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
습격(2)
쿵-
쿵-
쿠웅-
숲 속 깊은 곳.
도끼질을 하는 소리.
울끈불끈 핏줄이 튀어나온 굵은 팔뚝이 한 번의 도끼질을 내지를 때마다 정확하게 나무의 줄기에 박히는 도끼.
후두둑-
후두둑-
그 때마다 중력의 흐름에 순행하듯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지는 나뭇잎들.
하지만 꽤나 굵은 나무인지 벌써 수십 번이나 내리쳤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넘어갈 낌새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와나... 이거 질기네 진짜."
나무를 치던 2명 중 한 명이 도끼를 탁 내려놓으며 이마에 땀을 훔쳤다.
그 말에 맞은편에 있던 남자도 도끼를 내려놓으며 씨잇 웃어댔다.
"좀 멀어도 여기까지는 와야 좋은 땔감을 구하지. 마을 근처의 숲은 이미 다 망가졌잖아."
"그래도 여기까지는 안 와도 되었을 것 같은데... 질이 좀 떨어져도 양으로 하면 되잖아. 영 기분이 께름칙한데 이거."
시커먼 숲.
지나치게 울창한 나무 탓인지 햇볕 한 줌조차 들어오지 않는 숲이다.
쉬이이이이잉-
한 줄기 스산한 바람이 아까까지 흐르던 그들의 땀방울을 가볍게 날려버린다.
으으으으-
저도 모르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동생이 소름이 돋는지 팔을 빠르게 문질러 댔다.
"야야. 그만 투덜대고 얼른 도끼나 집어. 그런 말할 시간에 빨리 해서 가자."
"예~ 예~ 알겠습니다요~"
마지못해 도끼를 드는 동생.
그의 굵은 팔뚝에 힘줄이 불끈 솟아올랐다.
그리고 그가 다시 한 번 도끼를 내려칠려는 찰나.
스악-
맞은편에 있던 형이 사라졌다.
응? 뭐야?
갑자기 형의 몸이 오른쪽으로 홱 날아가는 걸 어렴풋이 본 듯하다.
천천히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동생의 얼굴.
크르르르르르-
순간 동생의 동공이 급격히 크게 확장되었다.
그의 두 눈에 들어온 광경.
그 곳에는 두 눈이 누런 살기로 뒤범벅이 된 마수 한 마리가 침을 질질 흘린 채 형의 목을 물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죽어버린 듯 축 늘어진 형의 몸.
"혀...ㅇ...? 저건...?"
마수다.
...마수가 왜 이런 곳까지...
안 좋은 예감은 언제나 틀린 적이 없더라니.
소름이 돋은 것 저것들... 때문이었다.
크르르르르르르-
순간 동생의 왼편에서 다수의 크르릉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살기가 진득하게 묻은 듯한 소리다.
흠칫 놀라 그 곳으로 다시 고개를 돌리는 그.
허억...헉...!!!
거기에는 엄청난 수의 눈동자들이 있었다.
희번득거리는 살기 어린 눈동자들.
하지만 모습이 안 보인다 뿐이지 모두 마수들...이겠지?
슈욱-
순간 마치 매가 먹이를 낚아채듯 동생의 몸을 그대로 덮쳐버리는 다른 마수 한 마리.
"으아아아악!!!!!!"
비명소리.
하지만 이내 그 소리는 잠잠해졌다.
콰드득- 콰드득-
콰득- 콰득-
마구 씹어먹는 듯한 소리.
그 소리는 이내 잠잠해지고 깊은 숲 속은 점점 침묵 속으로 잠겨 들어갔다.
****
콰앙-!!!
"아유... 이 녀석 진짜. 말은 하여간 지지리도 안 듣지!"
건물의 문이 쾅 닫히고 디어의 아버지가 밖으로 나와 파이프를 물었다.
사람들은 이미 짐을 싸서 떠나는 중이었다.
이 곳도 언제 마수들이 들이닥칠 지 모르는 노릇.
그러니 그들이 갈 수 있는 최선의 안전한 곳으로 가는 것이겠지.
...자신도 떠나야 하는데...
저 하나 밖에 없는 딸래미가 문제다 문제.
어쩌면 저리도 지 엄마를 꼭 닮았는지 말이라고는 도통 들어먹지를 않는 디어였다.
