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의 채무 탈출기-128화 (128/249)

#128

호송(4)

"형. 아~ 아니지. 단장. 나갈 거야?"

앞으로 뛰쳐 나가려 몸을 움찔거리는 제프였다.

허나 누군가가 자신의 옷을 잡아당겼다.

그의 소매를 움켜쥔 건 시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는 그의 만류였다.

왜 편한 길을 놔두고 굳이 험한 길로 가자는 것인지...

허나 제프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동생의 만류를 가볍게 뿌리치는 제프.

"남자라면 직진이지. 당연한 거 아니냐? 으흐."

그리고 몸을 불쑥 일으킨 제프.

오랫동안 쭈그리고 앉아있었던 탓인지 온 몸이 뻐근하다.

두둑- 두두둑-

몸을 한바탕 거하게 푼 제프가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 나갔다.

한 번 더 잡아보려 했더니 그새 호송대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제프.

하여간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건 아마 대륙 내 최강이 아닐까 싶다.

이마를 탁 짚는 시프.

"후우... 편한 길을 두고 왜 매번 돌아가나? 이거 귀찮아서라도 다음에는 혼자 간다고 해야겠는데."

하지만 이미 엎어진 물이 아닌가.

혼자 중얼중얼거리던 시프도 덩달아 그를 따라 앞으로 나갔다.

****

덩치 큰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나오는 사람들.

그런데 한둘이 아니다.

그 수는 약 200여 명.

이 좁은 산길에 사람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길은 순식간에 사람들로 가득 차 이내 발 디딜 틈조차 없게 되었다.

"그래서 뉘시오?"

행크스가 재차 되물었다.

"크흐흐. 이거 안 보여? 여기. 여기."

제프가 손으로 오른쪽 가슴팍을 가볍게 두들겼다.

빨간 체리.

캉고르단의 상징.

"캉고르단? 당신들 이런 도적질은 안 하지 않소? 듣기로는 이제는 온갖 일을 다 한다더니 정말 온갖 일을 다 하나보네. 그런데 왜 하필 우리를?"

행크스의 말에는 의문이 묻어 있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거야. 시대의 흐름에 맞춰가지 않으면 망하기 십상인 거 몰라? 그러니 거기 것을 전부 두고 사라지던가 내 곤에 죽던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라. 도망을 가겠다면 살려는 드릴게."

순간 시프가 흠칫 놀랐다.

그런 건 계획에 없었던 것이지 않나.

"형. 아니 단장."

다급히 제프를 부르는 시프.

분명히 무언가 까먹은 게 틀림없다.

하지만 제프는 시프의 부름을 깡그리 무시했다.

"우리는 이제 공격을 할 것이니 도망갈 거면 지금이 기회지. 쳐라!"

와아아아아-!!!

제프의 말에 캉고르단이 함성을 지르며 전방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

'젠장.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인가.'

"온다! 방패를 앞으로!"

바싹 긴장한 행크스의 말.

행크스의 명에 둥그런 방패를 세운 호송단원들이 자세를 낮추었다.

그들 또한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기는 마찬가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길이 좁은 탓에 부족한 인원수에 비해 포위를 당하지 않은 것 정도이려나.

바로 그때.

"쓸데없는 피해는 줄이죠."

심슨이 나섰다.

장창을 앞에 꼬나든 그가 앞으로 나서자 갑자기 전장의 기세가 돌변했다.

그리고 나서는 그를 본 행크스의 얼굴에 안도감이 서렸다.

이 길 안에서만 싸운다면야 랭커 하나가 막아준다면 충분하다.

비록 캉고르단이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랭커보다 강하겠는가.

우흐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배시시 새어 나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근엄한 표정으로 다시 돌아온 행크스.

"뒤로 물려라! 어서!"

행크스가 다시 지시를 내리자 방패를 들고 있던 호송대원들 사이에서 영문 모를 표정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사이.

심슨이 앞으로 나아갔다.

하아아아압-

심슨이 가볍게 장창을 휘둘렀다.

수웅- 수웅- 수웅-

바람이 격하게 일어난다.

그가 연거푸 일으키는 바람은 그대로 앞쪽에서 달려드는 자들을 향해 밀고 들어갔다.

