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
통로(1)
휘이이이이이잉~~~
바람이 불어온다.
허나 한 곳에 머물지 않는 바람.
페릴턴이 떠난 자리가 텅 비어버린 것처럼 잠시 불어온 바람 또한 그 자리에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이 곳에 덩그라니 남은 것은 시체 2구.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하게 싸움을 벌이던 체스와 헬캣 뿐이었다.
미동조차 않는 그들.
이미 그들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는 땅을 흠뻑 적시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오히려 사인이 과다출혈로 나오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새어 나온 피.
헌데 시간이 지나도 둘의 몸은 변화가 없다.
꿈쩍조차 않는 둘의 몸.
......죽은 것인가...?
까악- 까악-
그때 죽음의 냄새라도 맡은 양 까마귀들이 푸드득 날아와 한 마리 두 마리 그들의 몸에 앉기 시작했다.
하지만 의외로 따스한 온기가 아직 남아있던 탓일까.
그들은 이내 날개를 푸드득거리며 옆에 나무 쪽으로 날아가 상황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간.
주변에 머물고 있는 시체 전담 청소부들을 몹시도 실망시키는 일이 생겨났다.
죽었을 것이라 생각했던 체스의 몸에서 시작된 무언가 미묘한 변화.
사아아아-
투명한 기운이었다.
그 기운들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 마냥 체스의 상처를 감싸며 그 주위를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메워진다.
흐르는 피가 멎고 벌어졌던 상처 부위가 조금씩 좁아져 간다.
그리고 좁아진 상처 부위에 남은 베이고 찢기고 찔린 상처들은 어느 새 그 흔적조차 자취를 감춰간다.
점점 메어져 가는 그의 상처.
상처의 수는 꽤나 많았다.
하지만 뭔가 의사가 처리하는 것처럼 느리지만 깔끔하게 마치 아무런 상처도 없었던 것처럼 지워지기 시작하는 체스의 상처들이었다.
그런데 이건 또 다른 무언가인 것 같다.
분명히 체스의 몸에서 느껴지는 그 기운은 키린의 기운도 아니었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
각성을 하며 발현된 능력일지도.
여하튼 그렇게 체스의 몸은 점점 치유가 되어갔다.
****
"일어나요. 일어나요. 언제까지 누워있을 거에요. 어휴."
뭔가 깊은 잠에 빠진 자신을 깨우는 듯한 누군가의 목소리.
하지만 몸 자체가 잠에서 깨어나는 것을 자꾸만 거부라도 하는 듯 저 멀리서 자신을 부르는 그 소리에 핼켓은 반응을 하려 하지 않았다.
되레 잘 움직여지지도 않는 귀를 움직여 귀를 덮어버리는 그.
순간 누군가에 의해 귀가 훅 들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그의 귀에다 대고 속삭여지는 말 한 마디.
"여기서 평생 살 거에요? 일어나요. 얼른."
그의 귀를 잡아당긴 건 다름 아닌 어느 새 회복이 말끔하게 다 된 체스였다.
순간.
두근- 두근-
체스의 목소리에 헬캣의 몸뚱아리가 반응을 하기 시작했다.
아직은 미약하지만 심장은 조금씩 어떻게든 삶의 의지를 이어가겠다는 듯 속도를 내고 또 속도를 더하며 펌프질을 해대었다.
그와 동시에 죽은 줄로만 알았던 헬캣이 힘겹게 눈을 떴다.
커허어어어업-
폐부 깊숙이 신선한 공기를 느끼자마자 격하게 숨을 토해내는 헬캣.
그는 생각보다 훨씬 충격이 큰 듯한 모습이었다.
이미 작을 만큼 작아진 그의 몸.
헌데 그의 몸은 온통 붕대로 칭칭 감겨 있었다.
끄으으으응......
몸을 일으키려 해도 마음대로 뭐가 잘 되지 않는다.
붕대도 어색하고 안의 상처는 또 아프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헬캣이었다.
-... 후... 살았나?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네. 다...행이네. 하지만 한 번 더 당하면 그때는 진짜...
