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의 채무 탈출기-126화 (126/249)

#126

호송(2)

"아~ 그렇군요. 하긴 뭐 여기 심슨 씨도 있으니 덤벼들어 봤자 딱히 뭐."

아벤이 잭의 말에 당연하다는 듯 수긍했다.

잭의 말에서 틀린 부분은 단 한 군데도 없다.

랭커가 함께 한다는 소문이 퍼진다면 산적 따위가 덤벼들 건덕지가 없지.

개죽음을 당하고 싶은 자는 없으니까.

"으흐흐. 당연하지. 아마 누가 쳐들어 와도 심슨 정도면 다 막아낼 걸? 그리고 솔직히 나는 잘 모르지만 심슨 저 자. 말이 10위지 더 위라는 뒷말도 들리던데. 단지 귀찮아서 랭킹전을 안 한다는 말이 있더라고."

선두에 선 채 호송대 대장과 말머리를 나란히 한 심슨.

그는 호송대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말을 몰아가는 중이었다.

그런 심슨의 두터운 등짝을 바라보는 잭.

그의 눈에는 심슨에 대한 무한신뢰가 가득 담겨 있었다.

이미 여러 번 그와 함께 한 덕분이었다.

"네? 에이~ 말도 안되요. 심슨 씨가 괴물인 건 분명히 알아요. 하지만 그 위는 본 적은 없지만 더 괴물이라던데요."

"말이 그렇다는 거지 뭐. 나도 직접 본 적은 없어. 난 마수 사냥꾼도 아니고 그냥 상단에 속해있을 뿐이잖아. 단지 뒤에서 돌아다니는 소문이란 말이지 뭐~"

하지만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심슨도 괴물은 맞지 확실히.

이미 자이앤트 토벌전 당시 랭커들을 곁눈질로나마 꽤나 훑어본 아벤이었다.

만약 자신이라면 가능할까...?

잠시 상상을 해보는 아벤.

그리고 결론은 쉽게 나왔다.

안돼. 안돼.

죽었다 깨어나도 못 따라잡아.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아벤이었다.

****

'윽. 엄청 기분 나쁘네 갑자기.'

문득 체스에게 아주 더러운 기운이 느껴졌다.

상단을 조심스레 열어보는 체스.

순간 그의 기감에 그다지 좋지 않은 기운이 잔뜩 걸려온다.

거리는 약 1km 정도 이려나.

"그런데 우리를 마중하러 온 사람들이 있나요?"

체스가 불쑥 이야기 중간에 끼어들었다.

"마중? 마중을 누가 와. 우리가 가는 것이다. 마중을 나오는 녀석들이 어디에 있나? 졸리냐? 으흐흐."

웬 헛소리냐며 되레 체스에게 핀잔을 주는 잭.

"아뇨. 졸린 게 아니라 진짜 1km 정도 앞에 사람들이 잔뜩 있는 것 같아요."

"무슨 소리야? 이 한적하기 그지없는 곳에 무슨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냐? 마중 올 사람들은 없고 그렇다면 뭐 산적이나 이런 도적떼라는 말 아니냐. 네 말은. 그런 너무 뻔한 이야기는 하지 말아줄래?"

"그렇게 생각할 수는 있겠지만 정말 느껴지는 걸요. 보자. 수는 좀 되는데요? 100명은 훌쩍 넘을 것 같은데요? 안 느껴지세요?"

"예끼~ 이 녀석아. 그렇게 놀리는 거 아니다."

하지만 확실했다.

체스의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듯 촤악 펼쳐지는 하나의 장면.

자신의 감각이 그리 알려주고 있었다.

체스의 말에 헬캣이 한쪽 귀를 팔랑였지만 그는 단 1의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굳이 거기에 신경을 쓸 필요는 없지.

자신이 끼어들 것도 아니고 말이다.

여전히 모두는 체스의 말을 믿지 않았다.

체스가 불쑥 던진 말은 이 한적하고도 평화로운 숲 속과는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 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인기척이라고는 없는 산길을 걸어간다.

그리고 그들을 도적들이 덮친다.

