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의 채무 탈출기-174화 (174/249)

#174

통로(5)

크으으으윽-

심상찮은 이 힘.

조금이라도 느슨하게 몸을 풀었다가는 삽시간에 갈기갈기 찢어발길 듯한 그런 힘이다.

하르무와 손을 맞대고 있는 남자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왜 그래? 벌써 한계야? 힘을 좀 더 써봐~ 아직 본 모습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하지만 남자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이게 주인인가...?'

너무 성급했다.

좀더 알아봤어야 했다.

직접 맞붙는 건 처음이었다.

그 사이 하르무가 먼저 공격에 변화를 꾀했다.

잡은 손을 세차게 뿌리치는가 싶더니 두 손을 맞물린 채 냅다 상대의 머리를 찍어버리는 하르무.

엇-

순식간에 이루어진 공격이었다.

퍼어어어억-!!!!!!

엄청난 굉음과 함께 상대가 그대로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콰아아아아앙-!!!

그가 땅에 처박힌 순간.

그의 주변으로 땅이 쩌저적 갈라졌다.

하지만 하르무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가벼운 미소를 쓰윽 머금은 하르무는 그대로 수직낙하를 시작했다.

퍼어어억-

상대가 있음직한 곳을 감각적으로 발로 찍어버리는 하르무.

"이히힛. 재밌다."

퍼억-

퍼억-

퍼억-

땅에 내려간 채 연신 발을 쾅쾅 구르는 하르무였다.

그의 얼굴에는 즐거움이 가득했다.

소문은 역시 단지 소문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맷집이 좋은 놈을 만나서일까 스트레스를 풀기에 딱 안성맞춤인 상대였다.

순간 하르무의 발을 쳐내는 손.

동시에 패인 구덩이 안에서부터 그가 튀어 나왔다.

나오자마자 거의 두 배 정도로 커진 팔을 세차게 휘두르는 그 자.

퍼어어억-

아주 강한 펀치였다.

모든 힘을 실어 쳐낸 펀치에 홱 돌아가는 하르무의 얼굴.

"더! 더! 강하게 못 하냐?"

한 대를 맞았음에도 하르무는 아픈 기색 없이 되레 빈정대는 듯한 말투로 그를 더욱 자극했다.

"...이 놈 보게...?"

벌써 꽤나 두들겨 맞은 듯 퉁퉁 부은 얼굴임에도 황당하다는 기색이 역력히 드러났다.

하지만 이내 때릴 각을 잡는가 싶더니 연이어 몇 대를 휘갈기는 그.

연이어 하르무의 고개가 좌우로 몇 번이나 돌아갔다.

퍽- 퍽- 퍽- 퍽- 퍽-

그 뒤로도 몇 대나 더 허용하는가 싶던 하르무가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어??????

신나게 주먹질을 하던 그가 일순 멈칫거렸다.

손을 덥석 잡혀버린 탓이었다.

씨익-

"2라운드다."

순간 하르무의 주먹이 그의 얼굴을 강하게 쳤다.

하지만 팔을 잡힌 탓에 튕겨나지 않은 그.

튕겨나기 직전 하르무의 근육으로 가득 찬 한쪽 발이 허공으로 스윽 치켜올려지는가 싶더니 그의 몸을 그대로 다시 내려찍었다.

퍼어어어억-

휘엉청~

강력한 한 방이었다.

그 단 한 방에 다리가 풀려버린 그.

어억...

그리고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하르무의 주먹.

꽂힌다.

정확하게 정타로 단 1초도 허투루 허비되지 않고 오로지 그에게만 집중되어 쏟아졌다.

허어억.........

아예 눈이 풀려버린 그 자.

하르무가 손을 놓자마자 그대로 땅에 풀썩 쓰러지는 그 자의 몸.

그 모습을 보며 하르무가 손을 탁탁 털었다.

"몸 풀기도 안되는구만 이거. 그래도 주인들을 빼고는 네가 제일 오래 버티는 것 같은데?"

솔직히 이 자가 이렇게 순식간에 당할 정도의 실력은 아니었다.

하지만 주인과 붙는다는 긴장감 탓이었을까 아니면 빠르게 상황을 정리하려는 하르무의 의도에 말린 탓일까.

