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
조우(4)
작업은 거의 막바지였다.
갈라져 있던 열쇠의 나뉘어진 부분들.
서로를 끌어당기며 일어나는 공명.
우웅~ 우웅~ 우웅~
연이어 일어나는 진동.
벽이 떨릴 정도다.
게다가.
슈아아아아-
마치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빛을 뿜어내는 2개의 열쇠조각.
아주 순조로운 진행이었다.
각자의 꿍꿍이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이유야 제각각 다르겠지만 어쨌거나 환수계와 인간계의 연결.
그것을 바라보는 이들은 모두 한 가지 목표로 이 자리에 있는 것이었다.
"이제 거의 끝인가?"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자라이가 자세를 풀며 중얼거렸다.
이제야 자신들이 그리고 자신의 주인이 원해 마지않던 일이 마무리되어 간다.
일찍이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원래 자신들의 땅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말이다.
"고생하셨습니다. 자라이 님."
"그래. 어글리불. 인간들은 뭘 하고 있지?"
"제가 만들어 놓은 결계에서 대부분은 경계를 하고 있습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단지 여길 찾지 못했을 뿐. 우리는 이게 끝날 때까지 안전하게 작업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얼마 남지는 않은 듯하지만 말이지."
"암요~ 지당하신 말씀입죠~ 오호호호호홍."
팽그르르 돌아가는 어글리불의 카드들.
어글리불의 입꼬리는 너무 기쁜 나머지 귀 부근까지 쫘악 찢어졌다.
인간계로 넘어오게 된다면 보상은 확실하다.
자신도 주인 정도의 지역을 가질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지역이 좋을까?
산이 많은 곳?
아니면 물가?
그것도 아니면 먹이가 잔뜩 깔린 곳?
어글리불의 입꼬리가 더욱 찢어지며 행복한 상상에 젖어들었다.
****
한편 어글리불이 만들어 놓은 결계의 바로 안쪽.
결계가 깔린 곳에는 환수들을 포함한 오픈도어의 인원들이 잔뜩 깔려 있었다.
그들이 하는 일은 결계 바깥 쪽에서 누가 들어오려고 하는지 살피는 것.
"그나저나 이거 신기하단 말이지..."
한 명의 남자가 결계의 벽을 토옹 두드렸다.
그러자 물결이 퍼져 나가듯 결계 전체로 퍼져나가는 진동.
"더 신기한 건 뭔지 아냐? 밖에서 안이 안 보이나 봐."
"이런 게 있는 지 처음 알았네 진짜."
결계라는 것.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있지만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없다니.
듣기로 이 결계는 밖에서 바라보았을 때에는 그저 주변의 풍경과 똑같이 보인다고 했다.
허참.
연이어 결계를 두들겨 보는 남자.
그럴 때마다 동심원이 계속 퍼져 나간다.
"야. 그만해. 괜히 뭔 탈 날라."
"왜~ 신기하잖냐. 그나저나 이거 아무도 안 올 것 같은데 그냥 빠져도 되지 않아?"
"아서라. 그러다가 저 안에 인간 같지도 않은 것들한테 맞아 죽어. 옆에는 안 보이냐?"
나머지 한 남자가 핀잔을 준다.
그 말에 둘의 눈이 동시에 옆쪽으로 힐끗 기울어졌다.
둘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마수들이 몇 마리씩 떼를 지어 모여 있었다.
자라이가 데려온 것들.
생김새는 각양각색이다.
처음 보는 마수들도 제법 눈에 들어온다.
들개처럼 생긴 마수들.
양팔이 땅에 닿을 정도로 축 늘어진 마수들.
부채처럼 생긴 꼬리를 계속 펄럭이는 마수 등
그리고 감시용으로 쓰기 딱 좋을 것 같은 사람 몸집 만한 두 눈만 빼꼼히 땅 위로 드러낸 마수하며...
주위를 곁눈질로 힐끔거린 후에야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남자.
'아~ 그렇지...'
