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
2번째 만남(4)
먹힌다.
먹힌다.
먹혀 버린다!!!
공포감이라고는 느껴본 적이 없는 헬캣이었다.
환수계에서 자신을 이렇게까지 옭아맨 자가 있었던가.
심지어 주인들조차 자신을 이렇게 만든 적은 없었다.
헌데 고작 주인의 기운을 받았을 뿐인 녀석이 관여자라는 것 하나 만으로 자신을 이렇게 만들어??????
헬캣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하지만 이미 사방이 막힌 지 오래.
그저 온 몸으로 받아낼 수 밖에 없다.
그는 온 몸에 기운을 둘러 페릴턴이 뿜어낸 기운을 고스란히 받아냈다.
마치 온 몸에 날카로운 이빨에 물어뜯기는 듯한 느낌.
'크으으으...... 제...ㄴ...장...'
절로 육두문자가 튀어 나왔다.
촤악-
촤악-
촤악-
온 몸이 유리에 베인 것마냥 여기저기 혈흔이 생겨난다.
하지만 페릴턴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거세지기만 하는 그의 공격.
'버...벗어나야...'
하지만 이 압력.
쉽지 않다.
자신의 몸을 짓이길 듯 치고 들어오는 이 기운들.
쩌저적-
실드가 갈라진다.
조그마한 금은 하나의 면을 만들어 내고 그 면은 실드 전체의 붕괴를 가져왔다.
그리고 마침내.
더 이상은 헬캣의 몸이 버티지 못했다.
콰과과과과과광-
무자비한 폭행이 헬캣을 뒤덮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악!!!!!!
고통에 가득찬 헬캣의 괴성이 주변을 뒤덮고 한 차례 폭풍이 휘몰아쳤다.
순식간에 모든 것이 휘몰아치고 간 헬캣이 서있는 그 곳.
모든 것이 끝난 헬캣의 주위는 처참했다.
아예 패어버린 주변의 흙들.
그리고 그 기운을 온 몸으로 받아낸 당사자 헬캣.
그의 커다란 덩치는 상처 부위에서부터 터져 나온 피로 뒤범벅이었다.
-......크르...ㅇ
한 차례 미약한 신음소리를 흘린 그.
쿠우우웅-
그의 몸이 무너졌다.
혀를 길게 빼문 채.
****
남은 건 기운도 제대로 못 활용하는 애송이 한 명.
다시 한 번 페릴턴의 만병이 춤을 춘다.
마치 꽃바람이 날리듯 체스를 향해 휘몰아치는 만병들.
챙- 채앵- 채앵-
치고 들어오는 만병들을 쳐내기에 급급한 체스였다.
헬캣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도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체스.
그는 지금의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에는 어떻게 살아 남았는지조차 모르겠다.
기억에조차 없는 자신의 각성.
"너의 몸에는 엄청난 기운이 있지. 하지만 너에게는 그저 장식일 뿐이구나."
페릴턴이 중얼거리며 순간 체스의 턱 밑으로 파고 들었다.
헉-
분명히 체스의 머릿속에 그 장면은 그려졌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빨리 다가오는 그의 몸.
슈욱-
일순 체스의 턱 밑으로 치고 들어오는 페릴턴의 주먹.
'피... 피해야 한다.'
페릴턴의 주먹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심상치 않았다.
...저걸 통째로 맞았다간...
그대로 두개골이 으스러지겠지.
그런 생각이 퍼뜩 든 순간.
체스의 중단의 씨앗이 맹렬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온 몸의 근육이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놀란 듯 몸 속 곳곳에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으나 체스는 멈추지 않았다.
두둑- 두두둑-
그리고 갑자기 체스의 얼굴이 뒤로 홱 젖혀졌다.
'피...피했나?'
라고 생각하는 순간 페릴턴의 위로 쳐올려진 주먹이 체스의 턱 끝을 살짝 스쳤다.
아주 살짝.
하지만 그 살짝이 페릴턴의 입장에서야 살짝이지 체스에게 있어서는 결코 살짝이라고 할 만한 게 아니었다.
