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의 채무 탈출기-138화 (138/249)

#138

데몬 스코르피(3)

문을 열고 들어간 곳.

그리고 짐을 채 내려놓기도 전 다짜고짜 들려오는 한 마디.

-가져왔냐?

빚 독촉이라도 하는 양 기다렸다는 듯이 들려오는 질문이다.

무슨 사채업자도 아니고 말이야.

하지만 그래도 제법 익숙해진 탓인지 어색하지는 않다.

단지 이럴 때마다 드는 생각은.

...양.아.치. 같...다.

가끔 보면 말이다.

"가져오기는 왔는데... 너무 당연하게 달라는 거 아니에요?"

체스는 헬캣의 말에 가방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냈다.

나머지는 정산을 할 것들이기에 그가 헬캣에게 넘겨준 건 마정석 2개.

-사족은 붙이지 말고. 그냥 던져.

휙-

체스가 던진 마정석을 받아든 헬캣이 그것을 슥 훑어보기 시작했다.

-뭐냐? 이거 등급이 낮은 거잖냐?

"...빚도 까야죠."

감을 줬더니 배도 내놓으란다.

체스의 얼굴에는 다소 황당하다는 표정이 깔렸다.

-야. 속성과외도 해주는데 이보다는 더 좋은 등급을 줘야하는 것 아니냐? 뭐 땅 파서 장사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이거 영 대접이 시원찮네.

"없어요. 이제."

-이런 좀생이 같은 놈.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래도 이게 얼마 만에 간식이냐.

헬캣은 눈을 반짝이는가 싶더니 받아든 마정석을 하나씩 오도독 씹어먹었다.

****

-꺼어어어어억~ 뭐 나쁘진 않군.

한 차례 트림을 시원하게 뱉어낸 헬캣.

꼬리가 앞뒤로 살랑살랑 흔들거린다.

그는 지극히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배를 두들기는 중이었다.

-그럼 보자... 먹었으니 밥값을 좀 해야지. 슬슬 갈까?

몸을 쫘악 늘어뜨리며 양껏 기지개를 편 헬캣이 발톱을 바짝 세운 채 발가락을 하나씩 다 풀어대며 스트레칭을 했다.

그는 이제 나갈 심산인 듯했다.

일부러 예정에도 없던 일정을 만들어서 말이다.

"오늘은 그것보다 의논할 게 있어요. 더 중요한 것."

-응? 뭐냐?

갑자기 의논이라는 말에 헬캣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평생 의논이라는 건 안 하던 놈이었는데.

이거 혹시 하기 싫어서 머리 굴리는 거 아냐?

일단은 들어본 후에 판단이지.

"데몬 스코르피라고 알죠?"

-데몬 스코르피? 알지. 그 시시껄렁한 냄새 풍기는 녀석들. 그런데 그 녀석들은 왜?

"실은 그것들을 잡으러 갔던 사냥단 하나가 아예 전멸을 했대요. 그래서 거기에 대한 대책을 논의한다던데."

-그런데? 논의야 하면 되지. 그건 어차피 그 랭커 애들인가 협회 애들이 하는 거 아니냐?

"그...그렇죠. 그런데 그들이 향하는 방향이 이 쪽이라고."

그 말에 헬캣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데몬 스코르피라면 환수계에서도 깊숙한 곳 그 중에서도 건조한 지역에 사는 녀석들인 걸로 기억을 한다.

하지만 굳이 거기에서 잘 사는 녀석들이 왜?

게다가 인간계에 넘어올 녀석들도 아니고 잘못 넘어왔더라도 굳이 인간들을 먹이로 삼을 녀석들은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

-그럴 리가 없지. 그 녀석들 내가 잘 아는데 그럴 리가 없어. 그 녀석들은 인간계 자체에 흥미가 없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다.

허나 그의 말을 다시 부정하는 체스.

"맞아요. 진짜. 곧장 이 곳으로 오고 있다고 탐색조들이 그랬어요."

-엥? 그래? 왜???

"...그걸 저한테 물어봐도 알 리가 없죠. 오히려 제가 묻고 싶네요. 그건."

흐음...

왜 이렇게 넘어오는 것들이 많이 늘었지?

요 근래 환수계에 가보지 않았더니 완전 개판이구만.

하긴 따지고 보면 자이앤트들도 넘어왔는데 데몬 스코르피가 넘어오지 말란 법은 없지.

골똘히 생각에 빠져있던 헬캣.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헬캣이 박수치듯 자신의 앞발을 딱 쳤다.

"네? 갑자기 무슨."

불안하다.

헬캣의 저런 말 뒤에는 언제나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 나오곤 했지 않나.

자신도 모르게 체스가 침을 꼴깍 삼켰다.

-우리가 먼저 가자.

"네?????? 에이~ 무슨 말을 하시는 거에요~"

이것이야말로 헛소리.

자신의 실력이 오른 건 좋아. 인정.

