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의 채무 탈출기-165화 (165/249)

#165

2번째 만남(3)

어르르르르르-

고개를 세차게 흔든 체스.

그렇게 그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애썼다.

한창 회전을 할 때 느껴졌다.

아무 것도 걸리지 않았다는 것을.

결국은 혼자 헛짓을 한 게 된 셈이다.

"하유..."

눈앞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던 세상이 다시 땅 그리고 하늘로 제대로 보일 때.

전장의 상황이 두 눈에 들어왔다.

본 모습으로 돌아온 헬캣.

그 원인을 제공했을 터인 페릴턴.

그리고 한심하다는 눈초리로 자신을 쳐다보는 4개의 눈동자.

흠칫-

"...뭐...뭐요?!!"

괜히 제풀에 찔린 체스였다.

****

"자. 이제 다시 그때의 상황이 되었군. 이번에는 할 수 있을 것 같나?"

담담한 표정으로 둘을 마주 보고 선 페릴턴.

그저 사람 하나가 땅 위에 두 발을 디디고 서있을 뿐이었다.

지극히 허술한 자세로 말이다.

헌데...

오히려 공격을 할 수가 없다.

공격을 할 경우 순간순간 떠오르는 다음의 장면은 어느 것 하나 낙관적인 장면이 없었다.

"칫..."

입술을 잘끈 깨무는 체스.

그리고 그것은 헬캣도 마찬가지였다.

뭔 놈의 인간이 저리도 센 것인지.

지난 번에 붙었을 때에도 느꼈지만 저 녀석은 괴물 수준이다.

심지어 아직 그 힘을 꺼낸 것도 아닌데 자신의 본 모습을 이렇게 쉽게 이끌어 낼 정도라니.

-칫...

"뭘 저랑 똑같은 말을 하고 그래요?"

-야. 너도 저 녀석이랑 똑같은 관여자인데 넌 왜 이 모양 이 꼴이냐?

"허......"

헬캣이 짜증을 내자 체스의 말문이 막혔다.

지금 이거 완전 엄마 친구 아들 말하는 거 맞지?

애초에 서로가 아예 다른 걸 이렇게 비교를 하다니.

그런데 이상도 하지.

이런 말을 들으면 응당 자존심이 상해야 하거늘 지나친 실력의 차이 탓인가 그런 느낌은 단 1도 들지 않았다.

그냥 듣는 엄마 아들은 조금 짜증만 날 뿐.

"...좀 그렇네요."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페릴턴.

너무 아무 것도 모르는 것 같군.

그럼 어차피 오늘 여기에서 끝이 날 거 조금 알려줘 볼까?

그래도 알고 죽어야 좀 덜 억울하지.

"관여자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뜬금없는 페릴턴의 질문에 체스가 적잖이 당황했다.

한창 전투 중에 무슨 질문이 저래?

"...글쎄요..."

"관여자라는 건 말이지. 말 그대로 통로를 열고 닫는 자를 말하는 것이지. 물론 통로를 여는 것은 지금 다른 녀석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여러 가지가 필요하긴 하지만 말이다."

"그건 아는데..."

하지만 페릴턴은 체스의 말에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말.

뭐 대충 내용은 그러했다.

관여자라는 건 말 그대로 인간계와 환수계의 본질적인 구성에 관여를 할 수 있는 존재.

그것은 원래 한 명 씩만 존재하던 존재들.

한 마디로 특별한 존재라는 말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체스는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존재.

무언가의 개입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그 자도 체스가 관여자가 될 줄은 몰랐을 것이라 페릴턴은 이야기했다.

굳이 관여자를 두 명이나 만들어서 세상에 혼란을 야기할 필요는 없잖은가.

그렇기에 페릴턴은 그렇게 추측하고 있었다.

체스는 후천적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아~ 그런 것이군요."

이게 기분이 또 미묘했다.

서로 검날을 겨누고 있는 상황에서 적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다니...