"뭐...뭐냐?"

순간 달려오던 기세가 급격히 꺾여버렸다.

그리고 돌격해 오던 캉고르단 전체가 일순 주춤거린다.

대신 퍼져가는 웅성거림.

저도 모르게 그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넘쳐났다.

"아놔~ 이것들. 뭐하냐?"

짜증이 잔뜩 섞인 제프의 목소리다.

뒤에서 한참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다.

지금 쯤이면 칼부림이 터져나와도 벌써 한참을 터져 나왔어야 될 시간이 아닌가?

그런데 되레 조용해져?

이것들이...

제프가 뒤에서부터 사람들을 마구 밀치며 앞으로 나왔다.

덩달아 시프도 함께.

****

"뭐하냐? 이것들. 확~ 똑바로들 안 하지? 어?"

으휴...

그저 한심한 것들.

돌아가면 미친 듯이 뻉뺑이나 좀 돌려줘야지.

"요즘 좀 평화스러웠지? 너희들 삶에 아주 그냥~ 그렇지? 뭔데. 뭔데. 뭐 뭐."

"저... 저기 저 자."

맨 앞열에 서있던 부하 중 한 명이 떨리는 손가락으로 정면을 가리켰다.

"뭐! 저게 뭐!"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쳐다보니 누군가가 우뚝 서있다.

순간 제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저 자. 결코 내 아래가 아니다.'

강한 기운.

누가 봐도 좌중을 압도할 만한 실력을 가진 자.

몇 백 명의 기세조차 잠재울 수 있는 자였다.

혼자서는 승패를 장담할 수 없다.

심슨을 바라본 제프의 지극히 객관적인 평가였다.

"형. 형. 형.!!!"

그를 쿡쿡 찌르는 시프.

"저 자. 심슨이야. 그 조금 전에 이야기했던 랭킹 10위."

"없다며?"

"...글쎄. 분명히 없다고 했는데."

망했다.

저 자를 꺾지 않는 한 이번 의뢰는 실패다.

말 그대로 똥망했다는 말이다.

흠...

"단장. 어떡하지...?"

시프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제프를 바라보았다.

****

"으하하하하하하. 아 이거 참~. 크흐흐흐."

갑자기 제프에게서 호탕한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옆에 있는 시프의 얼굴은 심하게 일그러졌다.

'망했다. 진심.'

불이 붙어 버렸다.

저렇게 웃는 걸 보면.

한편 시프가 그런 생각을 하거나 말거나 제프는 싱글벙글이었다.

"좋아~ 붙어보자!"

제프가 손에 들고 있는 대검을 꾹 쥐었다.

"캉고르단. 네가 그 제프인가? 이들의 대장이 바로 너인가 보군. 옆은 동생 시프일 것이고."

"이거 이거 랭커가 나도 다 알아봐주고 영광인데? 아우야. 우리가 그래도 제법 유명해졌나보다."

점점 호승심이 불타오른다.

저 심슨이라는 랭커와 어서 붙고 싶은지 몸이 근질근질거린다.

강적과 만날 때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끼는 제프가 아니었던가.

그는 이번 의뢰가 정말 자신의 마음에 쏙 들었다.

"불필요한 싸움은 피하고 싶은데 그냥 가면 안되겠나?"

"무슨 개소리야? 쫄았나? 랭커가 이런 거에 쫄고 그래 왜~ 재미없게."

"흠. 듣던 대로 굉장히 호전적이군. 그럼 우리끼리 결판을 내지. 굳이 여러 명 죽을 필요는 없지 않나."

"좋아~ 좋아~ 뭐 그건 어찌 되었든 한 번 붙어보지."

"약속만 하나 해주게. 만약 내가 이긴다면 더 이상 피는 보지 않기로 말이야."

"뭐 그건 내가 지면 이야기하는 걸로 하고."

웃음기를 가득 머금은 채 제프가 검을 꾸욱 쥐었다.

그의 팔에 돋아난 힘줄들이 순간 지렁이처럼 울끈불끈거린다.

"시작하지."

단 한 마디.

순간 둘의 시선이 맞부딪히며 불꽃을 튀겼다.

그리고 둘은 하나가 되었다.

격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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