헌데 몇 마리인지도 모를 데몬 스코르피를 혼자서 어떻게 잡나.

차라리 접시물에 코를 박고 죽으라 그래.

그게 훨씬 빠르겠다.

"안돼요~ 안돼. 차라리 죽으라고 해요."

-잘 봐라. 생각을 해봐.

설득의 시간이군.

헬캣이 앞발을 세워 정확하게 체스를 가리켰다.

-너 실전 경험은 많지만 대부분 낮은 등급의 환수들이지? 그리고 네가 그것들을 다 잡는다고 생각을 해봐라. 거기에서 나오는 것들도 너 혼자 다 가질 수 있고. 그러면 빚도 좀더 없앨 수 있겠지? 이대로 다른 녀석들과 함께 해서 얼마나 더 벌겠냐? 네 인생의 목표는 빚 다 갚고 편하게 사는 거잖냐. 그러면 열심히 모아야지. 지금 딱히 사냥단에 속한 것도 아니고 하니 그거 하는 게 내가 봤을 때에는 딱일 것 같은데?

장황하게 설명을 하지만 결국은 둘이서 가자는 말이다.

혹하는 건 사실이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해볼까?'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게 가능하다는 전제 하에 아닌가.

잠시 망상에 잠겼던 체스가 고개를 내저었다.

"절대 불가에요."

-그래. 그럼 지금 당장 준비해라. 내일 아침 일찍 출발이다.

"에??????"

-그렇게 머뭇거렸다가 남들한테 다 빼앗길 셈이냐? 아침에 일찍 갈 거다. 위치는 대략 알고 있을 것이니 근처에 가면 당연히 알 것이고.

분명히 거절을 했음에도 헬캣은 막무가내였다.

그 후로 둘은 한참을 더 논쟁을 벌였다.

"헉헉. 이씨. 더는 말을 못하겠다. 가요 가! 뭐 어째든 되겠지. 에라이."

체스는 더 이상 논쟁할 힘도 없는 듯 침대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하지만 헬캣의 표정에 변화는 없었다.

그가 체스에게 저리 이야기한 이유.

속내는 따로 있었다.

관여자로서의 각성.

게다가 데몬 스코르피는 자이앤트들과는 격이 다른 환수들.

힘들 거라는 건 안다.

하지만 그 녀석들이 아무런 생각이 없이 왔을 리 없다.

모종의 내막이 있을 것이란 말이다.

도대체 주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지 그리고 어떤 상황인지  알아내어야 한다.

다행히 아직 어글리불의 움직임은 포착이 된 게 없으니 그나마 다행이긴 한데...

틀림없이 기회만 엿보고 있겠지.

그나저나 자신이 이렇게 신경쓰고 있다는 걸 저 어린 꼬맹이 녀석은 알아주기나 하려나.

늘어나는 건 한숨이요 주름 밖에 없다.

-에휴.

저도 모르게 나온 헬캣의 한숨이었다.

****

"체스 본 사람 있어? 이 자식 어디로 간 거야? 숙소에도 없어."

집회소에 들어온 마리안느가 자신의 동료들에게 물었다.

"글쎄. 뭐 어디 간 거 아냐? 원래 한 번씩 숙소를 비우곤 했잖아."

새삼스럽게 뭔 그런 호들갑이냐며 아벤이 마리안느에게 핀잔을 주었다.

가끔 있는 일이었다.

의뢰를 함께 할 때가 아니면 어디를 가는지 도통 알 수 없는 체스였다.

이번에도 늘상 있는 일이라 치부하는 아벤이었으나 마리안느의 감은 달랐다.

"의뢰를 나갈 때의 장비들이 아예 없어."

"응? 그래?"

깜짝 놀란 듯 물어보는 아벤.

허나 웬 호들갑이냐며 다시 자신의 장비를 점검하기에 여념이 없는 아벤.

짐이야 들고 어디로 갈 수도 있지.

"뭐 어디 갔나보지. 신경쓰지마. 뭘 그렇게 그 녀석을 신경쓰냐? 한때 너의 심장을 뒤흔든 남자라 그런가? 에헤헤헤."

퍽-

불의의 기습에 순간 아벤은 그만 뒤로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오냐~ 요새 안 맞았다 이거지? 너 지금 선 넘은 거 알지?"

"자...잠깐만. 다 추...추억 아니냐! 진정! 진정하라고 임마!"

코피가 주륵 흐른다.

"어억. 코피!"

아침부터 피를 봐버렸다.

순간 짜증이 확 치민 아벤이 벌떡 일어난 찰나.

"앉아라. 둘다. 곧 협회에서 결정 사안이 나올 거다. 어차피 그 녀석도 참여할 것이니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

침묵을 지키던 기스가 모두를 진정시켰다.

그때.

집회소의 뒤편에서 누군가가 들어왔다.

"조용! 조용! 회의가 끝이 났소!"

집회소 직원의 외침이 집회소에 있는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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