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
조우(6)
에?
몸을 돌려 나가려던 어글리불의 몸이 다시 뒤로 돌았다.
"얼마 남지 않았다. 네 녀석도 이리저리 잔머리 굴리는 건 그만해라."
나름의 충고이자 끝날 때까지 버티라는 말이었다.
자라이의 말에 어글리불의 입꼬리가 더욱 길게 늘어졌다.
'뭐야? 알고 있었나?'
그래봤자 뭐.
허나 그의 속내와는 다르게 내뱉어지는 어글리불의 말.
"잔머리라뇨~ 전 언제나 하르무 님과 같은 마음일 뿐입니다."
'오홍~ 그나저나 내 결계를 깬 놈은 누구려나?'
왠지 재미있어 질 것 같은 느낌에 혀를 내밀어 입술을 살짝 핥는 어글리불이었다.
결계는 어차피 보여주기 식이다.
자고로 모든 일은 스릴이 있어야 나중에 느끼는 보람 또한 커지는 법.
모든 일이 쉽게 간다면 재미없지.
그런데 또 즐거워지는 게 아무리 임시방편이라한들 쉽게 깰 수 없는 결계이거늘.
자신의 결계를 깼다는 말은 자신과 동급 혹은 그 이상이라는 말이 맞긴 한데...
누구일까?
'뭐~ 계획은 성공하고 같이 죽어만 준다면야 더할 나위 없지~'
"다녀오죠."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여전히 열쇠에 시선을 고정한 채 그것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자라이였다.
그의 뒤통수에 대고 위협적으로 손을 흔드는 어글리불.
"...뭐하냐?"
헛짓을 하면 찍어발라버리겠다는 듯한 자라이의 목소리였다.
"아. 뭐가 날아다녀서요~"
그리고 그가 나가는 모습을 본 자라이의 중얼거림.
"광대 놈."
****
한편 밖으로 나온 어글리불.
"와우~ 개판이네?"
즐거워보이는 듯한 그의 표정.
그의 시야에 들어온 전장.
한 마디로 난장판이다.
한 쪽은 뚫으려는 자.
한 쪽은 막으려는 자.
사방팔방 바닥에 뿌려진 피며 사체는 전장이 얼마나 격렬한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오호호홍~ 다 죽여라."
그의 말에 어글리불을 따라나온 마수들과 인간들이 전장에 합류했다.
"나만 살아남으면 더 좋고~ 룰루~"
촤라락- 촤라락-
카드를 섞어가며 피 튀기는 비명소리를 벗 삼아 흥겹게 몸을 들썩이는 어글리불.
바로 그때.
그의 눈에 번쩍이는 무언가가 들어왔다.
"얼레? 저거?"
분명히 아는 녀석이다.
자신의 걸음을 멈추게 한 자.
땅딸막한 몸에 고무공 마냥 몸을 퉁퉁 튕기던 녀석.
왕궁에서였지 아마.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번득이는 빛을 발하며 마수들을 쓰러뜨려가는 그 자.
순간 어글리불의 눈이 이글이글 불타올랐다.
'저 새...'
"오호호호. 가볼까?"
덴테를 비롯한 오픈도어의 인간들에게 지시를 내린 어글리불이 몇 마리의 인간형 환수들을 데리고 데프트에게 달려들었다.
촤라락-
그의 손에 펼쳐진 52장의 카드.
"자~ 그럼. 맛보기로."
혀를 날름거리는 어글리불.
순간 그의 정면에 떠오르는 카드들,.
허공에 52장의 카드가 사악 정배열되어갔다.
다시 한 번 어글리불의 손이 춤을 춘다.
그와 동시에 빠른 속도로 쏘아지는 그의 카드들.
쌔애애애애액-
푹- 푹- 푹푹-
땅에 박혀가는 카드들.
카드가 꽂힌 곳은 정확하게는 금빛 구체가 지나갈 방향.
그 와중에도 빠른 속도로 이동을 이어가는 금빛 구체.
그리고 그 구체가 카드가 있는 지점에 도달한 순간.
퍼퍼퍼퍼퍼펑-!!!
엄청난 굉음과 한께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폭발.
그 탓일까?
