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
통로(3)
헉-!!!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천천히 돌려보니...
순간 그를 본 무리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뒷짐을 진 채 서있는 남자.
주...인이다...
북쪽의 주인 하르무.
'분명히 안으로 들어가는 걸 확인했었는데... 왜 어째서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지...?'
"후후후. 글쎄. 지금 네 녀석들이 생각하는 게 내 머릿속에는 너무나 그려지는 걸? 내가 왜 왔는지 왜 여기에 지금 네 녀석들 뒤에 있는 것인지 궁금한 것이지?"
능글맞은 얼굴로 그들을 놀리기에 정신이 없는 하르무.
하르무의 눈앞에 있는 이 녀석들.
너무나도 잘 보였다.
단순함의 극치인 녀석들.
"나 북쪽의 주인이야. 내가 그것 하나 모를 줄 알았다면 그것이야말로 큰 오산이지. 내가 통로를 빠져나왔을 때 네 녀석들은 뒤에 있었지? 그리고 당연한 일이겠지만 난 너희들의 그 냄새. 그 코를 찌르는 지독한 냄새 정도는 당연히 캐치를 했고 말이지. 모르는 게 더 이상한 것이지. 내 털이 곤두설 정도로 기운까지 뿌려대는데. 또 날 따라오는 것도 알면서 가만히 냅두고 있었지. 어찌나 어설프게 따라오는지 내가 중간에 가르쳐 주고 싶었다니까. 뒤로 돌아서 말이야. 아하하하하. 여하튼 그래서 짜잔~ 내가 이렇게 네 녀석들 뒤를 잡은 것이지."
"이... 이... 영악스러운 놈."
"그... 영악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좀 어울리는 것 같지 않게 들리는 걸? 이왕이면 좀 똑똑하다고 표현해 주면 더욱 고마울 것 같은데 말이야~"
자신이 한 대사가 지극히 마음에 드는지 하르무는 말을 한 후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절대 웃을 수 없는 무리들.
하르무와 마주 보고 있는 헤이사의 무리들은 절대 웃을 수가 없었다.
그럴 수조차 없는 상황이지.
환수들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게 지금까지 잘 움직였다고 생각한 게 여기서 이렇게 들킬 줄이야.
헤이사의 대장의 얼굴이 심히 일그러졌다.
자신이야 여기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겠지만...
자신을 믿고 따라온 녀석들은 하르무가 온 이상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
아니 불가능하다.
자신이 살아남는다는 것.
그것은 하르무가 자신의 능력을 모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 정도이니 자신의 부하들은 어떻겠는가?
이미 만들어진 결론이었다.
...그렇다면...
헤이사의 대장은 뭔가 결심한 듯 이를 으득 깨물었다.
****
잠시 앞으로 거슬러 가서 하르무가 이 곳에 도착했을 때.
이 곳에는 이미 자라이와 어글리불이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모여 있는 환수들.
하르무의 기운이 주위를 가득 채우고 이내 그가 온 것을 눈치챈 그의 부하들이 뒤를 돌아보았다.
"오셨습니까?"
일제히 자신의 주인을 향해 허리를 숙이는 환수들.
툭툭-
자라이와 어글리불의 어깨를 가볍게 건드리며 앞으로 걸어간 하르무.
그의 눈앞에는 두 명의 남녀 어린아이가 무언가의 기운에 붙들린 채 둥둥 떠있었다.
허나 정신을 잃은 듯 두 눈을 감고 있는 그들.
"야. 설마 죽은 건 아니겠지?"
정면으로 시선을 응시한 채 입을 여는 하르무.
"아. 아닙니다. 조금 일이 생겨서 잠시 재워뒀습니다."
하르무의 말에 대답을 한 건 어글리불이었다.
"일? 무슨 일이 있어? 여기에서 일이 생길 게 무에가 있지?"
"...그게..."
