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
호송(3)
벌써 며칠 째 매복이다.
술도 못 마시고 즐기지도 못하고...
젊은 날의 인생 중 며칠이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먹고 살자고 이러는 게 참 서글프기까지 하다.
허나.
이번 임무는 건수가 제법 큰 건이다.
의뢰자는 밝힐 수 없지만 보수가 꽤나 짭짤하다는 말이다.
본디 이 일이 업은 아니지만 인생이 다 그런 것 아니겠나.
숨어있는 자들.
모두의 복장에는 너나 할 것 없이 새빨간 체리가 가슴팍에 수놓아져 있다.
...저 빨간 체리로 봐서는.
그들이 틀림없다.
일명 대륙의 청소부라 불리우는 캉고르단.
대륙 내에서 돈이 좀 된다 싶은 의뢰는 다 받는 이들이다.
그렇다고 푼돈 밖에 되지 않는 쪼잔한 의뢰들까지 홀라당 다 받는 건 아니고.
핑계는 여러가지이지만 가장 대표적인 이유로 들자면 자신들에게도 격이 있다나 뭐라나.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가 있기는 했다.
캉고르단이 처음 만들어졌을 당시 이들은 확실한 기준이 있는 집단들이었다.
주 의뢰는 암살.
각종 주요 인물이나 원한 상대를 소리소문 없이 죽이는 일이 바로 이들의 일이었다.
그렇기에 처음 시작은 암살단이었으나...
하지만 알다시피 요즘 누가 큰 돈을 들여 죽여달라말라 한단 말인가.
자신들에게 의뢰를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적은 돈으로 암살을 하는 개인사업자들이 제법 많이 생겨나버렸다.
원래 시장경제라는 게 저비용 고효율을 따지지 않는가.
그렇다 보니 점점 줄어드는 수입에 애들 월급도 줘야 하지...
그리고 조직이 커지다보니 거기에 따라 들어가는 운영비도 넘쳐나고...
게다가 현실이라는 게 마음에 드는 일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런 연유로 울며 겨자 먹기로 암살단이라는 정체성을 바꾸어 버린 게 바로 작금의 캉고르단이었다.
이제는 뭐...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청부를 받는 집단이 되어 있었다.
잡다한 것까지 모두 도맡아 하는 바람에 업계에서 원성이 자자하기도 했고 뒷골목에서의 소문 또한 그닥이었지만 그래도 실력 만큼은 아직까지도 확실히 업계 으뜸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숨어있는 인물들 중 유난히도 연신 투닥대는 둘.
누가 봐도 형제라고 할 만큼 얼굴이 쏙 빼닮은 둘이다.
아니 실은 형제가 맞다.
서로 강력히 부인을 하긴 하지만 누가 봐도 형제인 걸 뭐.
단지 다른 것이라면 체형 차이 정도?
한 명은 마치 굵은 통나무처럼 매우 굵은 몸에 근육이 터질려 한다.
그에 반해 나머지 한 명은 빨래를 쥐어짠 것 마냥 몸이 아주 그냥 말라비틀어졌다.
얼굴만 빼면 모든 게 극과 극인 형제들이었다.
"아~ 맞아. 단장. 걔네들은 항상 이 길로 지나가더라고."
"너 혹시나 잘못 알아보고 이거 공치면 아마 엄마한테 혼날걸?"
"에이~ 그럴 리 없어. 단장."
절대 틀릴 수 없다.
몇 번이나 알아봤다.
모름지기 청부를 받고 임무에 들어갈 때에는 사전 조사가 필수 아니겠는가?
적어도 자신이 알아본 바로는 확실했다.
"그래. 하긴 뭐 네 성격 상 그저 그렇게 처리할 리가 없지. 그런데 이상하단 말이야. 흐음..."
고슴도치 털 마냥 빡빡하게 자라난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형 제프가 중얼거렸다.
"뭐가?"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건가? 그게 아니면 이렇게 다닐 수가 없는데? 얘네 벌써 한참 전부터 이 길로만 다닌다며?"
