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의 채무 탈출기-176화 (176/249)

#176

습격(1)

체스가 깨어난 후 일주일.

고작 일주일의 시간이었지만 대륙은 이미 그 사이에 많은 변화가 일어난 후였다.

우선 통로를 열고 나오는 마수들이 훨씬 늘었다.

열쇠가 점점 형태를 갖춰감에 따라 자연스레 환수계와 인간계 간의 연결된 통로가 더욱 열려갔기 때문이었다.

마구 쏟아지는 온갖 마수들.

허나 마수들의 수가 늘어나는 건 괜찮다.

단지 마수 사냥꾼들이 좀더 바쁘게 움직이면 되니까.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넘어오는 마수들의 등급이 점점 높아진다는 것.

예전에는 기껏 높아봤자 C급 정도의 마수들이 판을 쳤다고 한다라면 지금은 거의 B급 이상의 마수들이 넘어온다고 해야 할까.

그것 뿐이라면 그래도 어떻게든 처리할 수가 있겠지.

하지만 이번에 넘어오는 B급 정도의 마수들은 혼자 넘어오는 게 아니었다.

최소 몇 마리부터 수십 여 마리까지 일거에 넘어오니 마수 사냥꾼들은 죽을 맛이었다.

심지어 모자라는 인력을 보충하기 위해 일반 병사들까지 동원될 정도였으니.

지금처럼 말이다.

철컹- 철컹-

많은 수의 군사들이 대오를 맞춘 채 걸어가고 있다.

척척 발을 맞춰 걸어가는 절도있는 모습.

역시 군대라서 그런지 풍겨오는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완전 피로에 찌들린 그들의 얼굴.

제대로 씻지도 못한 듯 완전 꾀죄죄한 모습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은 지금 제대로 쉬지도 못한 상태.

어김없이 마수 토벌에 끌려 다녀온 게 불과 그저께.

그리고 보다시피 또 출전이다.

"젠장맞을. 또 출전이야. 마누라 얼굴도 어제 잠깐밖에 못 보고 왔는데."

"하아... 이러다 곧 죽는 거 아닌가 몰라. 마수한테 죽기 전에 피로에 쌓여서."

"이봐. 포스. 그래도 지난 번 마수와의 전투에 죽은 우리 소대의 가장 어린애보다는 낫지."

자신들의 상관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그들.

앞을 향해 처벅처벅 걸어가는 그들의 표정은 매우 처연했다.

오히려 측은할 정도로 기운이 쫙 빠진 모습.

허나 시민들에게 그런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혹여나 그랬다가는...

뒷일은 뭐 안 봐도 뻔하니.

그때 누군가의 입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 와~~~ 와~~~

그들의 출전에 연신 환호성을 지르는 시민들.

병사들에게서는 단 1의 호응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시민들은 그저 악에 받친 듯 환호성 아닌 환호성을 질러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민들의 얼굴도 병사들의 얼굴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직접 출전하지 않은 터라 피로감만 덜 하다 뿐이지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불안감 그리고 걱정.

그렇기에 고함과 함성은 그저 거들 뿐이었다.

시민들의 얼굴이 거무튀튀한 이유.

혹여나 병사들이 패배해 마수들이 성 안까지 넘어오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게다가 사람들 사이에 떠도는 여러 소문들.

뭐 이미 수도 근처의 성 하나가 쑥대밭이 되었다는 소문.

혹은 공주를 찾으러 간 기사대장이 이미 죽었다거나...

아니면 랭커가 죽었다는 둥 뭐 그런 소문들 말이다.

왕국 내에서는 그딴 헛소문을 퍼뜨리는 자가 누구냐며 연신 단속에 나섰지만 입에서 입으로 옮겨지는 소문을 막을 도리는 없었다.

물론 개중에는 진짜인 소문도 있었다.

그것은 마수 사냥꾼 협회의 상위 랭커들에게만 전달된 고급 정보.

죽음.

또 다른 상위 랭커 한 명이 운명을 달리한 것.

시체가 발견된 것은 마수가 출몰하지 않은 어떤 마을 근처였다.

발견된 그의 몸은 여기저기 찔린 상처가 가득했다.

실질적인 사인으로 지목된 것은 반쯤 물어 뜯긴 듯한 상처.

