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
도움(3)
계약이 성립되었다.
선수금은 B급의 환석.
계약 내용은 켄타를 도와 움직이며 작금의 모든 상황의 정리였다.
그리고 관여자로서의 역할을 확실히 할 것.
뭐 그 정도이려나.
'아. 그래도 뭔가 덤탱이를 쓴 것 같은데...'
너무 일찍이 덥석 물은 건 또 아닌가 싶었다.
저것 하나에 그냥 아주 눈이 홱 돌아버려서...
괜히 찝찝한데 이거...
"계약 위반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
고심에 빠진 체스에게 들려오는 켄타의 말이었다.
계약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낸 얼굴의 켄타.
그는 지극히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반면에 계약 불이행에 대해서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던 체스라 그의 말에 일순 당혹스러운 기색이 드러났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언제 계약이라는 걸 해본 적이 있던가?
예전에 끽해야 돈 좀 벌려다가 칼침 맞은 정도이려나.
그것도 심지어 구두계약이었고 말이다.
그렇기에 체스로서는 혹여나 계약을 불이행 시 어떤 불이익이 떨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니오. 뭐...가 있나요?"
"뭐긴 뭐야? 계약 위반하면 거기에 따른 위약금이 발생하는 것이지. 굳이 궁금하면 한 번 해보던가."
"...아니요. 뭐 안 좋은 걸 굳이 할 필요는 없지."
'이거 어째 된통 걸린 것 같은데... 쓰으으으읍...'
찝찝하다.
그것도 몹시 찝찝하다.
거 왜 화장실 가서 괜히 뒤 안 닦은 그런 느낌이랄까.
그때 손을 슬쩍 들어 올리는 켄타.
슈와악-
그러자 그의 손에서 일순 뿜어져 나오는 빛.
-야. 너 그거...?
"당연한 것 아니냐? 계약을 하려면 모름지기 이 정도는 해야지. 모든 건 확실하게 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켄타의 펼쳐진 손바닥 위에 생겨나는 것은 방금 그들이 한 계약 내용이었다.
글씨가 한자 한자 생겨나며 순식간에 만들어지는 계약서.
거기에는 환수계의 글자가 잔뜩 쓰여져 있었다.
"이거 제가 읽을 수가 없는데요...?"
"잠깐만. 바꿔줄게."
켄타가 손을 휘젓자 이내 인간들의 글자로 바뀌어져 가는 계약서.
그제야 한 글자씩 또박또박 읽어보는 체스.
뭐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다른 이야기는 없었으나 마지막에 쓰여진 내용이 조금 그렇긴 했다.
[계약을 불이행 시 100배의 위약금을 물린다.]
"이...이거!!! 위약금이 너무 큰 것 아니에요???!!!"
체스가 황망하다는 표정으로 그 문구를 가리켰다.
그러나 별 것 아니라는 켄타의 표정.
"너 어차피 계약 잘 이행할 것 아니야? 계약만 잘 이행하면 되지. 뭘 그런 문구에 일일이 일희일비하고 있냐?"
"...그 말은 맞는데..."
"그래. 그럼 걱정할 게 없지. 얼른 사인이나 해."
"...어디에다가요?"
"거기 밑에 있잖아."
밑을 보니 확실히 사인을 하는 란이 있었다.
켄타가 먼저 서명을 하는 것을 본 체스는 자신의 손가락을 똑같이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무언가 글씨가 촤라락 생겨져 간다.
대수롭지 않게 글자를 보던 켄타.
갑자기 그의 두 눈이 등잔 만하게 커졌다.
"왜...왜요??? 뭐 잘못되었나요???"
그의 모습에 내심 불안해진 체스가 되물었다.
"아... 아니다."
황급히 완성이 된 계약서를 돌돌 말더니 그대로 자신의 손바닥으로 거둬들이는 켄타.
그의 표정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금세 원래대로 돌아온 그의 얼굴.
"이...이렇게 계약은 성립되었다. 거 뭐지. 일단 해야 할 일은 통로를 여는 것을 막는 것이다. 나머지는 내 헬캣 이 녀석에게 일러두지. 야. 잠깐 이야기 좀 하자."
