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의 채무 탈출기-150화 (150/249)

#150

키린(1)

"오~ 왔나본데???"

손뼉을 짝 치며 밝은 목소리로 말을 하는 푸른 머리를 한 남자.

의자에 앉아 있던 키린이었다.

그리고 그를 탐탁치 않은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는 포마드 머리를 한 집사 차림의 남자.

켄타호른이다.

둘이 모여 있는 곳.

동쪽 지역 키린의 성은 아닌 듯하나 온통 푸른 벽으로 둘러쌓인 곳이었다.

이 곳은 키린이 직접 만들어 낸 공간.

환수계와 인간계를 오고 가는 통로에 키린이 자신의 힘으로 억지로 열어둔 공간이었다.

다른 환수들 특히 주인들에게 여기에서의 일을 들키지 않기 위함이었다.

"정말 이게 최선입니까?"

"그러~~~~~~엄. 이게 최선이야."

"이게 얼마나 마이너스가 될 지 아시는 분이 참... 전 정말 이해를 못 하겠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그러다가 다른 주인들이 여기에 트집을 잡으려면 또 어쩌시려고 그러세요???"

"에이~ 그건 이미 다 생각을 해뒀지. 내가 언제 생각 없이 움직이는 것 봤냐? 아마 주인들 중 나 정도로 생각이 깊은 환수도 또 없을 걸?"

'...키린 님이 제일 생각이 없어보입니다만...'

더 이상 말려도 소용없다.

켄타는 더 말을 하려다 이 이상은 잔소리가 될 거라는 것을 알기에 말을 멈췄다.

하지만 후일 만큼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둘의 주인들이 분명히 들고 일어날 것이니.

지금 환수계는 말 그대로 폭풍전야가 아닌가.

바로 그때.

누군가가 둘이 만들어 놓은 공간에 나타났다.

****

쿠당탕-

둘의 몸이 사정없이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크으으으윽-

한 명은 정신을 아예 잃어버린 체스.

또 하나는 독 때문에 거의 다 죽어가는 헬캣이었다.

"왔다아아아~~~~ 그런데. 엄청 요란하게 오네?"

키린이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그들에게로 천천히 걸어갔다.

으으으으으으...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헬캣은 지금 다 죽어가는 중이었다.

이게 진 데몬 스코르피에게 독을 당해보니 장난이 아니다.

게다가 상처를 입은 탓에 독은 유난히 빨리 퍼졌다.

간신히 막아놓았던 기운은 이미 풀어져 버린 지 오래.

겨우 무거워진 눈꺼풀을 들어 체스를 간신히 본 헬캣,

그나마 체스는 살아있는 것 같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허나 그의 모습이 점점 희미해진다.

이제 눈도 점점 침침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쳇. 그래도 나쁘지 않은 삶...이었나.'

그때 키린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천천히 걸어왔다.

천천히 헬캣의 상처 부위에 손을 가져다 대는 그.

순간 엄청난 흡입력이 발생했다.

마치 온 몸의 피가 강력하게 빨려나가는 느낌.

커헙-

"쉿. 움직이지 마라. 녀석아."

아이를 타이르듯 말을 건네는 키린.

그러면서도 그의 손은 계속해서 헬캣의 상처에 닿아 있었다.

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몸이 더욱 편안해지는 게 느껴진다.

헬캣의 잔뜩 일그러져있던 얼굴이 점점 평온함이 가득 넘치는 얼굴로 변해갔다.

잠시 후.

"됐다~"

키린의 손바닥 위에 둥실 떠오른 짙은 녹색의 조그만 구체.

바로 진 데몬 스코르피의 독이었다.

"이거 데몬 스코르피지?"

"맞아요. 이건 그 중에서도 색이 짙은 걸로 봐서는 진이 직접 넘어간 것 같은데요?"

"진이라... 이상하네. 이 녀석이 진에게 당할 정도의 녀석은 아니지 않나?"

"흠... 그건 그렇죠. 이상하네요. 확실히."

"그런데 이 아이는 왜 안 깨어나지?"