그때.
땡땡땡땡땡땡땡땡땡땡땡-!!!!!!
도시의 외곽에서부터 종소리가 격하게 울려 퍼진다.
"뭐...냐...???"
파이프를 물고 있던 그가 담배 연기를 황급히 내뱉은 후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설마,...?
에이~ 아니겠지.
그럴 리가 없지.
피어오르는 불안감을 애써 가라앉히며 괜스레 애꿎은 파이프를 만지작거리는 그.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오는 모습.
도시의 외곽에서부터 미처 피하지 못한 사람들이 미친 사람들 마냥 너나 할 것 없이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뭐야? 뭐야? 뭐야? 무슨 일이야???"
놀란 그가 정신 없이 도망가는 사람 하나를 얼른 붙잡았다.
하지만 붙잡힌 그 남자가 미처 말하기도 전에 알 수 있었다.
"마... 마수다!!!!!!"
"마수가 쳐들어 왔다!!!!!!"
"모두 도망가!!!"
"살아야 해!!!!!!"
으아아아아앙-
우당탕탕-
누가 발에 채이건 혹은 밟히건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
도망가기에 여념이 없는 남은 사람들.
너나 할 것 없이 살겠다고 모두는 뒤도 안 돌아보고 내빼는 중이었다.
짐이건 뭐건 상관없다.
짐도 일단 살고 봐야 나중에라도 챙길 수 있는 것 아닌가?
"뭐야! 빨리 도망가! 마수들이 습격한다고!"
황급히 도망가던 마을 사람 하나가 발이 얼어 붙어버린 듯 꼼짝않고 있는 그에게 고함을 외치며 빠르게 발걸음을 이어갔다.
아! 이럴 때가 아니지.
얼른 건물 안으로 도망치듯 들어가는 그.
"디어!!! 디어!!! 도망가야 한다!!! 마수가 쳐들어 왔다!!!"
****
몹시도 청명한 하늘.
그리고 높이 떠오른 해는 마냥 따스함을 품은 채 지상을 내리쬐고 있다.
하지만 지상...
지상의 모습은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이미 도시 곳곳은 혼란의 극치.
비명과 아우성이 넘치는 지옥도가 있다면 바로 여긴가 싶을 정도로 참혹한 모습이었다.
불타오르는 곳곳의 집.
그리고 널부러진 시체들.
살아남은 이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마수들의 모양은 각양각색이다.
예전에는 같은 종족의 마수들 혹은 단독으로 움직이는 마수들이 쳐들어 왔다면 지금은...
정말 난장판이다.
마치 환수계에 있는 마수들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모습.
마수들은 자신들이 물어 죽이거나 혹은 찢어발긴 인간들을 가지고 놀다가 먹기에 여념이 없었다.
간혹 살아남은 자?
혹은 어딘가에 숨어있던 자들이 마수들의 눈을 피해 도망을 갔으나 그들은 훈련이라고는 단 1도 되지 않은 자들.
그저 자신들의 생업에 충실하고 자신들의 가족과 친지, 친구들과 행복하게 살던 그들이었다.
몇 발자국 도망가지도 못한 채 이내 잡혀버린 그들은 어김없이 죽임을 당하곤 했다.
그 와중에도 살아남은 자들.
디어를 비롯한 대여섯 명은 건물 안에 꼭꼭 숨어 있었다.
지금 나가면 죽음은 필연.
그들은 단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한 채 숨소리조차 죽여가며 숨어있을 뿐이었다.
"...젠장. 마수라니. 마수라니..."
한 남자가 잔뜩 격앙된 표정으로 말을 내뱉었다.
쉿-
모두가 조용히 하라며 그의 입을 다물게 했다.
그때 창문 밖으로 비치는 큰 덩치 하나.
잠시 창문 안으로 슬쩍 머리를 돌리던 마수는 이내 다른 곳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쿵- 쿵-
점차 발걸음이 멀어지고.
휴...
모두가 가슴을 쓸어 내리며 안심하는 찰나.
콰아아아-
건물의 지붕이 그대로 날아갔다.
헉-!!!!!!
그리고 그 위로 고개를 스윽 내미는 건...
크르르르-
마수들이 아래의 인간들을 보며 군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