"흠... 뭐 세력도 많이 커졌고. 아~ 예전에 그 랭커 중에 왜 심슨이라는 자 알지?"
"심슨? 저기 있잖아. 아우야. 심슨이 한둘이냐??? 누군지 특정지어줘야 내가 알 것 아냐?
"그 왜 있잖아. 랭커들 중에 10위."
"아~ 알지 알아~ 최상위 랭커 중 한 명 심슨."
당연히 안다는 듯 손을 내젓는 제프.
랭커들은 거의 공인과 마찬가지다.
그러니 그 정도 유명인을 모를 리가 없지 않나.
아니지.
잠깐.
응??????
심스으으으으은???
제프의 눈이 쟁반처럼 커졌다.
부릅뜬 두 눈으로 시프의 몸을 홱 돌리는 그.
"그 자가 왜?"
"종종 함께 다닌다 하더라고."
"에?????? 이번에?????? 그럼 이번에도 있냐???"
"아니. 그럴 리가 없으니 온 것 아냐. 이번 명단에는 없었어. 확실히 확인했지."
확실히 그렇다면 안심이다.
제프는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랭킹 10위의 심슨이라.
아마 지지는 않겠지.
그렇다고 이길 자신도 딱히 없지.
게다가 그런 녀석이 있다면 100% 손해다 손해!
"그런 녀석과는 안 만나는 게 좋지 암."
"뭐 우리 둘이라면 그 녀석도 어렵지 않을걸?"
"흐흐흐흐. 그건 또 그렇지. 아무렴 우리가 누군데."
마침 그때 저 멀리서 다수의 무리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말발굽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야야. 왔나봐."
"어어. 들려."
"수는 우리가 훨씬 많네. 저 정도면 씹어먹고도 남겠다. 정면으로 치고 간다."
"정면으로?"
"그래. 빨리 끝내고 가야지. 여기에 더 있고 싶냐? 아주 그냥 지겨워 죽겠다고."
하긴 랭커가 없다면야 아주 금방 끝나겠지.
시프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잠시 후 상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점점 다가오는 그들.
그리고 두 집단 사이의 거리가 화살이 닿을 정도가 되었을 때.
시프가 살짝 손을 뒤로 돌려 활을 건네받는다.
"아우야. 이번에도 화려하게 시작을 알려라."
"당연하지. 알잖아. 한 놈은 무조건 잡는다는 걸."
활에 화살을 얹는 시프.
그리고는 팔뚝에 힘줄이 불쑥 솟아오를 정도로 힘껏 당긴 시프는 그대로 시위를 투웅 놓았다.
쌔애애애애액-
바람을 가르는 시프의 힘을 잔뜩 실은 화살.
그리고 그 화살은 정확하게 사브레 상단의 어느 재수없는 놈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
갑자기 체스가 자신의 머리를 한쪽으로 스윽 기울인다.
한쪽 머리가 심하게 쏠린 그의 머리.
"뭐하냐?"
아벤이 궁금증을 가진 그때.
순간 저 앞쪽에서부터 정체 모를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쌔애애애액-
휘파람 소리의 정체는 바로 화살이 격하게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소리.
피유우우우웅-
그리고 바람을 가르며 날아온 화살은 정확하게 원래 체스의 머리가 있었어야 할 지점을 스치듯 지나갔다.
그대로 땅에 푹 박혀버리는 화살.
행크스가 뒤를 슬쩍 돌아보았다.
화살이 날아오는 것을 늦게 알아차리기는 했지만 다행히 비명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당연히 대비는 해야겠지.
뒤에서부터 고개를 되돌린 행크스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방어 대형으로."
척- 척- 척- 척-
행크스의 말에 따라 방어태세를 갖추는 호송대.
"조금만 더 앞으로."
척- 척-
호송대가 캉고르단과의 거리를 좀더 좁혔다.
그리고 곧 호송대를 멈추는 행크스.
"뉘시오???!!!"
숲 속이 쩌렁쩌렁 울리는 행크스의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