아마도 그게 죽음에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현재 협회장도 브로드도 모두 부재인 상태.

그들은 거기에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는 듯 보였다.

그렇기에 상위 랭커들에게 전해진 건 단지 조심하라는 지침 뿐.

더 이상의 말은 그들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그렇게 대륙은 점점 난장판이 되어갔다.

제일 먼저 표적이 된 곳은 통로 근처의 마을들.

마수들이 휩쓸고 지나간 지역은 시체조차 제대로 건사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폐허가 되어 갔다.

과연 이것을 누가 막을 수 있단 말인가?

사람들의 염려는 점점 더해가고 어떻게든 안전한 곳을 찾아 사람들은 하나 둘 정들었던 고향을 떠나가기 시작했다.

****

"안 갈 거야???!!!"

한 남자의 잔뜩 성이 난 목소리가 건물 전체를 뒤흔들 정도로 퍼져 나간다.

"안 갈 거에요!!!"

그리고 더욱 날카로운 목소리로 대답을 하는 젊은 여자의 목소리.

이 목소리는 분명히...

디어였다.

헌데 왜 저렇게 서로 잔뜩 성이 난 목소리로 부녀가 저리도 다투고 있는 것이지?

뭐 뻔하긴 하다.

엘윈 마을 또한 별반 다르지 않은 상태.

이들에게도 이미 대피 명령은 떨어졌었다.

마수들의 수가 갈수록 증가함에 따라 위험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물론 엘윈 마을 또한 그 위협에서 벗어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이미 꽤나 많은 사람이 자신의 정든 고향을 떠나 안전한 곳으로 피난을 갔다.

어차피 넘쳐나는 마수들을 막지 못한다면 모든 대륙이 피바다가 되겠지만 일단 인간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여기 엘윈 마을의 두 모녀.

이들은 지금 벌써 30여 분 째 실랑이를 하는 중이다.

아버지 쪽은 마을을 떠나야 한다.

딸 쪽은 절대 그럴 수 없다.

그렇게 둘의 주장이 첨예하고 대립하고 있는 탓이었다.

"아니. 도대체 왜 피난을 안 가겠다는 거냐? 내가 널 놔두고 어떻게 혼자 피난을 가겠냐??????"

어이 없다는 표정.

그도 그럴 것이 지금껏 자신의 딸이 저렇게 고집을 피우는 건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였다.

헌데 지금 저 아이의 말을 들어보라.

말하는 게 가관이다 가관이야.

...지 목숨 귀한 줄도 모르고 말이야.

그리고 실컷 키워놨더니 아버지 심정은 알지도 못한 채 어쩜 저렇게 애비의 속을 후벼파는지...

"안돼요. 절대 전 떠나지 않을 거에요. 아빠는 먼저 가세요. 나 혼자 지킬 테니까. 어딘가에 숨어서라도!"

"그래. 뭘 하려는 건 알겠다. 하지만 그것도 다 죽고 나서는 무슨 상관이냐?"

"난 안 죽을 거니까 괜찮아요. 전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지 알 수가 없다.

지금이야 아니라지만 마수들이 쳐들어 오면 도대체 어떻게 버틸 셈이란 말인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기에 남아 있겠다니...

"디어야... 말 좀 들어라. 제발. 이 애비가 부탁할게. 가자... 응?"

이제는 애걸복걸 수준이다.

"체스가 올 거란 말이에요! 체스가 돌아왔을 때 우리 마을이 아예 사라지면 어떡해요!!!!!! 아빠는 아무 것도 모르면서...흑흑흑."

고함을 꽥 지른 그녀가 갑자기 마루에 털썩 주저앉더니 엉엉 울기 시작했다.

허나 그 사이 그녀의 말을 들은 남자.

금시초문이라는 듯한 얼굴이다.

"체스? 그 녀석이 오기로 했냐?"

엉엉엉엉-

대답 대신 사슴 같은 눈망울로 눈물만 흘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그녀의 모습에 결국 더 말을 잇지 못한 그가 자신의 얼굴을 벅벅 문질렀다.

"어후! 진짜......"

이 아이는 또 언제부터...

이 놈 체스 이거...

내 이 놈에 자식을 그냥.

하아...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 내쉬는 그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