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
캉고르단(2)
"나 못 믿어? 엄마아앙?"
짐짓 토라진 듯 볼에 잔뜩 바람을 불어넣는 제프.
첫 아이라 그런지 이니아의 앞에만 서면 어찌나 저렇게 애가 되는지 원...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시프.
그의 입가에 므흣한 미소가 걸렸다.
'그래. 우리 세 가족 행복하게 살면 되는 것이지.'
이곳은 즐거운 나의 집.
이게 바로 자신의 위치이고 행복이었다.
"그런데 엄마 엄마."
"으응?"
"아이가 도대체 누구길래 그렇게 데리고 오라는 거여쪄? 부하들도 수십 명이나 버리고 와썽. 랭커도 있었고 했단 말이야."
"랭커?"
시프를 돌아보는 이니아.
"10위에 심슨이라는 자가 있었어요. 엄마. 형이랑 함께 붙어보기는 했는데 엄마도 알잖아요. 우리 둘이면 웬만한 랭커 정도는 상대할 수 있다는 것."
"호옹. 그거야 알지. 별다른 상처 없이 잘 하고 왔구나. 의뢰도 성공했고 말이야."
"그렇죠. 엄마가 꼭 데리고 오라고 했으니 꼭 데리고 와야죠. 우리가 다치더라도."
"아니야. 아니야. 시프. 난 너희들만 무사하면 된단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식들이 아니냐. 내가 너네 아버지. 랭커의 칼에 맞은 그이를 그렇게 보내고 너네를 얼마나 옥이야 금이야 키웠는데. 흑흑흑..."
갑자기 감정이 복받치는지 눈물을 짜내는 이니아.
그녀는 자신의 소매를 걷어 눈물을 꾹꾹 훔쳤다.
"엄마..."
그런 이니아의 모습을 보며 덩달아 눈물을 흘리는 두 형제.
얼굴도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 아빠를 언급하며 눈물을 흘리는 이니아의 모습에 같은 슬픔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끼이익-
순간 문이 열렸다.
****
"허허. 이거 눈물이 넘쳐 흐르는 자리구만. 가족들이 한데 모여 회포를 푸는 자리를 내가 방해한 건지도 모르겠군요."
문이 열리며 천천히 걸어 들어오는 남자.
바로 그였다.
"누구냐."
으릉-
낯선 자.
시프가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를 냈다.
감히 가족들의 자리를 방해하다니.
스릉-
가만히 자신의 검에 손을 가져가는 시프.
그리고 그 사이 제프가 이니아의 곁에서 떨어져 뚜벅뚜벅 걸어왔다.
"네놈. 누구지?"
허허허허허.
"젊음이란 좋은 것이지."
그 자는 마치 자기 집의 안방인 양 들어오더니 지극히 여유로운 웃음을 보이고 있었다.
그 사이 가만히 손가락을 하나씩 꼽아보는 이니아.
하나. 둘. 세...엣.
'아직 며칠 남았는데...?'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 자와 대화하기 위해 이니아가 고개를 들었다.
순간.
갑작스레 움직이는 제프와 시프.
먼저 움직인 건 당연히 제프였다.
"기다려라!"
황급히 자신의 아이들을 말리는 이니아.
그녀의 다급한 말에 두 형제가 돌격하던 자세 그대로 끼익 멈춰섰다.
그리고는 동시에 이니아를 쳐다보는 둘.
왜 말리냐는 듯 불만이 가득 찬 얼굴이다.
"의뢰인이다. 의뢰인."
후후-
그녀의 말에 웃음을 살짝 보이는 남자.
"잘했네. 좀더 냅뒀으면 뜬금없는 이별의 장이 될 뻔 했거늘."
"뭣!"
명백한 도발이다.
그리고 그런 모욕적인 언사를 듣고도 참을 이들이 아니다.
재차 무기를 꼬나든 채 그 자에게 공격을 가하려는 찰나.
"그만!"
다소 날카로워진 이니아의 목소리.
