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
호송(1)
다그닥- 다그닥-
숲 속의 단잠을 깨우는 말발굽 소리.
깊은 잠에 빠져있던 숲이 잘 알지도 못하는 자들의 움직이는 소리에 하나 둘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이어 들려오는 말발굽 소리는 쉬이 끝나지 않은 채 숲 속 전체에 퍼져갔다.
숲 속을 가로지르는 자들 그리고 마차들.
마차 수는 약 10여 대.
마차를 둘러싼 호송을 담당하는 인원 수는 약 50여 명 정도 되어 보였다.
아무래도 화물이 가득 실려서 그런지 인원수도 꽤나 되는 듯 보였다.
이들은 체스 일행과 함께 움직이는 사브레 상단.
라이손 성에서 이뤄지는 대부분의 교역을 담당하는 나름 규모가 있는 상단이다.
항상 정기적인 호송을 하기는 하였지만 이번 호송은 추가된 임무였다.
마수들이 많아진 탓에 그만큼 늘어난 노확물을 수도에 넘기기 위함이었다.
이제 절반쯤 왔으려나?
꽤나 온 것 같았건만 역시 수도까지는 꽤나 먼 길이다.
그래도 익숙한 길이기도 했고 돈을 번다는 생각에 모두의 발걸음은 꽤나 가벼워 보였다.
이 임무가 끝이 나면 누군가에게는 휴식이 주어질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돈이라는 보상이 주어질 것이었기에.
체스는 호송대의 허리 즈음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는 헬캣을 말 안장에 앉혀둔 채 말을 타고 이동 중이었다.
후우우...
가슴이 답답하다.
어차피 그저 말을 타기만 하면 되는 일이기도 했고 딱히 다른 걸 생각할 필요도 없는 자신 만의 시간이었다.
그렇기에 앞으로의 생활에 대해 생각을 해보긴 했으나...
저도 모르게 흘러 나오는 한숨.
느는 건 한숨이요 줄어드는 건 알량한 원금 조금 뿐이다.
이제 1회차 분이 나갔으니 앞으로 도대체 얼마 동안을 더 똥줄빠지게 마수를 잡아야 한단 말인가?
'...가늠이 안되네...'
"거 젊은 놈이 뭘 그리 한숨을 푹푹 내쉬나? 땅 꺼지겠네. 꺼지겠어. 있던 기운도 빠지겠다 이놈아."
호송대의 부대장을 맡고 있는 잭이 옆에서 말을 몰고 있는 체스를 보며 혀를 끌끌 찼다.
처음 호송을 시작할 때부터 인상이 워낙 특이해 눈여겨 보던 녀석이었다.
특이하다는 건 흔히 쓰는 일종의 관용구 같은 표현이었다.
한 마디로 더럽게 못 생겼다는 말이지.
끌끌.
저 얼굴을 봐라.
한 번 보면 절대 안 잊어버릴 듯한 인상.
게다가 괜히 싸움을 걸었다가는 그대로 골로 갈 것만 같은 험상궂은 얼굴.
헌데 그런 얼굴로 한숨을 쉬어대니...
한숨조차 부담스러워지는 잭이었다.
"어째 넌 젊은 놈이 그리도 죽상이누. 빚 졌냐?"
연거푸 한숨을 쉬어대던 체스가 그제야 한숨을 멈추었다.
"...그게 다 말하지 못할 만한 사정이 있어요. 누구에게나 다 그렇죠."
"이놈아. 인생에 굴곡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냐? 보아하니 꽤나 나이도 진득하게 먹은 듯한데. 그리고 마수 사냥꾼도 10년도 넘게 한 것 같은데 돈도 많이 벌었을 건데 그 돈은 어디다 갖가 버리고 그랬는지 모르겠다만..."
"저 어리거든요?"
"그래 그래. 나보다야 어리겠지. 이놈아~ 다 일장춘몽이랬다. 젊었을 때야 계집질도 하고 카드도 좀 만지고 술도 진탕 퍼마시고 그러겠지만 너도 이제 거기서 조금만 더 나이 먹어봐라. 그런 것도 다~~~~ 재미가 없니라. 그리고 아직 그 나이가 되도록 가정도 제대로 못 꾸민 것 같은데 얼른 돈부터 모아라. 그래야 간혹 정신 나간 여자라도 널 좋아해주지. 이 녀석아."
말에 앉은 채 장황하게 일장연설을 늘어놓는 잭.
