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
조우(3)
호아호아호아호아리우리우리우~~~~~~
남쪽 주인의 고함.
크리스탈의 벽을 넘어 전해지는 외침.
호아류를 부르는 그 목소리는 고스란히 내부에 전달되었다.
두두두두-
그 고함 탓일까.
크리스탈이 심하게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후두두둑-
바닥에 우수수 떨어지는 크리스탈의 부스러기들.
마치 눈이 내려앉듯 무게를 잡고 앉아 있는 자의 어깨에도 소복히 내려앉는 그것들.
허나 그는 미동조차 않은 채 계속해서 무게를 잡고 있었다.
"...열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호아류 님."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호아류의 좌측에 선 남자에게서 흘러 나왔다.
하지만 여전히 후드를 뒤집어 쓴 호아류는 미동조차 않았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후드 밑자락 너머로 보이는 다소 얄팍한 선홍빛의 입술이 살짝 열렸다.
"내비둬라."
그도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하르무가 저렇게 하는 것도 그리고 부르사이와 키린이 왜 이 곳에 와있는 지조차 말이다.
아니 오히려 그럴 줄 알고 있었는 듯 너무나 차분한 그의 태도였다.
그리고 그 주인에 그 부하다.
"네."
그저 단답.
별다르게 관심이 없다는 표정이며 말투.
그러나 밖에 있는 자들은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둘 생각이 전혀 없는 듯했다.
행동으로 뒤따라오는 소리.
콰아아앙-
무언가 박살이 나는 소리.
힘으로 밀어낸 것이다.
일순 호아류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렸다.
허나 금세 예의 표정으로 되돌아 온 그.
뭐 어차피 둘 중에 한 녀석이겠지.
그는 의자에 몸을 푹 담근 채 불청객을 기다렸다.
****
크리스탈에 붉고 푸른 빛이 비쳐 무언가의 색을 합성해 낸다.
그 빛의 주인공들.
씩씩대며 들어오는 붉은 빛을 뿜어내는 부르사이.
반면에 무덤덤한 표정으로 들어오는 키린.
시리도록 푸른 빛을 뿜어내는 것과는 달리 표정은 오히려 지나치게 평온한 키린이었다.
"야! 호아류! 너 미쳤냐???"
다짜고짜 화를 내는 부르사이.
그녀의 말을 들은 호아류의 옆에 서있던 남자.
잘 벼린 칼 같은 인상을 주는 남자였다.
이제서야 밝혀지는 그의 이름은 바이야.
켄타와 똑같은 등급의 환수이자 호아류의 직속이었다.
"끼어들지 마라. 네 녀석이 끼어들 장소가 아니다. 죽. 고. 싶. 은. 게. 냐?"
순간 진득한 살기가 부르사이에게서 터져 나온다.
몹시도 불쾌한 듯한 그녀의 눈에서 짙고도 짙은 핏빛의 안광이 뿜어져 나왔다.
그때 슬쩍 움직이는 호아류의 손.
그리고는 이내 아래로 무언가를 잡아채는 손짓을 하자 바이야를 향해 뿜어져 나오던 살기가 사악 걷혔다.
연이어진 호아류의 행동.
그가 손을 슬쩍 젓자 허리를 깊숙이 숙인 바이야가 이내 그 자리를 물러났다.
"너 조심해라.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
으름장을 놓는 부르사이.
허나 바이야는 고개만 슬쩍 숙이는가 싶더니 이내 그 곳에서 사라락 형체를 지워나갔다.
****
그가 물러가고.
셋만 남은 방 안.
"넌 도대체 누구 편을 드는 거냐?"
직진으로 훅 들어오는 부르사이의 질문.
"편이라. 난 편을 들진 않아. 그저 중재자이자 마지막 주인으로 내 역할에 충실한 것 뿐인데?"
"하? 그게 말이냐? 그럼 넌 하르무가 저렇게 환수계와 인간계가 연결되어도 상관이 없단 말이야???"