그는 제 실력의 반의 반도 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저렇게 피떡이 된 채 바닥을 뒹굴게 된 것이겠지.

"쳇. 보자..."

주위를 둘러보는 하르무.

그 사이 헤이사의 전원은 이미 뿔뿔이 흩어진 상태였다.

일순 곤란하다는 듯 하르무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거참... 너무 즐겼나?"

하르무는 다시 발 밑을 내려다보았다.

이미 혀를 빼문 채 뻗어버린 그 남자.

발로 툭툭 견드려 보았지만 미동조차 없는 몸이었다.

생기도 느껴지지 않는 몸.

"그거 좀 몇 대 맞았다고 이 모양 이 꼴이라니. 약해빠져서는... 에잉..."

턱을 손으로 긁적이는 하르무.

헤이사의 대장을 잡은 건 큰 수확이었지만 너무 즐긴 듯했다.

나머지 멤버들을 놓쳐버린 걸 알면 자라이가 또 뭔가 날카롭게 말을 할 것 같은데.

"뭐~ 그래도 이제 방해는 없겠지."

남은 기간은 한 달.

열쇠가 숙성되기까지만 기다리면 된다.

이제 아마도 방해는 없을 것이다.

구심점을 잃어버린 자들이 어떻게 감히 이 곳을 다시 덮쳐오겠나?

다시 쳐들어 올 리도 없겠지만 자신이 없더라도 능히 막아낼 수 있겠지.

"자~ 그럼... 잔소리를 하기 전에 그만 돌아가볼까?"

하르무는 뭔가 혼자 중얼중얼거리며 자라이에게 지시를 하는가 싶더니 그대로 자취를 감췄다.

****

그 사이 환수계도 꽤나 소란스러워졌다.

그것은 크나큰 이슈의 발생 때문이었다.

우선 하나.

키린이 구속되어 버렸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가 인지하고 있고 키린 또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터라 더 이상 크게 번지지는 않았다.

2번째는 현재진행형.

바로 하르무를 비롯한 북쪽의 강자들이 자리를 비운 것이었다.

이유는 뻔하다.

통로를 열어젖히는데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지역이 바로 북쪽이었으니.

하지만 지나치게 호전적으로 움직이는 게 문제였다.

그렇기에 저렇게 키린마저 억지로 감금해두었지 않은가.

자신에게 있어 제일 위협적인 존재가 될 녀석을 콕 집어서 말이다.

그리고 지금 여기 환수계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존재가 있었다.

이제는 뭔가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움직이기 시작한 존재였다.

그녀는 남쪽의 주인 부르사이.

어딘가를 향해 빠르게 이동하는 중인 그녀였다.

하늘을 나는 부르사이의 붉은 꼬리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붉디붉은 실선.

그것은 검푸른 환수계의 하늘에 끝없는 잔상을 남기며 그녀의 동선을 그려내었다.

다른 주인들에 비해 유난히 화려한 부르사이였다.

허공을 가로지르는 그녀가 만들어 내는 잔상에 지상에 있는 환수들이 고개를 올려 보며탄성을 질러댔다.

하지만 그런 소리가 들리는지 안 들리는지 바쁘게 이동한 그녀.

그리고 한참을 더 날아 그녀가 도착한 곳.

사아아아-

부르사이의 날개짓이 스르륵 가라앉았다.

그리고 날개가 허공에서 연신 나풀거릴 때마다 붉은 빛을 영롱하게 뿌려대는 그녀의 날개.

"멀기도 하네. 쳇,"

그녀의 앵두 같은 입술이 살짝 벌려졌다.

"이 고운 날개를 너무나 혹사시키는 건 아닌가 몰라~"

자신이 이 곳에 왜 왔는지 이유 자체를 까먹은 듯한 그녀.

그녀는 과도한 비행을 통해 혹여나 먼지가 묻었을까봐 몸을 단장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분칠도 좀 하고.

입술도 좀 바르고.

털 끝에 묻은 먼지도 좀 털어내고.

그때.

들려오는 목소리.

"야. 너... 날 보러 온 거 아냐? 거기서 날 안 보고 뭐하냐...?"

다소 어이없어하는 말투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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