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
캉고르단(3)
"이익..."
시프 또한 제프를 구하기 위해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보다 한 발자국 더 빠르게 움직이는 자.
의자에 앉아있던 이니아였다.
이니아가 그 거구를 움직이며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호오~'
그 자의 눈에 떠오른 이채.
달려오는 기세만 봐도 알 수 있다.
'제법이구만~ 좀더 놀아봐줄까? 어쩔까나~ 어줍잖은 랭커들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훨씬 재미있겠는데. '
그 사이 이를 꽉 깨문 이니아.
그녀는 두 아이의 엄마이기 이전에 캉고르단의 수장.
괜히 수십여 년이나 이 조직의 수장을 한 게 아니란 말이다.
랭커들이 자신의 앞에 나타난다?
물론 간혹 자신의 눈앞에 나타났던 랭커들도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보는 바와 같다.
아직까지 땅에 발을 디디고 서있는 건 자신이지 않나.
흥.
콧방귀가 절로 나온다.
단지 마수 사냥꾼이 아닐 뿐 세간이 매겨 놓은 랭킹에 대해서는 관심이 전혀 없는 이니아였다.
그녀의 실력은 제프나 시프도 제대로 몰랐다.
보여준 적이 없으니 말이다.
하아아아압-!!!
두 팔을 벌리며 그의 기운을 상쇄하기 위해 하단과 중단을 동시에 개방하는 그녀.
통나무 같은 그녀의 종아리에 근육이 바짝 서고 허벅지가 팽팽해진다.
그와 동시에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하는 그녀의 기운.
하지만 부족하다.
자신을 뜯어먹을 것처럼 덤벼드는 저 자의 기운.
도대체 어디서 저런 강자가 나타난 것인가.
아니 그 전에 사람인 건 확실한 것인가.
그 사이 그 자의 기운은 더욱 강해진다.
점점 자신을 짓눌러 오는 기운.
'오냐. 그래. 빡빡하게 가자 이거지?'
빠드득-
그녀가 이를 으드득 갈았다.
하아아아압-!!!!!!
순간 그녀의 손가락에 끼워진 10개의 반지들이 짤랑 소리를 냈다.
짜라랑-
귓가에 들리는 맑은 소리.
하지만 그 소리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연이어 쌓여가는 반지들의 마찰음.
짜랑- 쩌렁- 쩌렁- 쩌러렁-
방 안에 울려퍼지는 반지의 부딪히는 소리가 고막을 울려댄다.
이니아의 저 반지들.
단순한 액세서리가 아니었나보다.
반지들끼리 부딪히는 소리는 그녀가 손을 거듭 교차할수록 공명을 하며 그녀의 손에서 나오는 울림은 더욱 커져갔다.
"감히 내 아들으으으으으을!!!"
이니아가 다시 한 번 고함을 외치는 찰나.
갑자기 그의 흉폭하게 사방팔방 할퀴어가던 기운이 싸그리 사라졌다.
마치 봄날을 맞이한 훈풍처럼.
찢어져 나갈 듯 펄럭이던 커튼이 사라락 가라앉는다.
그리고 순식간에 그녀의 기운을 갈무리한 그가 천장으로 이니아의 기운을 내던져버렸다.
쿠와아앙-
천장에 뻥 뚫린 구멍.
먼지며 벽돌이 후두둑 떨어진다.
어지럽혀진 홀 안.
허나 그 홀 안의 상태보다 더 어지러운 건 이니아의 얼굴.
그녀는 지금 몹시도 혼란스러워보였다.
'도대체 어떻게 한... 것이지?'
불신이 가득한 눈으로 그 자를 쳐다보는 이니아.
아무리 강하다한들 자신의 힘을 이렇게까지 무위로 돌리는 사내는 보지 못했다.
"엄마. 엄마. 저 자는 뭐야? 도대체?"
식겁한 제프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이니아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3명의 질린 듯한 시선을 가볍게 받아내는 그.
"하하하. 뭘 그리 보나. 무안하게. 별 것도 아닌 걸 말이야."
부끄럽다는 듯 몸을 배배 꼬는 그.
'야이씨! 그게 별거 아니냐! 인간이냐? 뭐냐? 넌 도대체."
