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
진(4)
엇!
갑작스레 터져 나오는 기운은 그대로 둘을 옭아매기 시작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듯한 이 기운.
분명히 이건 그것이다.
그 사이 이어지는 페릴턴의 힘이 잔뜩 실린 고함소리.
크아아아아아앙-!!!
순간 엄청난 위기감이 헬캣과 체스에게 밀려 들어온다.
특히 체스의 경우에는 그 영향이 엄청나게 미치는 듯했다.
그저 눈만 부릅뜬 채 아예 어찌할 바를 모르는 듯 보였으니.
...어쩔 수 없다.
카아아아아아아아아앙-!!!!!!
높고도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며 페릴턴의 고함소리를 상쇄해 나가는 헬캣.
그럼과 동시에 그의 몸에서 일순 빛과 바람이 뿜어져 나왔다.
번쩍-
-훗. 급했나 보네? 에법 밀리니까 어쩔 수 없나보지?
진은 이미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 것인지 다 안다는 듯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순간 일어난 먼지들로 인해 어떤 상황인지 두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아마 거기에는 그것이 있겠지.
그때 차츰 가라앉는 먼지들.
그리고 그 곳에는 두 눈을 매섭게 뜬 채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는 헬캣의 모습이 보였다.
-역시 인물 하나는 작살난단 말이지. 어째 저런 생물이 환수로 있을 수가 있지? 안 그렇냐?
자신의 동족들에게 질문을 던지듯 얼굴에는 만연한 미소를 띤 채 혼자 중얼거리는 진.
그는 새삼 반하겠다는 말투로 연신 감탄을 쏟아냈다.
****
후우~
헬캣의 약간 벌려진 입에서 숨이 새어 나온다.
체스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이게 최선인 듯했다.
어차피 전의 모습이 본 모습이 아닌 것은 이들도 다 알 터.
게다가 3푼 정도의 실력을 숨겨가며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이들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젠장맞을.
그리고 헬캣의 변한 모습을 쳐다보는 한 남자.
페릴턴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건 내가 알고 있는 모습이군."
-그르냐? 이 모습을 봤으니 넌 이제 죽으면 된다.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까지 복잡하게 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상황을 오래 끌고 싶지는 않군.
"멋진 걸 보여줬으니 나도 그에 상응하는 것 정도는 보여줘야겠지."
담담한 말투로 말을 하던 페릴턴은 갑자기 몸을 움츠렸다.
일순 움직임이 멈춘 그의 몸.
파아아아아아아앗-!!!!!!
그가 두 팔을 쫘악 벌렸다.
그와 동시에 터져 나온다.
마치 이 세상 것이 아닌 듯한 기운이.
순간 이 공간 전체를 점유해 나가는 페릴턴의 기운.
그리고 그와 동시에 헬캣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어 갔다.
-이...이건...
****
잠시 후 똑바로 정면을 응시하는 페릴턴의 두 눈.
그의 두 눈은 처음과는 다르게 시뻘겋게 빛이 나는 흉광으로 번들번들거리고 있었다.
-......너 관여자였나...?
"그렇다."
-하지만... 관여자는 한 명만 되는 것이 아니었나?
관여자.
세상의 법칙을 벗어난 자 혹은 뒤틀린 법칙에 발을 맞춘 자.
그리고 자신의 판단에 따라 모든 세상의 균형을 맞추어 갈 자.
...하지만.
보통은 시대마다 한 명의 관여자가 나온 걸로 알고 있었다.
완전한 각성을 하기 전에 죽임을 당하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여하튼 자신이 알기로는 그 수를 절대 넘지 않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그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자들이지."
-아......
이대로라면 이야기가 전혀 달라진다.
저 시뻘겋게 번들번들거리는 흉광.
인간의 눈동자가 아닌 듯하다.
그렇지.
마수. 저건 딱 봐도 마수다 마수.
-게다가 그 힘...
