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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의 채무 탈출기-148화 (148/249)

#148

각성(1)

채애애애앵-

높고도 날카로운 쇳소리가 귓가를 따갑게 울린다.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

순간 페릴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자신을 막은 자.

자신의 기운이 실린 것을 막은 것.

체스의 대검이었다.

"뭐냐?"

고개를 들어 올려 체스를 바라보는 페릴턴.

헌데 그의 상태가 미묘하게 이상하다.

눈알이 희번득 뒤집어진 게 흰자 밖에는 보이질 않는다.

게다가 온 몸에서 풍겨지는 저 기운.

흡사 저 모습은...

하지만 별로 개의치 않는 표정의 페릴턴.

어차피 그래봤자 죽음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

그저 조금 생명이 연장되었을 뿐.

"이것도 막아봐라."

그의 만병들이 둥실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체스와 헬캣에게로 그것들을 날리는 페릴턴.

순간 체스의 손이 쏜살같이 움직인다.

까가가가가강-

연이어 들려오는 충돌음.

체스의 대검이 또 한 번의 공격을 막아낸 것이었다.

체스를 가만히 쳐다보는 페릴턴.

그의 시뻘개진 흉광이 더욱 짙은 빛을 뿌려댔다.

그리고 그에 호응이라도 하듯 점점 짙어져 가는 체스의 기운.

마치 페릴턴이 가진 그 기운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기운이었다.

-아... 안된다. 정...신 차려...라.

힘겹게 눈을 뜬 헬캣이 무어라 중얼거렸지만 그 목소리는 체스에게까지 닿지 않는 듯했다.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다...

멀었다는 말이다.

지금의 이 상황.

자신이 죽는 것보다 지금 이 상황이 자신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왜 갑자기 지금 저렇게 된 것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생명의 위협을 느낀 체스의 의식이 무의식 중에 변화를 일으킨 것임에 틀림없다.

그 기운과 융합된 탓도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체스의 몸에서 새어나오는 저 기운.

아마 지금쯤 진도 이 냄새를 맡았겠지.

본래 중단과 상단까지 밖에 열지 못했던 체스였다.

하지만 지금 저 모습으로 봐서는 가히 짐작이 가능하지.

닫혀 있던 나머지 하단까지 억지로 열려버렸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관여자의 각성이 이런 식으로 이뤄지는 것은 원치 않았는데...

원래는 회수를 해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꽤나 많은 시간을 붙어 있었던 탓일까.

대체 그놈에 정이 뭐라고.

게다가 옆에서 지켜봤을 때 둘의 기운이 점점 섞여가는 걸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중단이 저렇게 빠르게 커져가는 건 아마도 그 기운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터.

그래서 더더욱 손을 못 썼던 헬캣이었다.

별다른 행동은 하지도 못한 채 그저 둘을 지켜볼 뿐인 헬캣.

그 사이 둘은 발을 자리에 고정시킨 채 계속해서 손속을 겨누고 있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공방.

하나는 끊임없이 몰아치고 하나는 끊임없이 막아낸다.

페릴턴은 무표정한 얼굴로 공격의 강도를 점점 끌어올려갔다.

하지만 그에 맞춰 체스 또한 자신의 기운을 점점 끌어올려간다.

합이 길어질수록 짙어져만 가는 그의 몸에서부터 퍼져 나오는 삼단의 기운.

하지만 지금 여기에서 체스를 죽게 할 수는 없었다.

저 모습.

다스려지지 않은 기운이 터져 나온다는 건 곧 껍데기만 남는다는 것이니.

끄응-

헬캣은 조금씩 몸을 끌어올리며 기운을 모아갔다.

****

-아니. 저건!

진이 갑자기 몸을 벌떡 일으켰다.

꿈에도 몰랐다.

관여자가 또 있을 줄은.

손가락을 잘근잘근 씹는 진.

안절부절한 얼굴이었다.

저 기운이 왜 저 녀석에게 있는 것이지?

이건 뜻밖의 수확이 아닌가.

저걸 빼내서 자신의 주인에게 바친다면?

아니지. 저걸 자신이 먹는다면 이야기는 또 달라지지.

뭔가에 생각이 미친 듯 그의 얼굴에 미소가 스르륵 번지기 시작했다.

손가락을 살짝 움직이는 진.

