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
통로(4)
"그런데 네 녀석 이름이 뭐였지? 딱 봐도 네가 우두머리 같은데."
그러고 보니 하르무가 헤이사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분명히 자라이가 이야기를 해줬던 것 같은데...
기억이 어째 가물가물하다.
"거 뭐 통성명은 됐고. 우리가 그렇게 살가운 사이는 아니니까."
"크하하하하. 그 말은 맞지. 그럼 여기에서 너희 씨를 어디 한번 말려볼까?"
순간 진득한 살기가 공기 전체에 퍼져 나간다.
주인으로서의 위압감.
이건 무어라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단지 짓누르는 듯한 중압감.
숨조차 턱턱 막힐 정도로 공기 자체를 무겁게 만드는 이 느낌.
하르무의 앞에 서있는 헤이사 모두의 피부에 절로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제기랄.'
"튀어! 내가 막을 테니! 거기에서 보자!!!"
말과 동시에 앞으로 치고 들어가는 남자.
일순 그의 몸이 화악 커졌다.
우두둑-
근육과 뼈가 움직이는 소리가 나며 가뜩이나 큰 덩치가 확 불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 사이 그 자리에 있던 헤이사의 인원들이 사방팔방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은밀하게 움직이는 조직.
그렇기에 한정된 인원으로만 조직이었기에 여기에서 수가 더 줄어든다면 그만큼 다음 작전에 차질이 생기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걸 본 하르무의 눈빛.
그저 가소롭다는 눈빛이었다.
자신의 앞으로 달려오는 한 녀석이며 흩어지는 녀석들하며 다 부질없는 짓이지.
훗-
순간 하르무가 움직였다.
크와아아앙-!!!
주변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기합을 집어넣은 하르무도 자신의 앞으로 달려오는 남자에게 맹렬히 돌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둘의 기운이 딱 맞물리려는 찰나.
하르무의 몸이 한 번 더 움직임의 변화를 일으켰다..
'무슨 짓?'
그걸 본 남자의 눈썹이 일순 꿈틀거릴 때.
하르무의 육중한 몸이 위로 솟구친다.
3미터에 육박하는 하르무의 몸.
하지만 도저히 그 덩치에서 나올 수 없을 것만 같은 빠른 속도로 움직인 그는 남자의 돌진을 가볍게 피해내는가 싶더니 자신의 발로 남자의 어깨를 가볍게 짓눌렀다.
으윽-
순간 일그러진 남자의 얼굴.
표현이 단순히 가볍게지 저 큰 덩치가 발로 밟았다고 생각해 보라.
그 다음은 뭐 뻔한 것 아니겠는가?
쿠당탕탕-
돌진해 가던 남자의 몸은 하르무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채 그대로 바닥에 사정없이 처박혔다.
그러나 하르무는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으로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행했다.
그의 목표는 나머지 잔챙이들.
꼴에 자신의 몸을 던져 부하를 살리겠다 뭐 이따위 행동을 하는 것 같은데.
어림도 없는 말이지.
자신 앞에서 장난질은 용납할 수가 없는 것 아니겠는가?
크와아아아앙-
남자의 몸을 발판 삼아 가볍게 뛰어오른 하르무의 몸.
허공으로 솟구친 그의 몸은 이내 공중을 빠른 속도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
헤이사에 들어온 지 어언 80년.
인간으로 친다면 긴 세월이고 환수로 치면 짧은 세월이다.
이번의 임무.
대장이 강조하고 또 강조한 임무였다.
물론 이번은 아주 위험한 임무라는 전제가 깔린 터라 자원자만 받기는 했지만...
헤이사의 목표.
환수계가 인간계를 지배하는 것이 아닌 공존 가능한 2개의 세계를 만드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게다가 자신도 똑같은 목표를 가지고 온 이상 꼭 여기에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는 A급의 환수인 사리만이었다.
이 임무를 시작하기 전.
딱 하나의 주의사항이 있었다.
혹여나 주인이 나타나게 되면 무조건 도망이라는 것.
그리고 짜잔~.
