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의 채무 탈출기-154화 (154/249)

#154

납치(1)

체스와 헬캣이 사라지고 난 후의 상황.

말 그대로 난리법석이라고 할 정도로 인간계에서는 한바탕 대소란이 벌어진 후였다.

우선 계속해서 수도로 밀고 간 데몬 스코르피들와 마수 사냥꾼들과의 대충돌.

하지만 선발로 보냈던 탐색조들이 봤던 정도의 수가 아니었다.

심지어 체스와 헬캣과 마주 했던 정도의 수조차 아니었다.

본대까지 합쳐 어마어마한 수의 데몬 스코르피 무리들과 맞붙게 된 마수 사냥꾼들.

아마 협회장이 없었으면 함께 간 랭커들조차도 생존을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치열한 전투였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일.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저 많은 수의 데몬 스코르피가 온 것은 양동작전이었다.

그들의 진정한 목표는 왕궁에 있는 공주.

물론 왕궁에는 기사단장인 데프트가 있다.

하지만 정면으로 들어오는 마수 이외에도 은밀히 침투한 것들이 있었다.

그것들을 알아차리지 못한 게 패착이라면 패착.

데프트가 미친 듯이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정면으로 치고 들어온 마수들을 처리하는 사이 은밀히 숨어 들어온 것들은 공주를 납치하자마자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들이 휩쓸고 간 왕궁은 또다시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여기저기 무너진 첨탑과 외벽.

왕궁 내부도 별반 다를 바 없다.

마수의 발톱이 할퀴고 간 반쯤 날아간 기둥하며 무너진 천장까지.

벽 여기저기에 촤악 뿌려진 핏자국 만으로도 그 상황이 얼마나 참혹했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여기 왕좌에 머리에 흰 머리띠를 두른 채 반쯤 누워있다시피한 남자.

도리안 왕이었다.

"전하!!!"

갑옷을 입은 데프트가 성큼성큼 왕이 있는 홀로 들어왔다.

하지만 크나큰 상심에 빠진 왕은 거기에 대답할 기운조차 없어 보였다.

죽을 뻔한 건 둘째치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공주가 사라진 탓이었다.

"전하! 흔적을 찾았습니다."

"뭐야?????? 공주는 무사한가!!!"

"네. 무사합니다. 지금까지 확인한 걸로는요."

뭣???!!!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희망적인 말이 들렸다.

지금껏 들었던 말 중에 왕이 제일 기다리던 말이 아닌가.

벌떡 자신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왕.

"그런데 우리를 속이고 들어온 것들 전부 마수들 아닌가? 그때 그 왔던 마수들 말이야."

"이게 말입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인간들도 섞여 있었습니다. 분명히 왕국의 전복? 뭐 그런 걸 같이 노리고 있는 것이겠죠."

"그럼 나에게 보고할 것이 아니라 얼른 가서 공주를 찾아와야 하는 것 아냐?. 아니. 아직 안 가고 뭘 하는 거야??? 아니지. 내가 같이 가야지. 우리 공주를 데리러 가는 길에는 당연히 내가 가야지."

"전하. 제가 직접 가서 반드시 공주를 데려오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럼 전 얼른 가겠습니다. 저만 믿으십시오!"

왕의 말에 흠칫 놀라며 짧은 팔다리를 놀리며 얼른 홀을 빠져나가는 데프트.

"자... 잠깐, 같이 가재도!"

하지만 데프트는 왕의 말을 듣지 않았다.

싸움도 할 줄 모르는 왕이 혹여나 따라 붙어봐라.

그것도 얼마나 또 짐짝인가.

그는 종종걸음으로 왕이 따라붙기 전 얼른 홀을 빠져나갔다.

"아이씨. 저거 가버렸네."

왕이 혹여나 자신의 목덜미를 잡기라도 할까봐 냉큼 빠져 나가버린 데프트.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왕이 아니다.

"여봐라! 내 갑옷을 가져와라!"

갑작스레 퍼진 왕의 말에 왕궁 전체가 부산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

아~

간결한 감탄사.