"그리고 대충 다 이야기한 것 같지만 네 몸에 있는 그 기운. 여러 개가 섞여 있지. 한 마디로 정제되지 않았다고 해야겠지. 그렇기에 각성이 되었다 한들 네가 그 힘을 모두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고."

그 말에 헬캣이 체스를 보았다.

그래서 그런 것이었군.

이 녀석의 몸에는 주인의 기운에 이제 갓 알에서 깨어난 삼단의 기운 그리고 그 애매한 향기...

향기랄까 그 익숙한 냄새...

그 세 기운이 제멋대로 되어있기는 하지.

그럼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럼 그걸 어떻게 해야 하지?

그게 실마리가 될 것 같았다.

페릴턴을 이길 수 있는 실마리.

"파하하하하하하하. 너도 어지간히 정신이 없구나. 헬캣."

어이없다는 듯 박장대소를 터뜨리는 페릴턴.

아마 지금껏 자신이 움직인 이래 이렇게 웃은 게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

어찌나 웃었는지 찔끔 나온 눈물을 손으로 훔쳐내던 그는 아직도 진정이 되지 않았는지 딸꾹질마저 해댔다.

-...왜 웃지?

"미친 거 아니냐? 지금 여기서 어차피 죽을 녀석들이 무에 그게 궁금하냐? 그리고 설령 가르쳐 준다 한들. 그걸 바로 적용할 수 있겠나? 난 절대 아니라고 본다."

아~~~

젠장...

그래서 저렇게 미친 듯이 웃어제낀 것이었군.

...역시 체스와는 달리 만만하지가 않은 놈이다.

"그나저나 너무 시간을 오래 끌었다. 단번에 가겠다."

크르르르르르르르-

순간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페릴턴의 기운.

흠칫-

저 기운은 단지 인간의 기운이... 아니었다.

명백히 느껴지는 하르무의 적의가 그의 기운에 말끔히 녹아들어 있었다.

'제길... 진심이군.'

꿀꺽-

-...긴장해라. 곧 들이닥칠 것 같다...

헬캣이 긴장한 만큼 체스 또한 긴장하기는 마찬가지.

자신도 모르게 배어 나온 손바닥의 땀을 닦는 체스였다.

슈르르르-

자신의 기운을 몸에 두른 페릴턴.

그의 몸에서는 육안으로 식별이 가능할 정도로 짙은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뭉실뭉실 피어 오르고 있었다.

그르르르륵-

"그럼 가지."

자신이 쥔 대검으로 땅을 긁으며 페릴턴이 발걸음을 옮겼다.

****

슈와아아아아앙-

순간 페릴턴이 디디고 있던 땅이 그의 발목 정도까지 움푹 패여 나간다.

그 사이 마치 빛처럼 쏘아지는 그의 몸.

까아아아앙-!!!

체스의 대검과 페릴턴의 대검이 부딪혔다.

일순 페릴턴의 대검에서부터 밀려오는 힘이 검을 맞대고 있는 체스의 몸을 뒤로 밀어낸다.

끄드드드득-

체스의 발이 디디고 있는 땅이 움푹 패여갔다.

그리고 순간 옆에서 끼어드는 헬캣.

이미 본 모습으로 돌아온 지라 한쪽 발로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무기들을 튕겨내며 다른 발로는 있는 힘껏 페릴턴의 몸을 쳐내는 그였다.

그의 앞발 중 하나가 페릴턴의 몸을 힘껏 쳐내려는 그 순간.

미처 생각을 못했다.

페릴턴.

그 자는 하르무의 기운까지 가진 관여자라는 것을...

순간 그의 몸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하르무의 기운.

그것은 주둥이를 양껏 벌린 채 헬캣의 온 몸을 물어제낄 요량으로 뿜어져 나왔다.

엄청난 적의와 살기를 동반한 채.

마치 육식동물이 초식동물을 물어뜯으려는 것 마냥.

일순 온 몸이 거기에 노출되어 버린 헬캣의 온 몸에 닭살이 쫘아아아아악 솟아 올랐다.

-시...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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