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의 채무 탈출기-137화 (137/249)

#137

데몬 스코르피(2)

어둑어둑 해가 저 산 너머로 넘어갈 즈음.

벌컥-

체스가 집회소의 문을 열어 젖히며 들어왔다.

옷에는 마수의 피가 덕지덕지 범벅이 되어 있다.

그의 몰골을 보아하니 방금 막 사냥을 끝내고 돌아온 듯했다.

그런데 풍기는 체스의 분위기가 꽤나 바뀐 듯하다.

뭔가 군살이 좀더 빠진 것 같기도 하고 어딘지 모르게 볼살도 쏙 빠진 느낌이다.

주위를 둘러보는 체스.

여전히 시끌벅적한 게 이 곳은 한결같다.

체스가 들어오자 모든 마수 사냥꾼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그들의 시선에는 다채로운 감정이 섞여 있었다.

감탄, 부러움 그리고 시기, 질투 뭐 이런 온갖 감정들?

"체스야. 체스."

"저 자식. 또 살아왔나본데?"

"지난 번에는 아예 마수의 머리 자체를 날려버렸다던데? 듣기로는 힘이 아주 장난이 아니래."

이렇게 다른 마수 사냥꾼들이 수근거리는 이유.

체스는 이미 이 곳에서 유명인사였다.

고작 실버 등급의 마수 사냥꾼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는 임무마다 무사히 살아 돌아오는 그.

게다가 뒷골목의 소문에 따르면 실력이 실버 따위로 감히 평가할 수 있을 정도도 아니라는 얘기도 돌았다.

어떤 이는 그가 팀을 잘 만난 덕분이라고도 했고 어떤 이는 그의 실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적어도 하나는 확실히 알 수 있다.

심슨도 그의 실력을 인정해 주었다.

그 랭킹 10위의 심슨이 말이다.

그것 하나 만으로도 체스는 주위의 이목을 끌 만한 충분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허나 그것도 잠시.

집회소 안에 있던 마수 사냥꾼들은 저마다 할 얘기가 넘쳐나는지 고개를 돌리고는 자신들끼리의 이야기에 빠져 들어갔다.

그런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체스.

확실히 뭔가 이상하긴 하네.

그런 그를 부르는 소리.

"체스~ 여기야 여기~"

마리안느와 자신의 일행들이었다.

자신을 부르는 마리안느에게 다가가는 체스,

그들의 차림새 또한 체스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마수의 피가 덕지덕지 묻은 그들의 옷차림.

왜 이렇게 꾀죄죄한고 하니 이들은 불과 몇 시간 전에 수도에 도착을 한 상태였다.

의뢰를 갓 마치고 온 그들.

본래는 정비를 해야 할 시간이지만 미리 그간의 결산을 한 후에 쉬자는 게 모두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고생했다. 앉아라."

기스가 턱으로 비어있는 자리를 가리켰다.

드르륵-

의자를 꺼내 앉는 체스.

그를 비롯한 모두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수도에 도착한 이래 연이어 의뢰를 거듭한 이들은 체력이 거의 소진 상태였다.

"이번에도 고생했다. 갈수록 실력이 늘어서 이제는 무서울 지경인데?"

아벤이 그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그런 그를 보는 아벤에게는 반쯤 질린다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체스 이 녀석.

보면 볼수록 대단하다.

자신들과 의뢰를 함께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는 시간에는 또다른 파티와 함께 움직인다.

도대체 몸이 어떻게 그렇게 버티는 건지 보면 볼수록 불가사의한 녀석이다.

게다가 또 하나.

실버 등급이 된 게 불과 몇 달 전이지 않나.

그런 녀석이 이제는 말이 실버 등급이지 그 윗 등급의 마수 사냥꾼들조차도 뛰어넘을 정도이다.

함께 팀으로 움직이기는 하지만 가끔은 섬뜩함이 느껴질 정도다.

의뢰를 함께 하며 물어본 적이 있었다.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일을 하냐며.

그때 돌아온 체스의 대답.

자신의 상황이 되어보라나?

그 말에 다른 반박은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대답에 아벤이 느낀 것.

열심히 산다 진짜.

어려서 그런가 버티는 것도 신기하고.

"뭐 빨리 결산하죠. 전 또 곧 가야 해요."