투웅-
일순 체스의 뇌가 흔들렸다.
페릴턴의 주먹에 실린 기운은 체스의 턱 끝에서부터 시작해 그의 두개골을 흔들더니 이내 온 몸으로 퍼져 나갔다.
크아아아아아아악-!!!!!!
울려퍼지는 체스의 비명.
몹시도 큰 덩치임에도 불구하고 그 한 방에 그대로 공중으로 떠오른 그의 몸.
바로 그때.
페릴턴의 발이 체스의 명치를 정통으로 가격했다.
쾅쾅쾅-!!!
연이어 이어지는 그의 발길질.
우당탕탕탕탕-
그의 발길질에 그대로 땅에 몇 번이나 튕기며 데굴데굴 구르는 체스의 몸.
'끝인가?'
굳이 만병을 쓸 필요도 없다.
저 정도 실력이라면 굳이 만병에 피를 묻힐 필요조차 없지 않은가.
****
체스는 아예 죽어버린 듯 미동조차 않은 채 땅바닥에 뻗어 있었다.
사람의 힘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강하다.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를 훌쩍 넘어선 그 힘에 도대체 어떻게 대처를 해야할 지조차 알 수 없었다.
눈이 감겨온다.
몸에서는 힘이 쭈욱 빠져간다.
마치 침대에 엎드려 있는 듯한 포근함.
뭐 모든 사람이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그런 포근함과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어느 덧 정신을 잃어가는 체스였다.
그렇게 모든 몸의 긴장이 쫘악 풀려가는 그때.
무언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야! 야!'
...꿈인가?
뭐야?
'야야야! 정신 차리라고!'
머릿속을 직접 울리는 목소리였다.
'누구...?'
'시간이 많지 않다. 난 키린이다. 나 알지?'
키린?
키린이 누구였지?
아~
빌어먹을 기운을 집어넣은 그 주인이라는 작자?
시퍼런 녀석이었지 아마.
'그래. 나야 나.'
지금 이들 간에 이런 정신적인 교류가 가능한 이유.
그것은 삼단을 다 열어젖히게 된 체스의 기운에 키린의 기운이 녹아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이유까지는 체스가 알 수 없는 노릇.
그저 키린이 머릿속으로 자신을 부르는 게 점점 의식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지금 나도 상당히 무리하는 거니까 그냥 듣기만 해라. 일일이 설명해 줄 시간이 없다.'
...귀찮...아...
온몸이 나른하다.
체스는 거기에 일일이 대꾸할 힘도 없었다.
단지 지금 느껴지는 것.
페릴턴이 자신에게 저벅저벅 걸어온다는 것.
'젠장...'
'시끄럽다. 그냥 내 말만 들어라. 네 녀석 안에 들어있는 나의 기운. 그걸 네 삼단에 잘 융합만 시키면 지금 이 상황을 벗어날 수가 있을 거야 아마도.'
'...아마도...?'
'그래. 아마도. 나도 내 몸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죽은 척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지 않은데?'
엥?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죽은...척...?
'일단 정신을 집중해라. 그리고 네 몸 안에 있는 나의 기운을 감지해라. 느껴지냐?'
체스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와중에도 자신의 내부에 정신을 집중시켰다.
'느껴지냐?'
'...아니오.'
'다시 중단의 기운을 돌려가면서 원을 그리듯이 기운을 회전시켜봐라. 엇! 야야야. 걸리겠다. 이제 힘이 딸려서 더 이상 말을 못 할 수도 있겠다. 일단 어떻게든 살아남아라. 알겠지? 넌 꼭 어떻게든 살아 남아야 한다?'
뚝-
머릿속으로 들려오던 소리가 갑자기 끊겨버렸다.
뭔가 다급하게 말하는 것 같았는데...
그쪽도 또 무슨 일이 생겼나 보다.
그나저나.
이제 페릴턴이 다가오기까지 몇 발자국 안 남았다.
'차...ㅈ아야지...'
체스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아득해져가는 정신줄을 부여잡기 위해 애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