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
통로(2)
"이것들! 공주님을 내놓아라!"
문을 벌컥 열며 데프트가 외쳤다.
그리고 그를 뒤따라 들어오는 한 무리의 인간들.
마수 사냥꾼들과 왕국의 기사들로 이루어진 집단이었다.
그런데...
힘차게 들어온 것과는 달리 너무나도 다른 실내.
휑-
아무 것도 없다.
건물 안에 있는 건 그저 의자와 테이블 등의 집기들.
이미 떠날 사람들은 모두 떠난 듯했다.
"...야. 이게 어떻게 된 거냐?"
그는 뭔가 설명을 구하는 듯한 얼굴로 자신을 뒤따라온 부하를 힐끗 쳐다보았다.
"어... 저... 그게..."
보고에 따르면 분명히 그랬다.
여기에 한 무더기의 녀석들이 모여 있다고.
오픈도어라고 했나?
그 녀석들이 말이다.
그런데 기껏 왔더니 이렇게 아무도 없는 것은 또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나...
...이제 죽었다.
그의 등줄기를 타고 스륵 흐르는 땀방울들.
"왜 말을 안 하냐?"
"...어... 분명히 있다고 했습니다만..."
"아~ 이거 골 때리네. 또 어디서 찾냐? 공주님을. 겨우 있는 곳을 찾아 왔더니 여기에 없으면 또 뭘 어떻게 하라는 말이지?"
데프트는 부하에게 쌍욕을 퍼부으려다가 멈춘 대신 혼자 중얼거렸다.
하긴 부하 녀석이 무슨 잘못이겠나?
먼저 눈치를 채고 도망간 녀석들이 대단한 것이지.
"데프트. 이 곳은 아무도 없는 것 같소만."
그때 대화에 끼어든 남자.
그들과 함께 온 마수 사냥꾼 협회의 브로드였다.
협회장으로부터 자신이 직접 가라는 지시를 받은 터였다.
하긴 공주를 구하는 일이다.
자신 정도 되는 급이 함께 가줘야 왕국에도 체면이 살겠지.
헌데 지금 이렇게 허탕을 칠 줄이야...
공주가 납치되고 이 정도 시간이 지났다면 과연 공주가 살아있을 지조차 의문스럽다.
그렇기에 더욱 걱정스럽게 들리어 오는 브로드의 말투였다.
"이거 마수 협회의 탐색조들에게 따로 들어온 소식은 없었소? 이대로 아무런 성과도 없이 돌아갈 수는 없는데... 이대로 돌아갔다가는 아마 죽빵이라도 맞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만..."
"에? 죽빵이요?"
기사단장이라는 사람이 그런 상스러운 말을 써도 되나?
순간 잘못 들었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는 브로드였다.
"으... 저 종종 두들겨 맞아요. 이게 참 월급쟁이의 신세라는 게 그렇지 않겠소? 처자식 먹여 살리려고 다 그렇게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니까. 알지 않소? 협회장은 그런 게 없으신가..."
"죽...빵이라면 그 우리 마수 사냥꾼들도 잘 쓰지 않는 단어이긴 하오만..."
"어휴. 뭐 여하튼 그렇소. 그나저나 빨리 공주님을 찾아야 하는데 일단 탐색조들에게도 한 번 새로운 보고사항이 있는지 알아봐주시겠소? 우리도 이렇게 된 이상 빨리 이동을 해서 다시 공주님을 좀 찾아야겠소."
이들 마수 사냥꾼 협회와 왕궁.
두 개의 집단은 서로 필요할 때에는 공조를 하는 지극히 대등한 관계였다.
가끔 두 집단들 사이에 으르렁거리는 일이 있기는 했지만 이렇게 힘을 합쳐야 하는 일에 대해서는 완벽한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내는 그들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이렇게 공주를 찾는 일에 함께 달려온 데프트와 브로드.
헌데 힘이 쫙 빠지게 이렇게 허탕을 쳐버린 것이었다.