지금이야 같은 편이지만 혹여나 저것들이 머리가 홱 돌아버린다면...
으으으...
얼른 정면으로 고개를 되돌린 남자.
"...아. 하긴. 그나저나 저것들은 다 어디서 나타난 거래? 그리고 확실히 같은 편인 건 맞지?"
"몰라. 나한테 물어본다 한들 내가 뭘 알겠냐? 나도 마수와 이렇게 가까이 있는 건 처음이라..."
"어휴... 심장이 벌렁벌렁거린다. 그냥 빨리 끝내고 갔으면 좋겠구만."
마수들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살살 이야기하는 둘.
"...우리는 우리 할 일이나 하자고."
"뭐 별일은 없겠지?"
라며 입을 떼는 순간.
바로 그때.
눈알만 빼꼼 땅으로 솟아 오른 마수의 커다란 눈이 일순 뒤룩 움직였다.
그 행동에 반응을 하기 시작하는 다른 마수들.
크르릉-
결계 안으로 마수들의 기운이 사아아 퍼져가고 살기가 퍼져 나간다.
그 이유.
저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한 무리의 인영들 때문이었다.
"헉! 쟤들 뭐냐?"
그 사이 점점 결계 쪽으로 다가오는 인간들.
그들은 왕실군과 마수 사냥꾼 협회의 마수 사냥꾼들이었다.
"야야야. 안에 알려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런데 안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잖냐...? 그럼 그냥 지나가지 않을까?"
아~
맞다.
그렇지.
확실히 그랬다.
지금 저들의 행동을 보아하니 이 쪽을 알아차리지 못한 듯 보였다.
"...시바...ㄹ... 왕실군이네. 협회도 왔고."
면면이 화려하다.
기사단장부터 랭커들까지...
먼 발치에서나마 지켜보던 으리으리한 인간들이 지금 이들의 주위를 서성이고 있었다.
꿀꺽-
"...별일 없겠지...?"
"...없어야지... 별일..."
속으로는 그들이 얼른 사라지기만을 바라 마지않는 그들이었다.
'제발 가라 가라 가라...'
****
돌고 돌아 그들이 있을 만한 곳은 다 찾아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실마리를 찾게 되어 도달한 이 곳.
피로가 역력한 데프트의 얼굴.
하지만 피로 따위는 지금 그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공주를 얼른 찾아야 한다.
그리고 한 명 더.
"여기 맞냐? 틀리면 죽인다 진심."
살기가 또렷히 느껴지는 데프트의 목소리다.
포박 당한 한 남자에게 던져진 결코 가볍지 않은 말.
우연히 사로잡게 된 오픈도어의 인물이었다.
"네! 네! 분명히 여기로 오라고 했어요!"
"그런데 왜 아무 것도 없지?"
"그... 그건..."
잡힌 남자 또한 이유를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
그래도 이 목숨 하나 유지하고자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모두 넘겼거늘 왜 여기 당연히 있어야 할 게 없단 말인가!!!
...애초에 낙오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때 들려오는 목소리.
"그냥 죽이죠."
헉-!!!
"자...잠깐만요. 제가 뭔가 더 생각이 날 듯도 한..."
죽고 싶지는 않다.
젠장. 젠장. 뭐가 더 있었지?
얼른 생각해 내야 한다.
뭐지? 뭐지?
"아~ 잠깐. 조용."
데프트가 부하의 행동을 멈추게 했다.
그리고 브로드와 눈을 마주치는 그.
둘의 고개가 동시에 끄덕여졌다.
"그랬군. 그래서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었군. 내가 하겠소."
"아니. 내가 하겠소."
나서는 브로드를 제지한 데프트.
"잠시."
그의 말에 주위의 사람들이 살짝 물러나기 시작하자마자 데프트가 움직였다.
투웅- 투웅-
빠르게.
빠르게. 더. 더.
강렬하게.
그리고.
순간 그어지는 실선.
퍼져나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마침내 모든 결계에 퍼져나간 금.
일순 모든 것이 허물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