그보다 조금 먼저 선수를 치는 자들이 있었다.

스아아아악-

동시에 양 방향에서 치고 들어오는 자들.

순간.

헙-

어글리불의 몸이 허공에서 팽그르르 돌았다.

그리고 그가 서있던 자리에 치고 들어오는 마수의 앞발과 강력한 기운을 품은 대검.

퍼어어어어업-

쩌저적-

순간 커다란 구덩이가 패였다.

쿠당탕탕-

그리고 균형을 제대로 못 잡아버린 어글리불이 볼썽사납게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것들이 내가 맛집이냐!!!"

처음으로 평정을 잃어버린 어글리불의 연미복이 그가 폭사해 낸 기운들로 펄럭였다.

그리고 자신을 그 꼴로 만든 자들의 정체를 확인한 어글리불.

그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아니... 너... 그 때 그..."

확실하다.

그때 키린의 기운을 품고 있던 그 못생긴 녀석.

더군다나 옆에 헬캣까지 있으니 이건 뭐 빼박이 아닌가.

-빨리 처리하자.

"제가 할게요. 그냥. 저 정도는 이제는 쉽게 하겠죠."

그때 약간 벙진 표정으로 서있던 데프트.

"야! 저거 내 거야! 누군데 내 일에 끼어드는 것이지? 보아하니 복장이며 싸우는 폼하며 딱 봐도 마수 사냥꾼 같은데. 나와 함께 온 협회 인물들 중에 너처럼 못생긴 녀석은 없었는데...?"

체스의 고개가 살짝 돌아가며 그는 자신에게 말을 꺼낸 데프트 쪽을 힐끗 보았다.

'뭐야? 기사야?'

저렇게 말을 하는 걸 보니 방금까지 어글리불을 상대하던 게 바로 이자 같았다.

그리고 금빛의 갑옷.

딱 봐도 갑옷이 번쩍번쩍거리는 게 누가 봐도 높은 직위의 기사 같았다.

허나 또 친하면서도 친하지 않은 게 바로 마수 사냥꾼들과 공무원들과의 관계였다.

체스 또한 마찬가지.

딱히 저런 말에 반응하고 싶지도 않고 신경도 쓰고 싶지않다.

어차피 자신은 할 일만 하면 되니까.

이내 고개를 어글리불에게 돌려버리는 체스.

"야. 너 내가 도대체 누군지 알고??????"

황당하다는 듯 재차 말을 하는 데프트.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타앗-

대신 힘껏 도약하는 체스.

엉겁결에 무시를 당해버린 데프트가 발끈하려는 그때.

헬캣이 그의 앞을 막았다.

-저 녀석에게 맡겨라.

"에??????"

-목표는 같으니 저 녀석에게 맡겨도 된다.

...무슨 이런 일이.

도통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 데프트였다.

****

한편 어글리불에게 도약한 체스.

어엇...!!!

화들짝 놀라버린 어글리불의 화장기 짙은 얼굴.

순간 그 자리를 피하기 위해 그는 자신의 기척을 빠르게 옮겨갔다.

허나.

그가 모르는 것이 있었다.

체스가 얼마나 강해진 것인지.

그간 체스에게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는가 말이다.

팟-

팟-

팟-

연신 주변에 있는 마수들의 뒤로 몸을 숨겨가며 한 번씩 공격을 이어가는 어글리불.

'고작 그렇게?'

체스의 머릿속에 훤히 그려지는 어글리불의 움직임.

연거푸 몇 장의 카드가 그에게 날려질 때마다 체스는 가볍게 공격을 흘려내며 어글리불과의 거리를 점점 좁혀갔다.

"이익... 이 찰거머리 같은 녀석이..."

카드를 날리는 족족 막혀버리는 공격.

아주 깔끔한 방어를 겸한 접근이었다.

그리고 어글리불이 좀더 많은 카드를 날리려 할 때.

큰 걸음으로 도약을 한 체스가 갑자기 어글리불의 머리 위에 나타났다.

"잡았다. 이 놈."

슈와아아아악-

아예 도망을 못 가게 클링어를 날려 어글리불의 옷깃에다 박아버린 체스는 한 손으로 대검을 힘껏 내리찍었다.

퍼어어억-!!!!!!

단 한 방.

그 한 방으로 우위가 점해졌다.

어어 하는 사이에 불쑥 들어온 공격.

화들짝 놀란 어글리불이 두 팔을 교차시켜 그의 공격을 힘겹게 막아내었다.

하지만 그 여파는 엄청났다.

어글리불의 등 뒤로 터져 나가는 공격의 여파.

순식간에 연미복의 상체 부분이 다 찢겨져 나가며 그는 볼썽사납게 땅에 처박혔다.

쿠우우우우웅-

엄청난 굉음과 함께 땅에 파묻혀 버린 어글리불.

슈와아아아아-

바로 그때.

저 안쪽에서부터 흘러 나온 눈부신 빛이 강렬한 바람과 함께 모두를 덮쳐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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