이 곳에서는 곧 자신의 말이 법이다.
아무리 자신의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자식들이라도 말이다.
"좋군 좋아. 보면 볼수록 탐이 나는 조직이군. 후후. 그나저나 아이는?"
그 자는 두 형제들을 잠시 보는가 싶더니 이내 이니아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그의 질문을 그대로 받는 이니아.
"아이는 데리고 왔죠. 그런데 아직 날짜가 남은 것 아니었나요?"
"데리고 온 걸 아는데 당연히 데리러 와야지. 굳이 시간이 남았다고 더 기다릴 필요는 없는 것더라구. 우리도 우리 일로 바빠서 말이지. 그나저나... 데리고 오지?"
그 자의 말에 이니아가 시프를 돌아보았다.
****
"여기."
아이는 퍼져 있었다.
실은 아까 아이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리긴 했었다.
그걸로 아이가 멀쩡하다는 것은 이미 확인이 되었으니.
"그럼 이제 내가 데려가면 되겠지?"
말을 하는 남자의 곁으로 아이가 둥둥 떠오른다.
그리고 그걸 본 이니아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역시 가벼운 행동 하나하나도 쉬이 볼 수 없는 남자다.
도대체 정체가 무어란 말이지?
"하나만 물어봐도 되나요?"
"뭘?"
"그 아이. 누구죠?"
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 자의 호탕한 웃음소리.
순간 건물 전체가 후두둑 소리를 내며 흔들거렸다.
뭣.
'무슨 이런 자가 있...지...?'
시프의 얼굴이 급격히 경직되어 갔다.
이거 보통 자가 아닌 듯한데...
방금 안 덤빈 게 오히려 잘 한 것...이 맞는 것 같다.
"이봐 이봐. 이니아지? 당신의 이름."
"...맞아요."
도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것인가.
모르는 게 없는 이 자.
심지어 자신의 이름까지 알고 있다니.
"세상에는 말이야. 알아서 좋은 게 있고 알아서 안 좋은 게 있다네. 그리고 지금 이건 후자에 속하는 것이고."
"그... 그런..."
"어차피 알게 될 것인데 무에 그리 급하게 난린지 원. 껄껄껄."
그 자는 말을 하더니 품에서 뭔가 가득 찬 주머리를 바닥에 툭 던졌다.
"여기 나머지. 그럼 이만 가보겠네."
빙글-
남자가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그 찰나.
갑자기 제프가 확 달려들었다.
그의 불타오르는 눈.
"재밌겠다!!! 한 판 붙자!!!"
역시 제프.
신중하고 사려 깊은 시프와는 달리 극히 호전적이고 불이 잘 붙는 제프였다.
그는 아까 전 그 자가 보인 무위에 완전히 달아오른 듯 보였다.
"안돼!!! 형!!!"
"첫째야!!! 안 된다!!!"
동시에 제프를 말리기 위해 달려가는 둘.
몹시도 급한 움직임이었다.
순간 몸을 다시 되돌리는 그자.
그리고 그 자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진 그 순간.
화아아아아아악-
그의 온 몸에서 기운이 확 피어올랐다.
허나 그는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단지 그 자리에 서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몸 전체에서 일어난 그 기운은 그대로 제프를 물어뜯을 듯이 달려 들어갔다.
슝- 슝- 슈웅-
빠른 속도로 곤을 연이어 돌려가며 그 기운을 상쇄하며 앞으로 가기 위해 애쓰는 제프.
그러나...
격이 다르달까...
자신보다는 몇 단계나 위에 있음직한 기운이다.
게다가 이 기운.
마치 사람의 것 같지가 않다.
짐승도 아닌 것이 사람도 아닌 것이 이 기운은 뭐랄까...
마수!
그렇다.
이건 마수의 기운.
하지만 인간의 몸인데 어떻게 저런 기운을...
그렇게 제프가 잠시 딴 생각을 하는 사이.
그 기운은 그대로 제프를 덮쳐갔다.
마치 파도가 사람을 집어삼키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