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
습격(3)
우아아아아아아아악-!!!
일순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아... 안돼. 일단.'
부모의 심정이라는 게 그렇지 않은가.
먼저 자기 새끼부터 얼른 밖으로 보내려는 애비의 심정.
그는 얼른 고개를 들어 디어를 살폈다.
"얼른 도망가라! 디어!"
꺄아아아아아아아악-
하지만 디어는...
눈앞에 보인 마수의 모습에 이미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가고 있었다.
......
급박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어처구니가 없는 게 뭐라 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야... 아...빠는 안 데리고 가냐...?"
그렇게 할 말을 잃어버린 그였다.
****
한편 밖으로 나온 디어.
하지만 문을 벌컥 열고 밖으로 나온 디어는 아예 몸이 굳어 버렸다.
눈앞에 펼쳐진 참혹한 광경.
마을 안에 경비대가 있긴 하지만 그들은 끽 해야 자경대 수준.
아무리 낮은 등급의 마수들이라도 이들이 막을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이미 마을 곳곳에는 시체와 마수로 뒤범벅이 되어 지옥이 있다면 아마 여기가 지옥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마수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처 도망을 가지 못한 사람들.
그들은 마수들에게 말 그대로 유린을 당하는 중이었다.
"사... 살려줘어어어어어!!!!!!"
으아아아아악-
또 한 명의 사람이 마수에게 죽임을 당했다.
아예 몸이 얼어버린 디어.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시체 중에는 자신이 익히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다지 친하지 않던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그들은 모두 자신과 함께 같은 공간에서 지내던 사람들.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에 디어는 그만 손으로 입을 틀어막아 버렸다.
그리고 그때.
캬아아아아-
건물 앞에서 어슬렁대던 마수 한 마리가 디어를 발견했다.
순간 쭉 잡아째진 마수의 눈이 탐욕스럽게 번들거렸다.
새로운 먹이의 출현에 긴 혀를 날름거리며 욕망을 숨기지 않는 마수.
'도... 도망가야 해...'
하지만 공포감에 지배가 되어버린 탓인지 발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저 벌벌 떨기만 하는 그녀.
샤아악-
그리고 어슬렁대던 마수가 움직였다.
목표는 명확했다.
굴러 들어온 떡 마냥 가만히 서있기만 한 인간.
파밧-
마수 한 마리가 가볍게 뛰어올랐다.
디어를 향해.
입을 쩌억 벌린 채.
어느 새 지척까지 다가온 마수.
잔뜩 벌려진 입에서부터 썩은 내가 확 밀려온다.
저도 모르게 디어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그리고 무의식 중에서라도 다음에 들이닥칠 자신의 미래를 아는 양 그만 자신의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아직 그 개놈도 못 봤는데... 아... 덧없는 내 인생...'
****
짧은 시간.
......응?
눈을 꼭 감은 그녀.
헌데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다.
응당 벌어질 것이라 생각했던 일이 벌어지지가 않은 듯했다.
...아니면 너무 순식간에 지나간 일이라 느끼기도 전에 죽어버린 것인가...?
스윽-
슬그머니 눈을 떠보는 그녀.
한쪽 눈부터 다음 눈으로.
그리고.
엥??????
그녀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누...구...?"
디어의 앞.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 일.
방금까지 멀쩡한 모습으로 자신에게 썩은 내를 풍긴 채 달려들던 마수였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그 짧은 시간에 머리가 박살이 난 혀를 축 늘어뜨린 마수.
무의식 중에 바라던 일이긴 하지만 상상이 현실로 된 것이 믿기지 않는 그녀였다.
'...이 사람인가?'
그 일을 현실로 끄집어 내준 사람.
그녀와 마수 사이에는 이 사람 밖에 없었다.
헌데 너무 나이가 지긋하신 것 같은데...?
지금도 지팡이를 짚은 채 허리를 연신 두들기는 게 지나가는 들짐승 한 마리 못 잡을 것 같으신 분이 아닌가.
"저... 할아...버지?"
툭툭-
"아이쿠. 오히려 여기에서 혹 붙이게 생겼네."
디어의 말에는 대답도 않은 채 혼자 중얼거리던 영감님.
"아차차차. 이럴 때가 아니지."
갑자기 그가 주머니를 뒤지더니 필기도구를 꺼내기 시작했다.
"저건 D급 만도라스고 저기는 C급 헤비에라네. 얼레? 저것들은 단독행동을 하는 녀석들인데... 이거 참."
그는 마수들이 어떤 종류인지 다 아는 듯했다.
뭔가를 기록하는 듯 바쁘게 움직이는 그의 손.
"저... 할아버지?"
"가만히 좀 있어봐라. 뭘 그리 뒤에서 자꾸 불러대는 거냐?"
그때.
그들을 본 마수 한 마리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빠른 속도로 달려들었다.
크와아아아앙-
"뭐야? 저 놈은 이렇게 덤벼들 놈이 아닌데? 가만 보자... 아~ 눈깔이 아예 뒤집어졌네~~~"
쯧쯧쯧-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혀를 끌끌 차는 그.
샥-
그 사이 그는 몸을 살짝 뒤로 띄워 마수의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는 들고 있던 지팡이를 가볍게 내리치는 그.
허나 거기에 실린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은 듯했다.
뻐어어어어억-!!!
삽시간에 골이 빠개진 마수.
그대로 절명이었다.
그 자리에 대자로 뻗어버리는 마수.
아...
저 정도면 체스보다 훨씬 더 강할 것 같은데.
디어의 표정은 복잡미묘했다.
기다리는 자는 오지 않고 엄한 사람이 와서 이러고 있으니.
살려줘서 고맙기는 한데...
헌데 저렇게 연신 허리를 주무르면서 거동도 불편해 보이는구만 굉장하네.
절로 감탄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그의 움직임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어느 새 수북이 쌓인 마수들의 시체.
그 영감은 지치지도 않는 지 연신 지팡이를 휘두르는 와중에도 무언가를 급히 써갈겨 나갔다.
****
퍽- 퍽- 퍽-
마지막 남은 마수를 가볍게 때려잡는 남자.
마을을 집어삼킬 기세로 날뛰던 마수들은 처음에는 이성을 잃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 남자에게 이 정도로 낮은 등급의 마수들은 식은 죽 먹기.
이제 살아있는 마수들은 없다.
그나마 살아남은 마수들은 이미 튀어 버린 지 오래고.
그 사이 힘이 드는 지 털썩 주저앉는 영감님.
"휴... 나이를 먹으니 힘드네 진짜... 이게 얼마 만에 현장직이냐? 은퇴한 지가 벌써 언젠데..."
후우.
한숨을 쉬며 연신 허리를 두들기는 남자.
어느 새 그의 앞에는 마수들이 시체가 되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가...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그저 넋을 읽고 쳐다보던 디어가 그제야 제 정신으로 돌아온 듯 퍼뜩 인사를 했다.
그 말에 뒤를 돌아보는 남자.
"응? 넌 누구냐?"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남자가 흠칫 놀랐다.
그 말에 정작 당황한 것은 디어.
"에? 절... 구해주신 것 아닌가요?"
"구해줘? 내가? 널? 언제?"
오히려 무슨 말을 하냐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는 그.
"그... 앞에 마수들 다 잡아주셨잖아요. 까딱 잘못하면 바로 죽을 뻔 했는데..."
"아~ 그래서 널 살려준 거다? 이 내가?"
"...그렇죠. 아닌가요?"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이 여자아이는 뭔가 단단히 착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흠... 착각은 금물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