너무 상쾌한 바람이 코 끝을 스친다.

빠르게 달려가는 말 위에서 느껴지는 바람은 정말이지 최고라고밖에는 말을 할 수 없었다.

흐으음~~~

감탄사의 주인공은 몹시도 예쁘게 생긴 10대의 여자아이.

바람의 결에 따라 파르르 움직이는 살짝 올라간 눈꺼풀.

그리고 바람의 향기가 느껴질 때마다 벌렁거리는 그녀의 콧구멍.

말 위에 탄 채 어디론가 빠르게 이동 중인 그녀는 두 눈을 감은 채 연신 감탄사를 내뱉는 중이었다.

"아~~~ 너무 좋아. 이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나 평생 왕궁에 안 돌아가고 있으면 안 될까?"

하지만 그녀의 뒤에서 함께 말을 타고 있는 남자에게서는 아무런 대답이 흘러 나오지 않았다.

"대답 안 할 거야? 납치를 했으면 적어도 나에게는 전부 다 얘기해 줘야지~"

말에 앉은 채 연신 입을 조잘대는 그녀.

저 예쁘장한 얼굴을 보니 바로 그녀가 누구인지 알 것 같다.

그렇지.

그녀는 바로 얼마 전에 납치를 당한 도리안 왕이 아껴 마지않는 로레인 공주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얼굴이 겁을 먹겄거나 그런 납치를 당한 듯한 표정이 전혀 아닌데?

아니 오히려 몹시도 신이 난 듯한 그녀의 얼굴.

지금 모습은 뭐라고 할까나.

저건... 마치 소풍을 나온 듯한 그녀의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뒤에 앉아서 말을 몰아가는 사내.

단벌복인 보라색 연미복을 입은 어글리불이었다.

지금 그의 표정은 완전 똥 씹은 표정 그 자체.

그와 말머리를 나란히 한 채 달리는 사람들 또한 어글리불과 완전히 똑같은 표정이다.

이번의 이 작전.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작전이었다.

데몬 스코르피를 이용해 수도의 전력을 분산시킨다.

그리고 이것을 성공시키기 위해 밑밥을 열심히 깐다.

먹이고 뿌리고 또 먹이고 뿌리고.

하지만 이것 만으로 끝이라면 또 완벽하다고 할 수 없지.

그 놈.

왕궁에 있는 그 뭐시기냐.

그 강하기만 한 땅딸보 자식을 끌어내기 위해 많은 환수들을 보내 정면에서부터 부딪혀 간다.

인간들의 학습효과를 믿고 있는 어글리불이었다.

한 번 당해봤으니 반드시 빠르게 반격을 할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완벽히 주효했다.

그 뒤는 어떻게 되느냐?

그렇게 땅딸보마저 빠지면 이제 자신의 역할이 시작된다.

자신과 암습이 전문인 오픈도어 인원들이 몰래 공주가 있는 곳까지 숨어 들어간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공주를 납치해서 데리고 나온다.

이건 정말 최고지.

이보다 더 완벽한 작전은 있을 수 없다.

자신이 세운 계획이었지만 이건 정말이지 다시 생각해 봐도 감탄을 금치 못할 작전이었다.

비록 많은 희생을 치뤘으나 대의를 위해서는 소의를 희생해야 하는 건 당연한 것.

그렇기에 아마 도구로 쓰인 동족들도 분명히 저 세상에서 기뻐할 것이다.

그렇게 완벽하게 성공한 작전이었다.

헌데 지금 몹시도 실패했다는 감정이 느껴지는 건...

제길...

귀에서 피가 주르륵 흐르는 느낌이다.

...그 이유는...

바로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로레인 공주 때문이다.

처음에는 뭔가 잔뜩 겁을 먹은 듯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조용히 갈 줄 알았다.

헌데 지금...

자신이 납치가 된 것을 알게 된 직후 그때부터 입이 자유분방해진 로레인은 한시도 쉬지 않고 입을 놀리고 있었다.

미. 친. 년. 마. 냥.

"호옹~ 그래서? 날 왜 납치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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