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
습격(4)
착각이라.
착각이라고 하면 착각이겠지.
그가 여기까지 온 이유.
그것은 따로 있었다.
자신이 이 곳에 온 목적.
이 세상에서 자신이 친구라고 부르는 존재.
바로 그 녀석을 찾으러 온 것이었다.
그들이 만나기로 한 곳이 바로 여기.
이 마을이었다.
헌데 오자마자 본의 아니게 사람까지 구해주고 이 무슨 일당도 안 나오는 일을 해버렸단 말인가?
허 참...
내키지 않는 짓을 해버렸다.
사람이라면 딱 싫어하는 그가 아닌가.
"그럼 절 구해준 게 의도하신 바는 아니라는 말이네요?"
"그렇지~ 이제야 알아차리는구나. 여기에 그 뭐지? 덩치가 엄청 큰 녀석이 오지 않았냐? 아니 있나?"
"...누구를 찾아오신 거에요? 제가 아는 사람이면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도 제 생명의 은인이시니 제가 같이 도와드릴게요."
"오오오오~ 그래? 본의 아니게 도와주긴 했지만 도와준다면야 당당하게 받으마."
살다보니 인간에게 도움을 받을 날도 있구나.
그는 열심히 자신의 친구에 대해 설명했다.
손으로 이렇게 저렇게까지 그려가면서 말이다.
이래뵈도 나름 글쟁이인 자신이 아닌가?
그에게는 상대방을 100% 이해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했다.
다만...
자신의 말을 듣고 있는 여자애가 별로 똑똑해 보이지 않는 게 문제인데...
설마 이렇게까지 설명을 했는데 못 알아듣겠어?
"......그래서 이 자다."
이제 설명은 끝이 났다.
남은 건 그녀의 대답.
****
한참을 고민하던 그녀.
"저... 그런 사람은 잘 모르겠는데요?"
"엥?????? 뭐라고? 내가 그렇게 잘 설명을 했는데도 모르겠다는 말이야? 하... 어쩐지 머리가 좀 나빠보이더라니..."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신랄하게 혀를 놀리는 그.
그리고 그에 비해 더 어이없어하는 디어의 표정.
"네??? 뭐라구욧??? 머리가 나빠보여요? 이 할아버지가 정말... 말이면 단 줄 아나?"
"하긴 기대도 하지 않았다. 에잉..."
"와... 진짜. 오히려 제가 더 어이가 없네요 진짜. 아니 생각을 해봐요. 키는 한 2미터에 남자에. 그리고 눈 2개, 코 하나, 입도 하나, 귀도 2개 나머지 우락부락하게 생긴 얼굴. 이러면 어떻게 찾아요! 제 얼굴을 봐요. 저도 눈 2개, 코 하나, 입 하나, 귀 2개 다 있잖아요. 그렇죠???"
하지만 영 마뜩한 표정의 그.
아닌데.
그 정도면 남들한테 다 물어봐도 다 알겠구만.
여기에서 더 필요한 정보가 당최 어디에 있나.
역시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 이건 뭐 개똥 수준도 안 되네.
헛짓했네. 헛짓했어.
흠...
'아니지. 안 왔을 수도 있겠네. 아직 도착을 안 한 건가?'
또 하나의 가정.
그가 혹시나 안 온 것이라면...
일이 잘못 되었다는 말이기도 하겠는데 이거.
그 남자는 더 기다려야 할 것인가 아니면 이 곳을 떠나야 할 것인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도대체 누구신데 그 사람을 찾는 거에요? 우락부락하게 생겼다고 하니까 생각나는 사람이 하나 있기는 한데 나이대가 안 맞아서 그렇지. 걔는 제 친구거든요."
"오오오오. 그래? 아니 잠깐. 나이가 안 맞다고? 네 친구면 네가 몇 살인데?"
"전 스물이죠. 아. 아니네. 생일이 지났으니까 스물 하난가? 얼레? 가만. 이 자식 보게. 내 생일을 까먹었다 이거지???"
