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
캉고르단(1)
드리워진 커튼 사이로 빛이 새어 들어온다.
하지만 워낙 홀이 넓은 탓에 기다랗게 늘어져 있는 빛의 그림자.
홀의 전체를 채우기에는 부족한 빛이다.
허나 그것 만으로도 대충 어떻게 생긴 방인지는 한눈에 들어온다.
아무 것도 없다.
놓여진 건 의자 몇 개와 커튼들 정도이려나.
그런 방 안을 대신 채우는 건 소리.
딱딱딱딱-
커튼이 일렁이는 박자에 맞춰 무언가를 두드리는 소리.
그 소리의 주인공은 홀에 홀로 앉아있는 여성.
짙은 화장을 한 후덕한 몸집의 여성.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사치스러움이 느껴진다.
눈이 아플 정도로 화려함의 극치를 자랑하는 그녀의 옷차림.
게다가 10개의 손가락에 끼워진 커다란 보석이 장식된 화려한 반지들.
누가 보면 어디 돈 많은 부자집 마님 정도로 볼 법한 모습이었다.
아마도 이 곳의 여주인인가보다.
커다란 의자에 홀로 앉아 팔걸이 부분을 손가락으로 계속 빠르게 두들기고 있는 그녀.
"왜 안 오는 거야? 분명히 온다는 보고를 받았는데."
입술을 질끈 깨문 그녀는 매우 초조한 기색이다.
그도 그럴 것이 팔걸이를 두들기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지 않은가.
점점 패여가는 의자의 팔걸이 부분.
순간.
끼이익-
커다란 문이 열렸다.
탁-
문을 여는 소리에 그녀의 손이 멈췄다.
그리고 자신의 의자에서 몸을 황급히 일으키는 그녀.
누구?
그리고 그때.
"엄마~ 나 와쪄~"
남자의 혀 짧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넓은 홀을 가득 채우는 남자의 애교가 철철 흐르는 소리.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그녀가 익히 알고 있는 자들.
그 목소리를 들은 그녀의 얼굴이 급격히 환하게 밝아졌다.
자신이 목이 빠지게 기다리던 아이들이 이제야 온 것이다.
"아이구~~~~ 우리 아드으으으으을~~~~"
어찌나 기다렸는지 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그녀는 아이들이 걸어오는 것을 두 팔을 벌리고 기다렸다.
그들 사이의 거리가 제법 줄어들었을 때.
덩치 큰 남자가 팔을 힘차게 흔들며 생기발랄하게 뛰어갔다.
그 여자에게로 냅다 뛰어간 그는 이윽고 중년의 여자를 세게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꺼칠꺼칠한 수염이 난 볼을 마구 비벼대기 시작하는 제프.
"엄마~ 다녀와쪄."
"어이쿠~ 우리 큰 아들. 잘 다녀왔어?"
고생했다며 남자의 엉덩이를 토닥토닥거리는 여자.
그리고 그 모습을 또다른 남자가 눈살을 찌푸린 채 보고 있었다.
'에휴......'
****
이 곳은 캉고르단의 본거지가 있는 곳.
넓디 넓은 대지에 홀로 우뚝 세워진 고풍스러운 성.
그렇다면 이 여성은?
바로 이 여성이 빅마마 이니아이다.
대륙 제일의 청부단체인 캉고르단의 수장이자 이들의 엄마.
그녀가 기다리고 있던 것은 자신의 아이들.
제프와 시프였다.
이번에 맡은 의뢰.
그녀가 지금까지 맡은 의뢰 중 이렇게까지 신경이 곤두서는 의뢰는 처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를 데려오라는 의뢰.
표면적으로는 아주 쉬운 일이다.
단순한 유괴이지 않은가.
허나 문제는 바로 그것.
맡긴 사람이 절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그 자는 자신과 같은 어둠 속에서 사는 자.
그것도 더욱 어두운 곳에서 움직이는 자.
처음 그가 방문한 날.
그 날은 비가 억수 같이 내리는 날이었다.
그 날 문이 열리고 들어온 자.
얼굴을 복면으로 가리고 있었다.