미묘하게 데프트의 속도가 조금씩 느려지는 듯한 느낌 아닌 느낌이 들었다.
"오호홍. 뜨끈뜨끈하지?"
야릇한 미소와 함께 스르륵 가라앉은 어글리불의 몸.
어느 순간 자신의 그림자 속으로 스륵 빨려 들어가는 어글리불이었다.
****
한창 전투가 물이 올랐을 때.
저 시선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두 명.
자세히 말하자면 인간 하나와 작디 작은 애완동물로 보이는 한 마리의 동물.
체스와 헬캣이었다.
죽다 살아난 둘.
그리고 그 후 켄타의 의뢰를 처리하기 위해서 이 곳까지 달려온 그들이었다.
"이거 엄청난데요?"
눈앞에 펼쳐진 현재진행형의 싸움.
-몸은 어떠냐?
"까닭은 모르겠지만 너무 멀쩡한 것 같은데요?"
-조심해라. 그 녀석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네가 살아있는 걸 안다면 또 같은 일이 반복되지 말라는 법이 없으니.
재차 몸을 조심하라며 체스에게 강조하는 헬캣.
"걱정 마세요. 제 몸은 제가 이제 챙길 수 있어요. 이제는 기운을 어느 정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다행이다만 방심은 금물이다.
한 번 당했던 터라 꽤나 염려하는 말투의 헬캣이었다.
당시 페릴턴에게 꽤나 당해버렸던 체스의 몸.
그때 체스는 거의 시체에 진배 없던 상태였다.
하지만 그 전부터 체스의 몸에 잔뜩 섞여 있던 온갖 기운.
그 기운들은 본디 하나의 그릇에 담기에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기운들이었다.
본인이야 느끼지 못했겠지만 죽어가던 그 때만 해도 체스의 몸 안은 소리 없는 전쟁터였으니.
허나 죽을 뻔한 위기를 겪었을 바로 그때.
체스가 아무 것도 모르던 그 시절.
그저 그런 마수 사냥꾼 시절이었을 무렵 키린과의 우연한 인연으로 얻게 된 그의 기운.
그 기운이 중간에서 중화를 적절하게 해주었다.
온통 열과 열로 가득 찼던 체스의 기운에 차가운 키린의 기운은 정말이지 안성맞춤인 재료가 아닐 수 없었다.
"오히려 헬캣 님이 조심하셔야 하는 것 아니에요? 킬킬."
체스의 말에 헬캣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 자식이...
아마도 지난 번에 뻗어 있던 자신을 보고 하는 소리겠지.
헬캣은 체스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심장 하나가 사라진 것.
뭐 괜히 사서 걱정을 할 필요는 없잖은가.
게다가 이제 더 이상 심장을 잃을 일도 없을 터.
그때는 다소 방심한 탓도 있었으니 말이다.
-보여주지. 이 몸의 우월함을. 자식아.
스륵-
헬캣이 자신의 몸을 원래대로 돌렸다.
위풍당당한 모습의 헬캣.
그 모습을 보며 살짝 미소를 띠우는 체스.
그는 자신의 대검을 스릉 뽑아 들었다.
"그럼 가볼까요?"
-흥. 건방진 녀석. 갈수록 뺀질뺀질거리는구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전장으로 뛰어가버리는 헬캣.
피식-
"삐쳤네. 삐쳤어. 으흐흐흐."
살짝 웃음을 띈 체스도 먼저 빠르게 달려가는 헬캣의 뒤를 좇았다.
"거 같이 가요~"
****
여전히 바깥은 시끄러웠다.
하지만 혼자 남은 자라이의 신경이 쏠린 곳은 오로지 여기.
"흠. 이거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이지? 하르무 님이 다시 와야 하는 건가? 그리고 각성이 다 된다면 열쇠를 들고 가면 되는 것인가?"
지금껏 열쇠가 만들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듣기로는 환수계의 어디에 열쇠를 두는 제단이 있다고는 하던데 자라이 자신도 더 이상의 상세한 내용은 몰랐다.
흐음...
괜히 생각이 많아지는 그때.
열쇠의 변화가 시작되었다.
순간 열쇠가 스르륵 녹는다 싶더니 눈이 시리도록 새하얀 빛이 이 공간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