키린이 이상하다는 듯 체스 쪽을 보며 읊조렸다.

키린의 말에 체스에게 걸어가 그를 요리조리 살펴보는 켄타.

"억지로 각성이 되어버렸네요. 게다가 이 아이... 알고 기운을 넘겨준 거에요??? 키린 님???"

"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키린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말에 켄타가 막 뭐라하려는 찰나.

간신히 정신이 든 헬캣이 조금씩 몸을 일으켰다.

****

"이제야 정신이 들었나???"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지만 헬캣은 그 둘과 마주 보고 있었다.

뭔가 잔뜩 뿔이 난 듯한 그의 표정.

-왜 이 아이에게 기운을 넣어준 거에요? 그게 얼마나 파장을 일으킬 거란 걸 뻔히 알면서도 도대체 왜 그런 걸 하셔서 이 사달을 일으키시는 거에요? 키린 님???

다짜고짜 키린에게 쏘아붙이는 헬캣.

"거 보세요. 이 녀석 성격이라면 분명히 그렇게 할 거라 그랬죠?"

"그래. 켄타. 확실히 네 말이 맞네."

처음 헬캣이 깨어났을 때에는 진심 겁을 잔뜩 먹었었다.

정신이 들자마자 헬캣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바로 다짜고짜 앞발을 사정없이 날린 것이었으니.

아.

물론 통하진 않았다.

켄타만 해도 헬캣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우위의 환수이기도 하고 주인에게는 당연히 통하지 않을 정도의 힘이긴 하니 말이다.

그래도 간만에 만나서 살려주기까지 했는데 다짜고짜 주먹질은 솔직히 너무하지 않나?

지은 죄가 있긴 해도 말이지.

그리고 지금 이들은 이렇게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보다시피.

"그래도 헬캣. 예의를 갖춰라. 다섯 주인 중에 한 분이시다."

-야. 켄타. 내 상태가 멀쩡했으면 아마 너부터 날려버렸을 걸? 따지고 보면 네가 네 주인을 제대로 보필 못한 죄도 있지 않나?

"해보자는 거냐?"

서로 으르렁거리는 둘.

"자자. 진정들 하고. 여기서 그렇게 싸워봤자 뭐할 거야? 여기 오래 유지하지도 못해. 이러다가 걸리면 죽도 밥도 안돼. 시간이 많이 없단 말이야."

이게 다 누구 탓인데!

동시에 2명의 시선이 키린에게 내리꽂혔다.

험험.

말을 이어가려다 둘의 시선에 다시 고개를 획 돌리는 키린.

-그래서 여하튼 설명을 좀 해주시죠. 키린 님.

"내가 대신 설명은 하지. 우리도 이게 상당히 중요한 일이라 계속 인간계의 상황은 살펴보고 있었지. 그리고 네가 붙어 있길래 한켠으로는 안심한 것도 있었다. 너도 알다시피 이거 보통 일이 아니란 것도 알지 않나? 관여자이기도 하고 말이지. 뭐 의도하고 본인의 기운을 넘겨준 건 아니겠지만 말이야."

-흠. 그건 나도 동의해. 언제 키린 님이 생각을 그렇게 깊게 하는 분도 아니었고...

...이것들이.

당사자를 앞에 두고 못 하는 말이 없다.

키린이 뭐라 반박하려는 순간 켄타가 키린을 제지하며 말을 이어갔다.

"여하튼 아까 너희 둘의 상황이 워낙 쉽지가 않아서 말이지. 게다가 관여자가 둘이 될 줄이야. 그게 아니었다면 우리가 이렇게 급박하게 너희를 구출하지도 않았겠지. 그대로라면 너희는 곧이라도 바로 죽을 상황이었으니까."

-흠. 그건 맞지. 가벼운 마음으로 나섰다가 죽을 뻔했지.

둘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질 때 키린은 살금살금 체스에게로 걸어갔다.

길어지는 이야기에 아직 나머지 둘은 자신의 행동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중이다.

흐음.

좀 깨워볼까?

키린이 체스의 몸에 손을 살며시 갖다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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