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의 채무 탈출기-152화 (152/249)

#152

키린(3)

"뭐 그런 것이지. 후후후."

"...참 엄청난 얘기를 아주 편안하게 하시네요."

두 귀를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저런 엄청난 역할을 자신이 하게 되었다니...

한낱 마수 사냥꾼일 뿐이었던 자신이 무슨 세계 어쩌고저쩌고 진짜...

하지만 되레 뿌듯한 표정의 키린.

그는 자신이 한 설명에 대해 몹시도 만족해하고 있었다.

어려운 말을 이토록 쉽게 풀어내다니.

크으~~~

취한다.

"그렇지? 이것 또한 내 능력이지~"

"그런데 그럼 그래서 어떻게 해야 된다는 말이에요?"

"관여자는 한 명이 되어야 한다. 두 명의 관여자가 있었던 적도 없지만 나머지 한 명의 의도가 워낙에 극명하니까. 나야 단순히 오지랖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지만 하르무는 이번에 아예 작정을 한 것 같더라고."

흐음.

그의 말은 분명했다.

자신과 만났던 페릴턴이라는 자.

그 자의 목표는 누가 봐도 명백하다.

통로를 완전히 열어 인간계를 멸망시키는 것.

게다가 혼자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그 목표를 위해 움직이는 일련의 단체도 있는 듯하다.

여기 환수계에서도 여럿이 있고 말이지.

"그럼 제가 그 자와 싸워 이기고 지금처럼 환수계와 인간계를 평온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겠네요? 제가 무슨 정의의 사도도 아니고 단지 빚이나 좀 갚을랬는데..."

"그렇지! 너 의외로 똑똑하네? 그렇게 단 몇 마디로 이해를 할 줄이야~ 내가 확실히 설명을 잘 했지? 어때? 켄타."

켄타를 바라보며 뭔가 대답을 갈구하는 듯한 키린의 얼굴.

허나 자신이 원하는 대답 대신에 켄타는 역시나 노답이라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쳇.

역시 엄격하구만.

허나 체스의 궁금증은 끝나지 않았다.

처음 본 그에게 묻고 싶은 건 끝이 나질 않았다.

그만 질문을 하라며 키린의 옆에 서있던 켄타가 목을 손으로 긋는 시늉을 했다.

그는 뭔가 급한 일이 있는 듯했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질문을 이어가는 체스.

"그런데 궁금한 게 또 있어요. 그럼 요새 왜 이렇게 마수들 아니 환수들이 넘어오는 수가 많아진 거에요? 그것도 다 그런 영향인가요? 그 관여자가 통로를 연다거나 혹은 이미 열렸다거나."

그리고 그 질문을 또 넙죽 받는 키린.

"그렇지. 원래 나 정도 되는 존재들은 문을 통해 다니기는 한다만 일반 환수들은 통로를 통해 다니기도 하지. 그런데 그게 말이야. 통로를 또 완전히 꽉 막는 건 할 수가 없어. 신도 불가능했던 것을 우리가 어떻게 하겠냐? 그렇지?"

"그...그건 맞죠. 신이 못하는 걸 다른 자가 어떻게 하겠어요."

"그래! 그런데 지금 하르무 녀석이 인위적으로 통로를 더욱 열어젖히고 있는 거야. 거기에 인간계에서 동조하는 녀석들도 생겨난 것이고. 아. 나는 물론 통로를 여는 데에는 반대를 하는 입장이지. 그리고 어디까지나 인간계와 환수계는 분리가 되어야 하는 게 맞다고 보는 게 나의 생각이기도 하고."

"그렇군요... 흠..."

그래도 뭔가 좀 알겠다.

비록 타인에 의해 정해진 운명이었지만 이건 또 거절할 수가 없는 일이다.

이유를 몰랐음에야 모르겠지만 안 이상에는 또 안 할 수가 없잖은가.

도대체 왜 이렇게나 귀찮은 역할을 자신에게 맡긴 걸 알지는 못하겠지만...

체스의 얼굴에 먹구름이 깔렸다.

-아. 물어볼 게 하나 있어요. 이 녀석 삼단이 억지로 다 열려버렸는데 역효과는 없겠죠?

헬캣이 갑자기 퍼뜩 떠오른 생각에 질문을 던졌다.