목표는 저기 녀석들이 있는 곳.

정확하게는 저기 눈이 뒤집어진 덩치 큰 인간이었다.

타닥- 타닥- 타다다닥-

그의 수신호에 따라 데몬 스코르피들이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조금씩 빨라지는 그들의 발걸음.

-잡아라!!!

무언가를 잔뜩 기대한 듯한 진.

데몬 스코르피의 등에 올라탄 채 앞으로 달려가는 진의 희열에 가득 찬 목소리가 전장을 울렸다.

****

순간 전장이 혼란스러워졌다.

돌진해 오는 마수들 때문이었다.

"나의 전투에 끼어들지 마라!"

페릴턴이 말을 했으나 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수의 등에서 뛰어오르며 본 모습을 드러내는 진.

-크하하하하하. 얼른 죽여주마!!!

쿠우우웅-

땅에 착지하는 진.

하지만 진을 막아서는 것은 오히려 페릴턴이다.

무표정한 얼굴의 그였으나 그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는 등 뒤로 떠오른 만병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웅웅 진동을 내며 언제라도 돌진할 기세를 갖춘 그의 만병들.

-뭐냐?

왜 자신을 막느냐는 듯 한껏 날이 선 목소리다.

"뭐지? 왜 나의 싸움에 끼어드는 것이지?"

-그거야 너무 시간을 오래 끄니까 그렇지. 우리는 우리가 할 일이 있으니까.

"틀린 말은 아니군."

자신의 앞을 막아선 페릴턴의 어깨 너머를 힐끗 쳐다보는 진.

그 녀석은 그 자리에 선 채 여전히 헬캣을 막아서고 있었다.

막아야 한다는 방어 기제가 작동한 것일까.

'좋아.'

아직 영글지 않았다.

진의 눈에는 똑똑히 느껴졌다.

영글지 않은 기운의 모습이 그리고 거기서 풍겨나오는 향기가.

-내가 처리하지. 아니면 같이 하던가 말던가~

자신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의 다리가 다다다다 달려간다.

그리고 어느 새 체스의 지척에 도달한 진.

그는 자신의 앞발을 그대로 휘둘렀다.

까아앙-

그리고 물이 흐르듯 자연스레 대검을 잡아들어 막아내는 체스.

순간 동체의 방향을 획 틀어버린 진.

그에 따라 진의 꼬리가 체스의 옆구리를 정확하게 가격했다.

일순 붕 떠오르는 체스의 몸.

하지만 자신의 대검을 땅에 꽂은 채 억지로 버텨내는 체스.

-크흐하하하. 막아??? 좋아!!!

바로 그때.

체스의 몸이 빙글 도는가 싶더니 그의 발이 정확하게 진의 머리 부분을 가격했다.

쿠우웅-

그대로 바닥에 내다꽂히는 진.

그리고 또 한 번 밟히는 진의 머리.

페릴턴이었다.

진의 머리를 밟고 공중으로 뛴 그는 그대로 만병을 뿌려냈다.

미친 듯한 속도로 달려가는 페릴턴의 무기들.

하지만 어느 새 대검을 뽑아든 체스는 페릴턴의 기운이 잔뜩 실린 무기들을 하나씩 쳐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이 겨우 힘을 어느 정도 되찾은 헬캣 또한 전투에 합류했다.

-네 상대는 나다!

-헬캣. 저런 걸 숨겨두고 있었단 말이지??? 그리고 정상인 상태라면야 모르겠지만 지금은 날 상대할 수나 있겠냐???

쾅- 쾅- 쾅-

연이어 내리꽂히는 진의 공격.

하지만 때로는 쳐내며 때로는 피해내며 헬캣 또한 최선을 다해 방어를 해댔다.

그 와중에 체스 쪽을 힐끗 쳐다보는 헬캣.

그는 여전히 페릴턴과의 격전을 치루고 있는 중이었다.

'헉헉. 다행이긴 한데. 저 기운들이 계속 새어나오면 위험한데.'

잠시 헬캣이 틈을 보인 사이.

-어딜 보냐!

빈 틈을 발견한 순간 눈부신 속도로 치고 들어오는 진의 꼬리.

빛에 반사된 그의 꼬리 부분에 달린 독침이 순간 번득였다.

그리고 그걸 본 헬캣의 얼굴.

순간 그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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