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
조우(2)
사락-
바람 탓인지 그가 끌어올린 기운 탓인지 부풀어 올랐던 옷이 스르륵 가라앉았다.
한 가닥 흘러 내려온 머리카락을 손바닥으로 쓸어 올린 레스티.
더 이상 둘 사이에 말은 없었다.
대신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뒤엉키기 시작하는 둘의 기운.
전력 대 전력이었다.
스륵 몸을 띄우는 레스티.
그를 바라보며 페릴턴의 만병 또한 떠오른 채 정확하게 레스티에게로 겨냥되었다.
후웁-
깊게 숨을 들이마신 그.
그런 후 그는 양 팔을 살짝 들어올리는가 싶더니 이내 양 손바닥을 앞으로 밀듯이 내질렀다.
"천수장!!!"
그의 외침 후 허공에 생겨난 하나의 푸르른 손바닥.
레스티의 기운이 만들어 낸 장관이었다.
허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마치 폭주하는 것처럼 숨도 쉬지 않은 채 내질러지는 레스티의 장.
순식간에 하늘을 가득 뒤덮은 그의 손바닥.
그것들은 이내 페릴턴의 시야를 푸르게 물들여 갔다.
하지만 저기에 넋을 잃고 있다가는 자신의 생명을 내던지는 것과 매한가지.
'강하군.'
느껴지는 기운 자체가 만만하지가 않다.
그의 온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으니.
허나.
승부는 승부.
페릴턴의 만병들이 움직인다.
그의 모든 기운이 실린 만병들이 하늘을 날아오른다.
그리고는 계속 이어지는 레스티의 공격을 맞받아쳐 가는 페릴턴.
퍼어억-
퍼어어억-
퍼어어억-
하나씩 소멸되어 가는 레스티의 공격.
하지만 소멸된 것보다 남은 게 훨씬 많다.
그리고 미처 받아치지 못한 레스티의 공격이 페릴턴이 있던 곳을 직격했다.
콰과과과과과과광-!!!!!!
엄청난 폭음.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났다.
****
헉- 허억- 헉-
거친 숨을 몰아쉬는 레스티.
이 정도의 기운을 쏟아낸 게 도대체 얼마 만인지.
후아...
그제야 호흡을 고른 레스티였다.
전투는 끝났다.
아무리 그래봤자 결국 이 정도였던 것이지.
다시 예의 인자한 옆집 할아버지 같은 모습으로 돌아온 레스티.
그는 허리를 두들기며 다시 자신이 가려던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그 찰나.
감당하기 힘든 기운이 터져 나왔다.
주인조차도 압도할 듯한 기운.
그 곳은 정확하게 자신의 마지막 장이 작렬한 곳이었다.
점점 커져가는 기운.
"하늘을 삼킬 것이다!"
어느 순간 정점을 찍은 기운은 이내 뒷짐을 진 자신에게로 맹렬히 폭사되어 왔다.
헙-!!!!!!
...젠장.
급하게 기운을 끌어올리는 레스티.
흐어어어어어압-!!!
콰아아아아아앙-!!!!!!
터졌다.
아예 레스티를 쥔 채로 터뜨린 듯한 페릴턴의 기운.
일순 레스티의 다리가 비틀거렸다.
막아는 내었다.
커헙-
순간 왈칵 쏟아지는 핏물 한 덩이.
그리고 그 안에 점점이 보이는 내장 부스러기.
'이거... 한바탕 더 뒤집어지겠군...'
그때 한 번 더 그 기운이 몰아쳤다.
이번에는 더욱 강한 기세.
그 기운은 아예 레스티를 압사시켜버릴 정도로 힘껏 그를 짓눌렀다.
콰과과과과과과-
스아아아아아-
흙먼지가 걷혀간다.
그리고 하늘을 바라본 채 누워있는 반쯤 초점 잃어버린 레스티의 눈.
"...허허... 하늘이 이리도 맑았던가."
왜 이리도 좋은 걸 잊고 살았나 싶다.
모든 게 끝난 후에야 이 생명이 끝나가는 지금에야 이걸 알았다니...
레스티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때.