그의 말에 체스의 몸을 요리조리 살펴보는 키린.

"흠... 뭐 억지로 열려버리긴 했지만... 이거 헬캣 네 작품이지?"

-제 작품이라기보다는 일단은 살려야 하니까요.

"좋아 좋아. 이 녀석이 미리 기반을 잘 닦아놓은 덕분에 눈알이 홀딱 뒤집어진 것 말고는 그래도 양호하게 풀렸어. 대신 너무 성급하게 단들이 열리는 바람에 몸과 단의 균형이 안 맞을 수는 있어. 그러니 지금보다 훈련을 더 빡세게 해야할 거야."

"...삼단이 다 열렸나요? 제 몸이?"

이걸 기뻐해야 하나 슬퍼해야 하나.

강해졌다면 좋은 것이건만 어째 안 좋은 건 또 왜 그런 것인지 모르겠네.

그나저나 이제야 알아차렸다.

분명히 예의 전투에서 상처를 꽤나 입었을 터인 자신의 몸이 유난히 멀쩡한 것도 이상했다.

"그래. 맞아. 아마 뭔가 느껴질 거야. 아참. 그리고 너 뭔가 전투를 할 때 막 미리 뭔가가 보이거나 그러지 않디?"

"아! 맞아요. 그걸 물어보고 싶었어요. 설마 그것도 관여자의 능력인가요?"

"흠...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나? 나도 그런 능력이 조금 있거든? 너보다는 물론 더욱 자연스럽게 알기는 하지만. 아마 내 능력이 조금 너에게 깃들어 진 것 같다. 그냥 한 번 물어보고 싶었어. 으흐흐흐흐."

"아..."

"도움이 될 거다. 암. 그렇고 말고."

체스의 어깨를 탁탁 두들기는 키린.

한 마디로 힘을 내라는 말이다.

그때 드디어 끼어들 틈을 찾은 켄타.

"이제 진짜 보내야 합니다."

"아차차차. 우리 얼마나 되었지?"

"...지금쯤 알아차렸을 거에요."

"그럼 얘들만 보내지 뭐. 설마 죽이기야 하겠냐? 낄낄낄."

천연덕스럽게 말을 내뱉는 키린의 말에 그만 말문이 막혀버린 켄타.

도대체가 이럴 때면 주인이 주인이 맞는 지 모르겠다.

켄타가 이리도 걱정하는 이유.

이 공간엔 환수계와 인간계 사이의 틈 어딘가.

오로지 키린의 힘으로 만들어 진 공간이다.

하지만 이 곳은 들켜서는 절대 안 되는 곳.

주인들이 이런 일에 자신의 힘을 쓰는 것은 암묵적으로 이미 금지가 되어 있는 사항이기 때문이다.

그런 곳을 만들었으니...

만약 빨리 이 공간을 닫았다면야 괜찮았겠지만 아직까지 그들이 여기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인즉슨 주인들에게 자신들을 잡아가라는 이야기와 뭐가 다르나?

"야. 너희들 빨리 돌아가라."

에???

헬캣과 체스의 얼굴에 동시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지금꺼지 실컷 이야기를 잘 해놓고 뜬금없이 빨리 가라니.

물어볼 게 아직 얼마나 많은데.

"저..."

갑자기 켄타가 뭔가 알아차렸다.

"...걸렸는데요?"

"아~ 알아~ 근처까지 도착했어~"

켄타의 말을 여유롭게 받아치는 키린.

'믿는 구석이 있나? 아닌데. 절대 그럴 리가 없는데...'

고개를 갸웃거리는 켄타.

"야야. 벌써 와버렸네. 너희는 빨리 가라. 여기는 우리가 처리할 테니."

'아니. 갑자기 또 가라니.'

그때 키린이 둘을 슬쩍 밀었다.

어어어어어?

순식간에 어디론가 밀려가는 둘.

그들은 예의 자신들이 있던 방에서 넘어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흐음~ 역시 빠르네."

****

"우리 망했습니다..."

"괜찮다 자식아. 왜 이렇게 겁이 많냐? 흐흐흐."

켄타에게 핀잔을 주는 키린.

쯧쯧쯧-

키린이 혀를 찼다.

순간.

째재재쟁-!!!

온 방의 벽이 마치 유리가 무너지듯 그대로 와장창 깨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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