어글리불이 하르무의 귀에다 대고 뭔가를 슥슥 속삭이자.
"파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 네가? 그 말 많은 네가??????"
어글리불의 말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큰 웃음을 터뜨리는 하르무.
정말 믿을 수 없었다.
그 천하의 어글리불이 말이지.
그렇게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면서 떠들기를 좋아하는 마술사 녀석이 고작 여자아이의 수다 때문에 재워뒀다?
캐릭터가 참 특이한 녀석이군.
그렇게 한참을 웃어제끼던 하르무가 겨우 진정이 된 듯 입가에 흐른 침을 슬쩍 닦았다.
"뭐 네가 학을 뗄 정도의 수다를 못 듣는 건 아쉽긴 하지만 말이야. 나중에 깨어나면 너와 이 여자아이를 동시에 내 곁에 좀 둬봐야겠군. 그렇다면 하루가 심심하지 않겠지?"
"그... 그렇죠..."
진땀을 흘리는 어글리불을 보며 그의 곤란한 표정을 즐기는 하르무였다.
허나 이내 정색을 하는 하르무.
"그나저나... 열쇠는 언제쯤 숙성이 끝나는 것이지?"
"아. 그것. 앞으로 한 달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흐음... 한 달이라..."
턱에 손을 괸 채 벅벅 긁어대는 하르무.
늘 그가 탐탁치 않은 모습일 때면 무의식 중에 나오는 버릇 중 하나였다.
그 행동에 황급히 고개를 숙여대는 어글리불.
자신은 자라이와 같은 일을 하지만 그와 같은 위치가 아니었다.
자라이야 하르무의 직속이긴 하지만 자신은 완벽한 주종관계.
더군다나 하르무의 잡일 담당인 자신으로서는 이렇게 해야 하는 게 당연한 것이었다.
"뭐 좋아. 한 달. 한 달이면 우리 환수들에게는 지극히 짧은 시간이긴 하군."
이들이 말하는 숙성.
예로부터 루비온 왕국은 왕가의 핏줄에게 열쇠를 맡겼다.
하지만 모든 것은 선대가 행한 후 왕가의 핏줄이 성인이 되었을 때 왕에게 알려진다.
그렇기에 몇몇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르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허나 하르무를 비롯한 주인들과 그들의 측근들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들은 직접적인 관계자들.
모르는 게 없는 그들이었고 이런 일을 그들이 몰라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열쇠의 숙성.
반으로 나뉘어진 열쇠는 다시 하나로 되돌아 갈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이 짧지 않다는 것은 당연한 일.
그나마 벌써 공명을 시작했기에 한 달이라는 것이지 원래는 공명을 일으키는 것조차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게 지금 되고 있는 시점에서 한 달 정도라...
한 달 정도만 기다리면 된단 말이지?
"인간들 쪽은? 그들이 이 곳을 알아차리기 전에 다 끝낼 수 있는 것이지? 설마 내가 나서거나 해야 하는 그런 불상사는 안 생기는 것이겠지?"
"인간들은 이 곳에 올 수 없을 겁니다. 이 곳은 약간의 왜곡이 만들어져 있으니까요."
"하긴 인간들이 이 곳을 알 수는 없겠지. 그런데 인간들 중에도 방심할 수 없는 녀석들이 몇 명 있는 것 같던데?"
"그건 일단은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혹여나 되지 않는다면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 자라이 님도 있으시구요."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다.
고개를 크게 위아래로 흔드는 하르무.
짝짝짝-
"퍼펙트하군. 그럼 나는 몸이나 좀 풀고 올까? 밖에 있는 녀석들도 영 신경이 쓰이고 말이지."
"제가 갈까요? 하르무 님."
"아냐~ 아냐~ 됐어. 몸이 찌뿌둥하기도 했고 말이야. 내가 가지. 너희는 여기에 신경을 쓰도록."
그 길로 하르무는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서로는 대치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