가만히 그녀의 말을 듣고 있던 남자.
그는 그녀의 말에서 자신이 모르고 있던 무언가를 눈치챘다.
호오~ 그랬단 말이지?
자신의 가정이 맞다면 이건 무조건이다.
"네 친구. 네 친구는 어디에 있냐?"
"네? 체스요? 걔는 지금 라이손 성으로 갔어요."
왠지 느낌이 왔다.
그의 촉이 제대로 발동을 한 것이다.
"거긴 또 어디냐??? 이거 기다려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지?"
"어... 여기 마을을 나가서 대로를 따라 쭉 가시면 돼요."
"그래? 흠..."
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
그리고는 이내 결론을 내린 듯 자신이 쓰던 책을 품 속에 집어넣고 갈 채비를 서둘렀다.
"응? 가시게요?"
"바쁘다 이 녀석아. 지금 생각지도 못했던 몸을 써서 힘들단 말이다. 에이씨. 환수계에서 나오기가 얼마나 힘든데 지금. 할 일도 잔뜩 쌓여 있구만."
혼자 중얼거리던 남자는 이내 걸음을 스윽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디어의 시선에서 사라지는 남자.
그는 그렇게 엘윈마을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자신의 정체는 밝히지 않은 채.
"...진짜 이상한 영감님이시네..."
끝까지 자신의 정체는 밝히지 않은 채 사라진 영감님이었다.
"디어! 디어! 괜찮냐? 히이이익. 이게 다 뭐야???"
그제야 튀어나온 자신의 아빠.
그는 디어의 상태를 살피다가 앞에 쌓인 마수들의 시체를 보고 깜짝 놀라 그만 엉덩방아를 찧어 버렸다.
"...네가 한 거냐? 이거 내 딸이 맞나...??? 밀대 자루를 잘 쓰는 건 알았지만 이건... 제 딸이 맞으십니까...?"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디어와 마수의 시체들을 번갈아 보는 그.
"아빠!!!!!!"
꽥 소리를 지르는 디어.
"아이쿠. 귀청이야. 내 딸이 맞네..."
하. 참나...
어이 없다는 표정의 디어는 더 할 말이 없다는 듯 지붕이 날아간 건물 안으로 홱 들어가 버렸다.
"어휴... 저 성질머리하고는..."
쯧쯧쯧-
****
혼자 휘적휘적 발을 질질 끌며 걸어가는 초로의 노인.
마수 사냥꾼 협회의 협회장이자 현 랭킹 1위인 그였다.
마치 산책을 나온 듯 여유롭게 뒷짐을 지고 걸어가고 있는 중인 그.
그 때 맞은 편에서 걸어오는 또 다른 한 남자.
호오~
그를 알아차린 협회장의 입에서 휘파람 소리가 절로 흘러 나왔다.
날이 잔뜩 선 예기,
보통 예기가 아니다.
그것들은 나이가 들어 쭈글쭈글해진 자신의 피부 안쪽 뼛 속 깊숙이까지 사정없이 쿡쿡 찔러오고 있었다.
그러니 감탄이 나오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지.
"허허허. 이거 내가 그를 찾는 게 아니라 그가 날 찾고 있는 것이었군."
먼 발치에서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한 남자.
서로 통성명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등에 온갖 무기들을 매고 있는 걸로 봐서는 저 자가 바로 화제의 주인공인 페릴턴.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더욱 짙어지는 투기.
그는 자신의 투기를 전혀 숨길 생각이 없어 보였다.
여과 없이 양껏 드러내는 투기.
그가 발산하는 투기는 주변의 공기마저도 무겁게 짓누를 정도였다.
"허허. 이거 이거. 나 사랑 받고 있는 것 같구만."
알 듯 모를 듯한 말을 중얼거리며 협회장이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그의 앞을 누군가가 가로막고 섰다.
뚜벅-
뚝-
걸음을 멈추는 한 남자.
그리고 그와 마주 본 한 명의 초로의 노인.
자신의 길을 가로막은 남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