"...야. 너 그러다 죽어 임마. 또 의뢰냐?"

"아뇨. 볼일이 또 있어요."

후...

말을 하는 체스의 안색이 다시 어두워져갔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

체스에게는 이 일이 끝나면 또 헬캣과의 대련이 기다리고 있다.

돈도 안 되고 아직 두들겨 맞기만 함에도 가야 한다.

...강하게 만들어 주는 건 좋은데 이제 좀 그만 맞고 싶다!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힘에 부치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시끌벅적해요? 오늘은 유난히 더 시끄럽네."

주변을 돌아본 체스의 귀가 멍멍할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떤 곳은 거의 싸움 수준으로 격렬하게 논쟁이 오가고 있었고 어떤 곳은 매우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시끄럽네 진짜.'

****

지금 집회소가 거의 반 시장판이 된 이유.

의뢰를 나갔던 테라 사냥단이 전멸한 것이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테라 사냥단의 단장 클리온.

데몬 스코르피를 잡으러 간다며 사냥단을 끌고 갔던 그였다.

고작 2마리라며 기분 좋게 떠나던 그였지 않나.

하지만 도통 돌아오지 않는 테라 사냥단을 살피러 간 탐색조가 와서 전한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데몬 스코르피 수십여 마리.

그리고 우두머리도 있다는 것.

그 정도 규모라면 테라 사냥단이 버틸 수 있을 리가 없다.

고작 그들 정도의 실력이라면 말이다.

그랬기에 데몬 스코르피를 잡으러 갔던 테라 사냥단이 아예 전멸을 해버렸다는 것.

게다가 또 하나.

데몬 스코르피의 집단의 예상 경로가 이 곳.

그러니 안 시끄러울 수가 없다.

먼저 처리를 할 것인가 아니면 기다릴 것인가.

그리고 만약 먼저 공격을 나선다면 몇 개의 사냥단들이 연합을 할 것인가 아니면 랭커들 위주로 나갈 것인가.

지금 그것이 바로 이들이 이렇게 격렬하게 논쟁을 하는 이유였다.

"사냥단 하나가 전멸을 했다던데?"

"네? 정말요? 의뢰를 받으러 간 사냥단 하나가 전멸을 했단 말이에요?"

"그렇지. 들어보니 그렇다던데? 그리고 그 마수들의 진로가 이 곳인가봐. 그래서 지금 보다시피 이 모양 이 꼴이래."

아~

그런 일이라면 당연히 시끌벅적할 만하지.

상황을 이해한 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떻게 할 거에요? 우리는?"

"글쎄. 모르겠다 아직은. 일단 협회 차원에서 뭔가 이야기가 나오는 걸 봐야 알 것 같아. 우리 만으로는 아무래도 좀 빡빡하긴 하니까. 수도 좀 많고 해서 우리만 가면 아마 골로 갈 걸?"

"흠. 그렇군요. 만약에 간다면 언제 출발이 되는 거죠?"

"글쎄. 여기에는 랭커들도 많이 몰려 있어서 아마 금방 가지 않을까? 굳이 기다릴 필요도 없고 말이지."

잠시 생각을 하던 아벤의 말이었다.

"그건 나도 동의한다. 아마 지난 번처럼 우리가 먼저 치겠지. 협회에서 어느 정도까지 움직일 지는 지켜봐야겠지만 말이다."

잠자코 있던 기스의 생각이었다.

그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자. 이럴 때가 아니지. 일단 정산부터 하자.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아벤이 모두를 다시 모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 만의 이야기에 빠져들어갔다.

****

"후훗. 몸이 무겁구만. 이거."

주머니가 두둑해졌다.

결산을 하고 나니 지금까지 받았던 걸 따지면 이자에 원금까지 어느 정도 깔 수 있을 것 같았다.

체스에게는 데몬 스코르피 따위보다 지금 자신이 빚을 깐다는 그 사실.

그것이 훨씬 중요했다.

"역시 사람이 돈을 벌어야 해."

일단 이 정도면 몇 달 치 정도 원금과 이자는 처리가 되겠지.

게다가 헬캣에게 간식도 한 두어 개 정도 줄 수도 있을 것 같고 말이다.

"으흐흐흐흐. 좋구만?"

귀가하는 체스의 발걸음이 몹시도 가볍게 느껴지는 뒷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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