무슨 이 상황에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란 말인가.

"푸흐흐흐. 졸리면 네 고양이나 안고 마차에 올라가서 좀 자라. 자식아. 괜히 사기 떨어뜨리지 말고."

한 걸음 뒤에서 말을 탄 채 오던 포드가 그런 체스를 보며 비웃었다.

하지만 체스가 느낀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찐득하게 얽히고설킨 채 그 주변을 물들이는 중이었다.

이미 심슨도 그 살기를 감지한 상태.

"행크스. 잠시만요."

낮은 목소리를 내는 심슨이었다.

이번 호송을 총괄하는 자는 행크스.

상단의 호송 임무만 벌써 20여 년을 채운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그런 그를 잠시 세우는 심슨.

"음? 왜 그러나?"

심슨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살짝 얼굴이 굳어가는 행크스.

특히나 저런 목소리로 자신을 부를 때에는 말이다.

심슨은 행크스에게 살짝 얼굴을 가져갔다.

****

"그래?"

한동안 편안하게 잘 다니더라니.

행크스가 한쪽 손을 살짝 들어올렸다.

그리고 심슨이 가리키는 방향대로 몇 군데의 방향을 짚기 시작한다.

단지 그것 만이면 충분했다.

호송대의 대장이 베테랑이면 당연히 부하들 또한 마찬가지.

그들은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행크스가 의도하는 바를 금방 알아챌 수 있는 훈련된 자들이었다.

그의 손놀림에 따라 갑자기 분주해지는 호송대들.

선두에서부터 경계도가 급격히 올라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지시는 뒤편의 인원들에게도 모두 전달되어졌다.

"야야. 정말이네. 앞에 뭔가가 있나 본데?"

잭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전방에 둔 시선 안에 조금씩 고조되는 긴장감이 느껴진다.

"왜요? 저게 뭔데 그래요?"

잭의 말에 아벤이 질문을 던졌다.

"저거 경계하라는 신호다. 아마 앞에 드디어 적이 나타났나보다. 아직 우리 눈앞에 나타난 건 아니니까 평소대로 움직이되 주변의 경계를 철저히 하라는 말이지. 아마 뭔가가 있나보다. 그런데 이 놈 뭐야??? 실버 등급이라고 하지 않않냐? 그런 걸 어떻게 아는 것이지?"

의뭉스러운 시선으로 체스를 바라보는 잭.

자신의 옆에 있는 아벤도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이걸 알아차린다?

분명히 아벤보다도 낮은 등급이라고 했는데...

자신이 잘못 듣지 않은 이상 말이다.

감이 좋은 건가?

마수 사냥꾼들 중 유난히 감이 좋은 녀석들이 있기는 했다.

그래도 그런 녀석들은 보통 탐색조를 하던데...

아니면...

잭이 턱을 긁적였다.

"감이 좀 좋긴 하더라구요. 한번씩 묘하게 잘 알아차린다니까요 하여간."

그때 마침 옆에서 체스를 거들어 주는 아벤.

"그래? 뭐 감이 좋은 녀석들이 있을 수는 있으니."

잭이 체스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그리고는 언제라도 무기를 꺼낼 준비를 한 그는 앞쪽으로 다시 시선을 향했다.

****

"이 길이 맞는 것이지? 확실하지?"

"응. 맞아. 형."

"이게~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단장 임마 단장! 거 몇 번을 말해줘야 아냐???"

한 명이 주먹을 위협적으로 흔들며 바로 옆에 있는 자에게 으르렁거린다.

이크-

재빨리 몸을 살짝 틀며 주먹의 범위에서 벗어나는 나머지 한 명.

저 큰 주먹을 봐라.

정통으로 맞으면 그냥 골로 간다고 봐야 한다.

게다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고 말이다.

단장이라는 말이 맞긴 하니 그렇게 불러줘야지.

이건 공식적인 임무이니까.

'그나저나 빨리 좀 오지. 뭘 이렇게 굼뜨게 오는 거야? 도대체.'

입술만 빼쭉 내민 남자.

지금 이 곳에서 이렇게 있는다는 그 자체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아 보이는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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