저벅저벅-
레스티에게 걸어온 페릴턴.
"잘 가시오."
"...허허. 멀리 못 나가네."
농담 섞인 레스티의 마지막 말이었다.
푹-
잠시 후 옆으로 툭 돌려지는 레스티의 고개.
그렇게 랭킹의 순위가 바뀌었다.
단 둘만 아는.
관전자 하나 없는 어느 곳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페릴턴도 그 곳을 떠나갔다.
남은 건 그저 동그랗게 만들어진 무덤 하나.
그 뿐이었다.
****
검푸른 공간.
그 곳에 둥둥 떠있는 크리스탈들.
검푸른 배경에 각각의 빛이 섞인 모습은 신성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하다.
그리고 그 공간을 빈 틈 없이 빼곡히 채운 건 수많은 크리스탈들.
거기에서부터 반사된 빛은 끊임없이 굴절하고 또 굴절하며 하나의 종착역을 향하고 있었다.
그 빛들이 향한 곳은 이 끝이 보이지 않는 공간 중 어림잡아 정중앙.쯤 되는 곳.
그 곳은 지금 불청객을 맞이하는 중이었다.
불청객이라고 하기에는 또 뭐하다.
이들은 여기에 올 수 있는 자격을 넘칠 정도로 가진 둘이었으니.
끝자락에 서있는 둘.
키린과 부르사이였다.
이 곳은 환수계의 정중앙이자 호아류가 거주하는 곳이자 주인들이 모이는 곳.
그렇기에 둘은 당연히 자신들이 와야 할 곳을 온 것이었다.
비록 초대를 받지는 않았지만.
"야! 안 열어줄 거야?"
둘과 얼굴을 마주 한 문지기 둘.
그리고 그 뒤의 굳게 닫힌 문.
이들의 임무는 오직 이 문을 지키는 것.
허락 받지 않은 자들에게서 목숨을 바쳐서라도 이 곳을 지키는 것이 바로 이 둘의 임무였다.
헌데 지금 몹시도 곤란하기 그지없는 문지기 둘의 얼굴이었다.
덩치는 웬만한 산등성이 정도 되는 녀석들이 오히려 쩔쩔매는 모습이라니.
"안 됩니다... 부르사이 님..."
되레 문지기 둘이 애걸복걸하는 형세다.
그리고 억지를 쓰는 것은 부르사이였고.
게다가 그녀의 옆에 있는 주인인 키린은 주인들의 합의에 의해 속박 당한 게 아니었나.
주인들끼리의 의논에 의해서 말이다.
결국은 둘 다 범죄자라면 범죄자.
단 하나의 단점은 저들을 이렇게 막아내는 것 정도가 문지기들이 겨우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이었다.
"아니. 왜 안 돼??? 내가 호아류를 꼭 만나야겠다니까?"
"...저희 입장도 좀 봐주세요... 이건 단순히 주인님들 만의 문제가 아닌 걸 아시잖아요..."
"야. 너희는 명색이 SS급 환수들이면서 무에가 그리 무섭다고 그러냐? 하 참나."
어이가 없어하는 부르사이의 표정.
그때 키린이 나섰다.
"여기까지 온 이상 호아류를 좀 만나야겠어.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그리고 왜 안 움직이는지 말이야."
순간 문지기들의 창 끝이 키린을 향했다.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저 창 끝에 어린 살기.
"...네 놈은 말할 자격이 없다! 주인이기는 하나 아직은 죄인 상태!"
"듣자듣자하니 어이가 없네? 이것들이 미쳤나??????"
부르사이가 완전 뚜껑이 열린 얼굴로 문지기들에게 다가갔다.
꿀꺽-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키는 문지기들.
여기서 이들이 날뛰기라도 하면...
자신들은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꼴이 될 게 뻔했다.
"아니다. 됐다. 너희한테 이야기해서 뭣하냐? 저기 안에 있는 녀석이 잘못이지."
후우우우웁-
숨을 힘껏 들이삼키는 부르사이.
1초.
2초.
.
.
.
10.
그리고는 입을 완전 쩌억 벌린 채 그대로 고함을 질러댔다.
"호아류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