"그게 뭐가 어떻지? 따지고 보면 거기도 원래 우리 땅이 아니었나?"
"......그...그건."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그 먼 옛날 환수와 인간들이 어울려 살던 그 시기.
그 때로 거슬러 올라가면 호아류의 말은 전혀 틀린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지 않나?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환수들이 넘어가게 된다면 인간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입게 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
"하르무가 저렇게 움직이는 것 넌 이미 알고 있었지? 왜 하르무는 안 잡고 키린 이 녀석만 불쌍하게 잡아두는 거야???!!!"
연이어 따지고 드는 부르사이.
그녀에게는 이런 질문을 할 자격이 있었다.
그리고 대답을 들을 권리도 있었다.
당당하게 팔짱을 낀 채 얼른 대답을 하라는 듯 고개를 꼿꼿이 치켜든 그녀.
"나는."
"호아류지. 아하하하하하하하. 웃기지? 그렇지? 아하하하하하하."
방금 자신의 행동이 너무나도 재미있다는 듯 배를 잡고 낄낄거리는 키린.
냉풍이 순식간에 훈풍으로 바뀌었다.
키린이 있는 곳만.
이 심각한 대화가 오가는 와중에도 그는 완전 태평한 모습이었다.
아니 오히려 즐기고 있는 중인 키린이었다.
"...정신차려라. 임마.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봐야 아냐?"
화아악-
일순 부르사이의 불길이 거세졌다.
"그거야 냄새 맡아보면 알지. 아하하하하하하."
...썩은 개그.
부르사이의 몸이 거세게 떨리기 시작했다.
주인 한 놈 한 놈이 제 정신인 녀석이 없다.
정말 자신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흐흐흐.
키린의 그 모습에 일절 표정의 변화가 없던 호아류의 입에서 비릿한 웃음이 흘러 나왔다.
"키린 네 녀석처럼 살면 참 보람찬 삶일 것 같기도 하군."
절대 벌어지지 않을 일에 대한 상상에 빠지는 호아류.
허나 이 곳에서 부르사이는 지극히 정상적인 존재였다.
"개소리하지 마. 호아류. 이거 정식으로 주인들의 회의에 상정하겠어. 하르무가 통로를 연결하는 것."
더 이상은 두고 볼 수 만은 없는 부르사이였다.
"흠. 그렇게 해. 내가 너희들의 행동에 제약을 걸 수는 없지. 하지만 결과는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지. 너희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이지."
"그게 말ㅇ..."
"잠깐."
발끈하는 부르사이를 제지하는 키린.
좀처럼 보기 힘든 정색하는 키린의 얼굴이었다.
푸른 머리카락이 그의 현재 심정을 표현하기라도 하듯 시리도록 푸른 빛을 더욱 발했다.
"네 말인즉슨 너 또한 찬성하는 것 같다만은... 그렇다면 그 과정에서 인간들이 피해를 입는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말이지?"
"그렇지. 나 또한 이 환수계라는 감옥 속에서 평생을 살아가느니 다시 우리가 인간들 위에 서는 것 또한 나쁘지 않다고 본다. 우리 환수계와 인간계가 합쳐진다면 그 과정에서 약한 쪽이 도태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지."
"그래서 하르무가 그렇게 움직이는 것에 대해 별다르게 제지를 하지 않는 것이었군 역시. 중. 재. 자가 말이지."
"말이 중재자지 내가 언제 너희를 중재하기는 했나?"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차피 주인들은 모두 동격의 존재.
물론 무력 만을 놓고 봤을 때에는 조금씩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여하튼 그들은 유일무이한 환수계의 SSS등급의 환수들이자 주인들이었다.
"그래. 그럼 하르무가 움직이듯 우리도 움직이지."
"그렇게 해. 하지만 이미 늦은 게 아닐까 싶다."
순간 둘의 기감에 포착된 무엇.
퍼뜩-
호아류의 말과 동시에 둘의 고개가 어디론가 홱 돌아갔다.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