"일단은 좀 가죠. 공주님은 찾아야 하지 않겠소? 제가 저희 탐색조들에게 다른 보고가 있는지 물어보겠소."
"그럼 좀 부탁하겠소. 일단은 공주님이 있을 만한 곳으로 다시 이동을 해야겠소이다."
둘의 말투는 달랐지만 원하는 바는 같았다.
그렇기에 둘은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얼른 나머지 일행들을 이끌고 아무 것도 없는 건물을 떠나갔다.
****
삐걱-
"젠장. 하마터면 걸릴 뺀했다."
한 무리의 일행이 떠나는 것을 본 후 건물 밑에서 남자 수십여 명이 기어나왔다.
올라오자마자 옷을 툭툭 털어대는 남자.
캉고르단의 시프였다.
그는 오픈도어라는 단체에 대해 알아보라는 명령을 받고 결국은 그들의 본거지인 이 곳까지 온 상태였다.
하지만 자신들이 왔을 때에는 이미 이 곳은 빈 상태였다.
종이 쪼가리 하나 조차 남지 않은 이 곳.
그 와중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황급히 숨었던 곳이 바로 이 곳.
갑자기 들이닥친 그들 때문에 자신들은 이 건물 안에 있던 지하로 황급히 숨어든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완전히 떠난 소리를 듣고도 혹여나 만에 하나의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 한참을 더 머무른 후 지하에서 올라온 것이었다.
"쟤네는 뭐지??? 분명히 무언가를 찾으러 온 것 같았는데."
"모르겠습니다."
"...야. 물어보면 재까닥 대답이 나와야 하는 것 아니냐?"
절로 한숨이 나온다.
분명히 부하들을 이렇게 키우지는 않았었는데.
부하들이 왜 갈수록 멍청해지는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에휴... 말을 말자 말을 말아. 너희는 이런 현장을 돌아다닐 게 아니라 훈련을 더 받아야겠다"
죄... 죄송합니다.
머리를 푹 수그리는 부하들.
그런 녀석들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답답해지는 시프였다.
그나저나...
이 집단은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목적도 알 수 없고 정체도 알 수 없다.
자신 정도의 엘리트가 이렇게나 찾아다녔는데도 알아낸 건 단 두 가지.
단체의 이름이 오픈도어라는 것과 마수와 관계가 있다는 것 밖에는 알아낼 수 없었다.
심지어 그것도 겨우 알아낸 것.
그 외에는 딱히 특별한 게 아무 것도 없었다.
그 남자조차도 땅으로 꺼졌는지 하늘로 솟아버렸는지 보이지도 않고 말이다.
"젠장. 다른 조들에게는 연락이 없었나?"
"네. 없었습니다."
절로 골치가 아파왔다.
"일단 우리도 이동한다. 가자."
그 말을 끝으로 시프와 그의 무리들은 건물을 떠나갔다.
****
한편 모두가 완전 헛다리를 짚었던 바로 그 곳.
모두가 찾아 마지않던 그 곳은 바로 이 곳이었다.
환수계와 인간계를 잇는 통로와 통로 사이에 있는 곳.
바로 문을 열어젖힐 수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밖에 숨어있는 자들.
통로의 밖에 몰래 숨어있던 헤이사라는 단체들의 인원들이었다.
그들이 이 곳에 숨어 있는 이유,
이들은 현재 안의 동태를 열심히 살펴보고 있는 중이었다.
헌데 들어간 이만 있고 나온 이가 없다.
"대장. 이거 들어가 봐야 하는 것 아니오?"
"야. 안에 상황을 모르는데 괜히 들어갔다가 죽을 일 있냐? 그거 완전 나 죽여줍쇼 잖냐? 안에는 하르무도 있다고. 자식아."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그들.
그랬다.
이들이 지금 섣불리 진입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
하르무 때문이었다.
다른 녀석들이라면 몰라도 하르무라면 하아...
위험하다.
바로 그때 그들이 익히 잘 알고 있는 목소리가 뒤편에서 들려왔다.
"여~ 반가워~ 후후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