그의 말에 이니아가 눈을 부릅떴으나.
타격은 단 1도 보이지 않는다.
그 시선을 올곧이 받아내는 그의 얼굴은 여유가 넘쳐 흘렀다.
"후후후후. 캉고르단에 곰 한 마리가 있다더니 곰이 아니라 발톱을 숨긴 암코양이였군. 대단하군. 대단해."
"...뭐냐. 도대체 무슨 짓을... 왜 갑자기."
칭찬이냐 욕이냐.
그러나 그는 그녀의 그런 말에도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는 대신 내뱉는 말.
"나름 동업자인데 굳이 피를 볼 일은 없지. 보수는 다 지불했고 보자... 다음에도 부탁하겠네 그럼. 앞으로도 볼일이 많지 않겠나?"
"크흡. 약...속은...?"
허허허허허-
"하긴 양지가 좋긴 하겠지? 또 그럼 보도록 하지."
남자는 크게 웃음을 터뜨리더니 그대로 건물을 나섰다.
옆구리에는 아이를 낀 채.
그리고 남은 이들은 그저 나서는 그의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
"엄마. 괜차나?"
"괜찮아요? 엄마."
남자가 간 것을 확실히 인지한 후에야 물어보는 제프와 시프.
방금 전의 상황에 특히나 놀란 건 제프였다.
어느 누구와 자웅을 겨누더라도 결코 뒤로 물러나는 법이 없는 제프가 아니었던가.
특히나 싸움이 달아오르면 달아올수록 더욱 힘을 내는 제프였건만.
무서웠다.
그 기운.
마치 마수와도 같은 그 기운.
만약 이니아가 없었더라면 자신은 차디찬 바닥에 누워있을 따름이겠지.
"그래. 난 괜찮단다."
다행히 그녀의 모습은 별다른 이상이 없어 보였다.
하긴 본격적으로 달아오르기도 전에 식어버린 상황이 아니었던가.
"그나저나 저 자는 누구에요? 엄마."
"글쎄... 나도 저 자의 정체는 알 수가 없구나. 지금껏 듣도보도 못한 자이니."
이니아가 모른다면 유명하지 않다는 이야긴데.
그녀가 모르는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자 중에 저렇게 강한 자가 있었던가?
없다.
시프 자신의 기억 속에도 저렇게 강한 자는 랭커들을 제외하고는 없다.
"시프."
"네. 엄마."
"저 자가 누구인지 좀 알아보렴. 우리를 양지로 끌어올려준다는 약속을 하긴 했지만 그 동아줄이 튼튼한 지 아니면 썩은 동아줄인지 좀 알아야겠구나."
뒤를 쫓으라는 말이다.
확실히 하고 싶은 것이겠지.
"네. 엄마."
"엄마. 엄마. 그럼 나도 시프랑 가도 돼?"
"아니. 넌 안돼."
이니아의 단호한 거절.
순간 제프의 얼굴이 울상이 되어갔다.
"안된다 넌. 이런 일은 시프가 제격이다. 넌 가면 무조건 망칠 거야."
"엑?????? 나도 그런 은밀한 일은 잘 할 수 이쩡~~~"
그러나 이니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혹시나 싶어 다시 한 번 생각해 봐도 몇 번을 생각해 봐도 제프는 안 된다.
저 덩치에 그런 일마저 잘 한다면 그건 사기캐릭터지.
힘을 쓰는 건 잘 하나 머리는 역시 시프에게 맡겨야 마음이 편하다.
"시프. 그럼 다녀와라. 그리고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보고해야 한다."
"네. 알겠어요. 엄마. 형. 다녀올게."
시프는 간략히 인사를 한 후 얼른 채비를 꾸렸다.
****
히히이이이잉-
연거푸 푸레질을 하는 말들.
수십여 구의 말들이 안장 위에는 사람들을 태운 채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캉고르단 속의 시프가 직접 운용하는 부대이다.
주된 임무는 정보 수집 및 탐색.
다시 말해 캉고르단의 눈과 귀가 되어주는 부대가 바로 이들이었다.
"가자."
짤막한 시프의 한 마디에 부대 전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