주인이 나타나 버린 것이지.
'일단 살아야 한다!'
사리만을 비롯한 환수들은 일제히 여러 방향으로 흩어지면 각자 자신 만의 살 길을 도모했다.
대장이 막는 사이에 2차 집결지역으로까지만 빠지면 된다.
열심히 몸을 날려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사리만.
쌔애애애애애애액-
순간 몸에 어마어마한 하중이 가해지기 시작했다.
어억-
'이...이건...?'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슬쩍 돌리는 사리만.
그리고 돌려진 두 눈에 들어오는 하나의 얼굴.
"하...아...르...무......?"
씨이익-
"그래. 나지."
짧은 단 두 마디의 말.
그리고 그것은 살아 생전 사리만이 들은 마지막 말이 되었다.
사리만의 목을 덥석 잡는 하르무의 손.
순간.
번개 같이 움직이는 하르무.
우드득-
목뼈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사리만의 명도 다해버렸다.
사리만의 목을 180도 돌려버린 하르무.
그의 두 눈에 경악으로 두 눈을 부릅뜬 사리만의 얼굴이 비쳐지는 그때.
촤아아아악-
오로지 손아귀 힘 만을 이용해 척추까지 뽑아버린 하르무였다.
순식간에 목과 몸이 분리되어버린 사리만.
허나 이미 거기에 대해 볼일이 끝났다는 듯 하르무는 이내 사리만의 몸을 발판 삼아 다시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지상으로 그저 낙하할 뿐인 사리만의 목과 몸통을 뒤로 한 채.
****
"이런 개새...가...!!!"
사정없이 땅에 처박혔던 대장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자신의 힘을 역이용할 줄이야...
그 사이에도 후두둑 떨어지는 시체들.
공포감을 심어주기 위함인가 하르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 잔인한 죽음을 헤이사의 일원들에게 선사하고 있었다.
하르무의 몸이 한 번 번쩍일 때마다 죽어가는 건 헤이사의 일원들.
그리고 그걸 본 대장의 눈알이 까뒤집혔다.
불끈-
종아리의 근육이 일순 부풀어 오른다.
푸와아악-
쿠웅-
일순 땅이 푹 가라앉는가 싶더니 그의 몸이 총알처럼 쏘아졌다.
쌔애애애액-
"이놈!!!!!! 하르무!!!!!!"
하르무는 그 순간에도 또 한 명의 환수의 뒷처리를 하는 중이었다.
자신의 각력을 이용해 수박 깨뜨리듯 환수의 머리통 하나를 가볍게 날려버리는 그.
그리고는 낙하하는 시체를 발판 삼아 몸을 한 번 튕기는가 싶더니 이내 방향을 바꿔 그에게 돌진하는 하르무였다.
콰아아아아앙-!
둘의 육중한 몸이 공중에서 강하게 부딪혔다.
순간 생겨난 진동파가 주위를 휩쓸고 지나간다.
솨아아아아아아-
순식간에 지상 공중 가릴 것 없이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리는 그들이 만들어 낸 충격파.
온갖 산천초목이 요동을 친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둘.
"크흐흐흐흐. 꽤 하는군. 역시 잘못 보지 않았어. 그래도 고작 그 정도면 영 실망인데?"
"네 놈이야말로 꽤 하는군. 으득..."
그 말을 들은 하르무의 눈이 반달로 변해가는가 싶더니 진득한 살기가 서린다.
"어차피 내가 온 이상 네 녀석들은 성공하지 못한다. 여기서 네 놈이 죽으면 구심점이 사라지니 자연스레 조직은 와해될 것이고 우리 계획은 성공할 것이니 말이야."
"... 다른 주인들이 가만히 있을 성 싶나?"
"그건 네 알 바 아니지. 내심 바라는 녀석들도 있다고~ 자~ 그럼 본격적으로 붙어보자. 어디 한번 볼까? 으흐흐흐."
말이 무섭게 폭발하는 하르무의 기세.
그 기운은 씹어 삼킬 듯한 기세로 사방에서 삽시간에 그 남자를 에워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