말을 채 잇지 못하는 헬캣.
페릴턴의 온 몸을 두른 다홍빛으로 빛이 나는 그의 기운들.
그의 몸에서 갈무리된 기운들은 마치 봄날에 아지랑이처럼 넘실넘실 피어 오른다.
"이건 받은 것이지. 멋지지 않나?"
그렇다.
저 인간 같지 않아보이는 페릴턴이 가진 저 힘.
저 기운은 헬캣도 익히 알고 있는 기운이었다.
쉽지 않다.
쉽지 않아...
-젠장. 주인들.
페릴턴이 두른 기운.
저것은 분명히 하르무의 기운이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기운을 나눠준 것이지?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기로는 환수계는 주인들끼리 아직 서로 힘겨루기 정도를 하고 있는 걸로 아는데 말이지.
"그렇다. 이건 하르무 님이 주신 것이지. 멋지지 않나?"
-정말이지 주인들의 생각은 한치도 알 수 없단 말이지.
그 사이 체스도 다가왔다.
"...보기만 봐도 쫄리는데요?"
-야. 이건 좀 미안하다야. 이런 결과가 벌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네.
가벼운 마음으로 남들보다 빠르게 움직여 온 길이었다.
그리고 체스 정도의 실력에 자신이 조금만 손을 써주면 쉽게 끝나리리 생각을했건만.
이건 정말 오판 중의 오판이다.
"...그럼 혹여나 정말 죽을 상황이 되면요. 전 꼭 좀 살려주세요. 저는 아직 얼마 살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죽기는 좀 억울하잖아요. 연애도 해봐야 하고."
-야이씨. 넌 이 상황에 그런 농담이 나오냐??? 지금 저 자를 이길 궁리를 해도 모자를 판에.
"...진심인데요?"
그런 말을 어떻게 농담으로 치부할 수 있냐며 자신이 되레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체스.
크하하하하하하-
페릴턴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에에에엥? 저 녀석이 저렇게 웃을 줄도 아는 녀석이었나?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네~ 안 그냐?
저렇게 웃을 줄도 아는 녀석이었군.
진이 봤을 때 저 페릴턴은 인간의 모든 감각 중 분노 뺴고는 아무런 감정이 없는 듯 보였었는데.
참 별난 일이다 별난 일이야.
그나저나 웃음소리 한 번에도 고막이 쩌렁쩌렁 울린다.
뚝-
"갈 길이 바쁘다. 끝을 보자."
갑작스레 태도를 확 바꾼 페릴턴.
이제 끝을 보기로 마음을 먹은 듯했다.
부웅-
그의 등 뒤로 만병이 떠오른다.
만병들은 그의 주위를 호위라도 하듯 그저 둥둥 떠있을 뿐.
페릴턴은 거기에서 하나의 검 하나를 손에 쥐었다.
너무 크지도 않고 또 너무 작지도 않은 딱 그에게 알맞아보이는 검 한 자루였다.
"최대한 빠르게 정리를 해주겠다."
페릴턴의 만병들이 점점 속도를 올라가며 헬캣과 체스에게로 쏟아졌다.
그와 동시에 검을 꼬나들고 그대로 헬캣에게 치고 들어가는 페릴턴.
수와아아아아악-
****
채애애애애앵-
헬캣의 발톱과 페릴턴의 검이 부딪혔다.
고막을 찢을 듯한 충돌음.
하지만 이 정도면...
아까와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이는데.
헬캣은 체스 쪽을 힐끗 보았다.
그는 만병들을 피해내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아직 무사해 보이기는 하다.
여유는 다소 없어 보이지만.
그리고 진 쪽.
저 녀석도 아직은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이니.
자신감인지 자만감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눈앞에 있는 이 녀석.
이 녀석만 처리하면 빠르게 처리하면 되는 것이군.
'좋아.'
헬캣은 발톱을 잔뜩 세운 채 자신의 앞발에 모든 기운을 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