여기에서 궁금한 것 하나.
루비온 왕국의 그 누구도 캉고르단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자는 없었다.
다시 말해 자신들의 본거지가 어디인지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 자는 이곳을 지나치게 속속들이 잘 알고 있었다.
마치 이 곳이 어떤 곳인지 아는 곳 마냥 말이다.
심지어 수많은 경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당당하게 이 저택 안으로 들어왔다.
자신의 눈앞에 떡 하니 나타난 그 자를 보며 숱한 의문이 생겨났음에도 불구하고 자세한 것은 물어보지도 못했다.
아니 그럴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무서운 것 없이 살아온 자신이었지만 허허 웃어대는 그 자를 보는데 무서워서 오금이 떨릴 정도였으니.
그 자가 요청한 건 단 한 아이.
조심스레 그 아이에 대해 물어봤지만 그 아이의 신상에 대한 것은 단 하나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가 가르쳐 준 것은 이동경로와 일시.
단지 그것 뿐이었다.
솔직히 임무 만을 놓고 생각했을 때에는 지나치게 쉬운 임무라 오히려 속임수가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의심이 들 정도다.
하지만 그 의심도 다음에 이어진 그의 말 때문에 확 날아가 버렸다.
선수금은 10억G, 성공하면 거기에 더블.
실패한다면 그 의뢰는 오롯이 캉고르단이 꾸미고 시행한 일.
그 말인즉슨 실패 시에는 그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말이다.
죽더라도 혼자서 죽으라는 말이겠지.
대신 성공 시 캉고르단이 양지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제안.
그 말에 이니아는 홀라당 넘어가버렸다.
지금도 썩 나쁘지는 않지만 양지로 나간다라.
솔직히 말하면 얼마나 양지로 나아가길 원했던가.
그걸 그 자가 만들어 준다는 말이다.
바로 그 자리에서 계약은 맺어졌다.
잘 부탁한다는 말을 한 남자는 한없이 부드러운 웃음소리를 흘리며 한 달 뒤 다시 오겠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돌아온 자신의 아이들.
아이들이 저렇게 밝은 모습으로 돌아왔다는 말인즉슨...
틀림없이 성공이다!
이니아의 얼굴이 확 피어올랐다.
짙은 화장을 한 그녀의 이목구비가 더욱 짙게 보여 기괴해 보일 정도로.
****
"아이는?"
톤이 높은 그녀의 목소리.
잔뜩 기대감이 들어간 목소리다.
"시프가 데리고 이찌~ 시프~"
딱-
제프의 말에 앞에 가만히 서있던 시프가 손가락을 딱 울렸다.
그러자 열린 문 사이로 부하 한 명이 축 늘어진 아이를 데리고 들어왔다.
"저 아이야?"
"네. 맞아요. 엄마. 시킨 대로 데려왔어요."
"잘 했구나. 정말 잘 했어. 이리로 데리고 오도록."
그녀의 말에 아이를 받아든 시프가 이니아에게 걸어갔다.
"근데 엄마 엄마."
"응? 왜? 우리 첫째~"
"왜 나한테는 얘기 안해줘쪄?"
입술을 삐죽 내민 채 토라진 표정을 짓는 제프.
저 큼지막한 덩치를 한 녀석이 토라진 표정을 지으니 어찌나 귀여운지 원.
"흐응~ 우리 큰아들은~ 워낙 열정적이라 다 망칠까봐 그랬지이이~~"
제프의 볼을 쓰다듬으며 이니아가 토라진 제프를 다독였다.
이니아는 제프의 그런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배 아프게 낳은 녀석 아닌가.
다른 건 다 괜찮은데 낳을 때 힘을 지나치게 준 탓인지 이상하게 쓸데없이 불타오르는 게 너무 심했다.
그래서 일을 망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아마 시프가 없었다면 이렇게 대륙 최고의 청부조직으로 올라서지는 못했겠지.
제프가 실수하면 시프가 커버한다.
정말이지 자신이 낳은 최고의 아이들이 아닐 수 없다.
"에이~ 엄마. 나도 이제 잘 한다규~"
제프가 볼멘 소리로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