인사를 한 후 켄타는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옆에서 이 모든 광경을 조용히 지켜보던 헬캣 또한 심각한 표정으로 그의 뒤를 따라 나갔다.
"뭐야? 갑자기."
갑자기 미묘하게 바뀌어버린 그들의 표정에 뭔가 위화감이 느껴진 체스였다.
하지만 이미 계약도 맺어져 버렸고.
"흠... 언제부터 움직여야 하나?"
자세한 건 밖에 나간 헬캣과 이야기를 해보면 알겠지.
내심 걱정이 되긴 하지만 잘 하면 그만이지 뭐.
얼른 끝내고 그걸 받아서 다 팔아 버리고 빚이나 청산해야지.
그리고 이 놈에 지긋지긋한 이 직업도 때려치우고 게다가 돈이 남으면 설렁설렁 놀면서 살아야지.
벌렁 드러누운 체스의 머릿속에 문득 떠오른 미래에 대한 환상이었다.
장미빛 미래로 가득 찬 그의 머릿속.
그렇게 그는 자신의 머릿속에 미래에 대한 계획을 하나씩 차곡차곡 쌓아갔다.
****
"오셨습니까?"
갑자기 불쑥 나타난 여자를 향해 여러 명의 남자들이 재빨리 고개를 숙여 조용히 인사를 했다.
코까지 복면을 덮어 눈만 동그라니 드러난 그녀.
눈만 봐서는 몹시도 귀여운 인상의 그녀였다.
하지만 귀여운 인상의 모습과는 달리 어딘가를 응시하는 그녀의 눈매는 몹시도 사나워 보였다.
"응. 그래서 상황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지?"
"네, 지금 안쪽에 공주님이 있는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흔적이 여기에서 끊긴 게 확실하거든요. 그리고 수시로 들락날락거리는 인간들도 있구요."
"그래? 이제야 찾았네, 정면으로는 못 들어가겠지?"
"네, 맞습니다. 안에 얼마나 많은 인원이 있는지도 모르구요. 그리고 아시다시피 저희는 탐색조라... 전투능력이 일반 마수 사냥꾼들에 비해 몹시도 낮은 거 아시잖아요."
그녀의 말에 대답을 하는 한 남자.
"참나. 뭐하는 거야? 다들 늦어터져서는. 보고는 올렸어?"
"네. 이미 보고는 올렸습니다. 좀 특별히 발이 빠른 애를 미리 보내뒀죠. 그 녀석이 빠르게 지원 요청을 한다면 그 전에 미리 확실하게 구출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그 전에 도착해야 할 건데."
"뭐 저희야 그렇다손 쳐도 에밀리 님께서라면 혼자서 하실 수 있지 않으실까요?"
"야! 뭐 내가 용가리통뼈인 줄 아냐? 아직 시집도 안 간 처녀가 괜히 나대다가 어디 한 군데 생채기라도 생겨서 시집도 못 가면 어? 네가 책임질 거야?"
"...그...그건..."
낮은 목소리로 버럭 화를 내는 그녀.
무슨 개소리를 하느냐는 듯한 말투의 그녀였다.
그렇다.
지금 모인 이들은 탐색조들.
하지만 탐색조가 왜 굳이 이런 곳에서 마수들의 탐색을 하지 않고 여기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이지?
마수 사냥꾼 협회에는 일반적인 탐색조와 베일에 싸인 탐색조.
두 종류의 탐색조가 존재했다.
그 중 후자에 속하는 이들.
이들은 마수 사냥꾼 협회에서 특별히 운용하는 탐색조들이었다.
무언가 긴박한 상황이 들이닥칠 때 협회장 로스티가 직접 운용하고 그의 지시만 따르는 이들.
일명 '바람의 아이들' 이라 불리우는 이들이 바로 이들이었다.
...아이들이라고 하기에는 좀 많이 크긴 했지만...
"에밀리 님! 에밀리 님!"
그때 뒤에서 누군가 그녀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