정신이 제대로 들지 않은 와중에도 입술만 옴싹달싹거린 채 말을 하는 헬캣.
실은 원래대로라면 그는 이미 죽은 목숨이었다.
헬캣이 살아난 이유.
실은 그에게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심장이 2개라는 것.
하나의 심장이 바스라진다고 해도 나머지 하나의 심장이 움직인다면 그는 어쨌거나 살 수 있었다.
그리고 페릴턴이 떠나기 전 한 행동.
그것은 바로 헬캣의 2개의 심장 중 하나에 검을 깊게 찔러 넣은 것이었다.
일종의 확인 사살이겠지.
하지만 그는 몰랐을 것이다.
헬캣에게는 심장이 하나가 더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지금.
남아있던 심장이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 조금씩 박동을 이어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나머지 하나의 심장마저 사용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어쨌거나 살기는 살았으니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끄응......
헬캣이 몸을 억지로라도 힘겹게 일으켰다.
그리고 몸을 일으킨 헬캣의 눈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체스가 보였다..
순간 급격하게 커지는 헬캣의 눈동자.
헉!!!!!!
-야...너...설마......?
아니야.
그럴 리가 없다.
절대 아니 불가능하지.
헬캣은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었다.
이 녀석이 각성을 했다한들 그 자를 이겼다?
에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다.
아니지 잠깐만.
가능할 수도 있지.
헬캣은 다시 한 번 체스를 바라보았다.
-이...겼냐? 그 자는?
"흐흐흐흐흐. 졌어요. 그런데 저는 어찌된 영문인지 살아버렸네요. 꼼짝없이 죽은 줄 알았거든요."
??????
헬캣은 체스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저 전투를 하기 전보다 오히려 훨씬 매끈한 몸.
-뭐야?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헬캣은 아픈 몸은 둘째치고 도대체 이게 다 어찌된 영문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
아까의 상황.
헬캣이 깨어나기 전.
체스의 몸은 이상한 변화를 겪고 있었다.
재생이 되어가는 그의 몸.
게다가 분명히 지금 체스에게서 흘러 나와 상처를 치료해 나가는 기운.
그 와중에도 체스의 몸은 계속 치유가 되어갔다.
그리고 치료가 마무리 되어갈 때 즈음.
반듯하게 누워있던 그가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덤벼라! 이 자식!!!!!!"
몸을 벌떡 일으키며 하는 말.
그리고 순식간에 체스는 현실을 자각했다.
"아......"
그렇게 회복이 된 체스.
그리고 그는 지금 헬캣의 눈앞에 완전 멀쩡한 모습으로 있는 것이었다.
-이거 가벼운 문제가 아니네.
"...에?"
체스는 이해할 수 없는 헬캣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하지만 일단은.
"그나저나... 몸이 그런데 쉬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괜...찮으세요?"
-안 죽었으니 금방 나을 거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다. 다시 한번 말해봐라.
헬캣은 알고 싶은 게 있었다.
그것도 아주 확실하게 말이다.
****
헬캣은 여기저기 붕대가 칭칭 감긴 몸으로 체스의 손목 부근의 맥을 짚고 있었다.
매우 심각해 보이는 그의 얼굴.
...이건 확실하다.
자신이 알고 있는 그게 확실하다는 말이다.
헌데 저게 도대체 어떻게 지금까지 숨어 있었지?
그리고 왜 이제서야 발현이 된 것이지...?
체스의 과거를 들었던 적이 있었다.
배신을 당해서 죽을 뻔했었다는.
아니지.
죽었다고 했지.
그걸 살린 게 바로 키린이고 말이지.
그런데 저런 몸이면 굳이 키린의 도움이 없어도...
"그나저나... 몸이 그런데 쉬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괜...찮으세요?"
-안 죽었으니 금방 나을 거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다. 다시 한번 말해봐라.
헬캣은 알고 싶은 게 있었다.
그것도 아주 확실하게 말이다.
그는 체스에게 다시 이것저것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