체스의 얼굴이 절로 찌뿌러졌다.
지금 심정으로는 귀에 듣기 좋은 소리도 듣기 싫은 판인데 잔소리마저 들으려니 곤욕이다.
체스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그리고 그걸 본 잭.
"오호~ 요놈 보게. 인상까지 쓰네? 녀석아. 웃어라 웃어. 가뜩이나 못난 얼굴 더 망가질라."
"...저 나름 귀염상이거든요?"
"험험. 그나저나 자네들은 마수 사냥꾼들이랬지? 자네들이 붙어서 그런가 이거 호송길도 편하고 아주 널널하구만~"
자연스레 화제를 전환하는 잭.
그의 이야기는 체스가 짜증을 채 내기도 전 구렁이 담 넘어가듯 다른 이야기로 뛰어 넘어갔다.
'뭐야? 이 영감.'
무작정 융단폭격을 당해버린 체스의 얼굴에는 황당함이 깔렸다.
"저래 보여도 좋은 분이셔~"
앞에서 말발굽 소리에 맞춰 보폭을 맞추던 호송대원 하나가 웃으며 말을 했다.
그런 소리가 귀에 들어올 리 만무한 체스를 향해.
여하튼.
웬일로 호송대에 인원이 더 추가가 되나 했더니 마수 사냥꾼들이란다.
심슨이야 뭐 종종 함께 다녔던 터이기도 했고 안면을 이미 튼 사이라 전혀 어색하지 않다만은.
인원이 갑자기 늘어나서 좀 놀라긴 했던 잭이었다.
뭐 이번 호송에 대한 걱정은 단 1도 없다.
그것은 심슨의 존재 때문.
솔직히 심슨만 있어도 이 호송에서 걱정되는 건 없다.
그는 다이아 등급 게다가 랭커가 아닌가.
세상에 단 50명만 존재하는 조금 과장해서 산을 무너뜨리고 바다를 가를 수 있다는 그 랭커들.
거기에 혹들이 붙어버렸다.
그들은 바로 이번의 호송에 추가된 몇 명의 마수 사냥꾼들.
그래도 심슨 왈.
수는 몇 명 안 되지만 꽤나 높은 등급의 마수 사냥꾼들이라고 했다.
심슨이 이야기하는 것이니 그것 만으로도 충분히 보증은 된 셈이다.
"그런데요. 원래 호송할 때 이렇게 조용하게 지나가나 봐요?"
아벤이 끼어들었다.
이 정도의 호송이라면 솔직히 누워서 침 뱉기 수준이 아닌가.
딱히 호송물품을 노리고 덤벼드는 산적 같은 녀석들도 없겠다.
높은 일당에 안전까지 보장된 일이라면 이 일 만큼 편한 일이 무에 있겠는가.
오히려 너무 쉬워서 돈 받기도 민망할 정도다.
그렇다고 주는 돈은 마다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호송물품을 노리는 녀석들 말인가? 요새는 그런 녀석들이 잘 안 보이더라고. 게다가 이 길은 우리가 항상 이용하는 길이기도 하고 말이지. 처음에는 개뿔도 모르는 도적 녀석들이 달려들었었는데 말이야. 이제는 그런 것 없어. 그 때마다 여기 심슨이 잘 처리해 주더군. 타이밍도 잘 맞았고. 으하하하하."
막 상단을 열었을 때 사브레 상단은 발에 채일 정도로 많은 아주 작은 상단 중 하나였다.
하지만 심슨을 알게된 이래 고맙게도 자주 호송에 참가해 준 그였다.
말은 수도에 볼일이 있어서 간다고는 하지만 나름 저신들의 대장이 만들어 놓은 인간관계 덕분도 어느 정도는 있으리라.
또 호송은 신용도가 생명이잖은가.
심슨과 함께 움직인다는 게 차츰 입소문을 타자 사브레 상단은 승승장구했다.
그 덕분에 지금껏 호송에 실패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사브레 상단이었다.
실패한 적이 없다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그렇게만 된다면 이름이 높아지는 건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요소가 된다.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지.
랭커가 있다는데 어느 미친 놈들이 호송대를 털려고 하겠는가.
오히려 거기에 덤벼드는 녀석들이 오히려 불빛에 달려드는 불나방이지.
지금처럼 말이다.
크크크크크-
지극히 만족스러워하는 잭의 웃음이 자신도 모르게 새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