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의 채무 탈출기-124화 (124/249)

#124

협회(3)

어글리불을 바라보는 남자 또한 마찬가지.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평범하다 못해 너무나도 평범한 인상의 남자였다.

길에서 힐끗 보고 지나가면 제대로 기억하지도 못할 그런 평범함?

잘 나지도 못 나지도 않은 그저 밍숭맹숭한 얼굴이라고 하는 것도 맞겠다.

그는 오픈도어의 수장 덴테.

오픈도어를 책임지는 남자였다.

그저 수더분한 미소가 떠올라 있는 그의 얼굴.

"아이쿠~ 오늘은 웬일로 오셨습니까? 이거 제가 소식이 좀 뜸했죠?"

"오호호홍. 여전하네요. 그 넉살. 저 넉살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을꼬?"

"후하하하하. 그런 말씀 마세요~ 무슨 그런 소름 돋는 말씀을 하십니까? 칼만 봐도 깜짝깜짝 놀라는 사람을 보고."

어글리불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화장기 짙은 얼굴은 여전히 웃음을 보이고 있었지만 눈매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참 저 속을 한 번 파헤쳐 보고 싶단 말이지.'

순간 저도 모르게 혀로 입술을 할짝이는 어글리불.

살심이 치밀어 오른 탓이었다.

하지만 그걸 못 알아차릴 오픈도어의 수장이 아니다.

지금껏 얼마나 많은 자들이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았던가.

그런 이들 하나씩 처리하고 등처먹고 짓밟아 가며 그렇게 수많은 이를 경험해 온 자신이었다.

어글리불의 그런 기운 정도야 바로 알아차리지.

하지만 이걸 부드럽게 넘길 때야말로 노련함이 보이는 것 아니겠나.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온 것입니까? 그 얘기는 들었습니다. 왕궁에 쳐들어 갔다가 물러나셨다구요? 우흐흐흐."

'역시 죽이고 싶네. 해버릴까?'

문득 어글리불의 머릿속에 든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지금은 전략적 동맹 중 아닌가.

후웁-

끓어오르는 본능을 간신히 억누른 채 예의 웃음을 지어보이는 어글리불.

"후움. 이제 좀더 활발하게 움직이라는 명이 떨어졌어요. 슬슬 직접 움직이신다고 하네요."

"오호~ 그거 잘된 것 아닙니까? 듣던 중 반가운 소리입니다만."

"하지만 아직 완전히 움직일 수는 없으니 여기서도 그만큼 더 해야겠죠?"

"그거야 당연합니다. 안그래도 페릴턴이 열심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어글리불이 주문했던 것.

그것은 바로 자신들 환수들에게 적대적인 행동을 하는 랭커들의 힘을 최대한 줄이라는 것이었다.

환수들이 인간계에 들어옴에 있어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들.

그 자들이 바로 인간들 중에서도 마수 사냥꾼들 중 랭커들이 아닌가.

그리고 그걸 담당하는 자는 페릴턴.

오픈도어 내에서 직접적인 무력을 담당하는 자였다.

게다가 공식적으로 랭커로 등록된 자이기도 했기에 직접적인 랭킹전에까지 나설 수가 있었다.

"보자... 랭킹 11위가 되었다고 들었으니 이제 위로 10명이 남았군요."

"뭐 랭커들 중 페릴턴보다 위에 있는 자는 현재 10명이죠."

"아~ 그렇다면 그... 왕궁에 있는 그 키 작은 사람도 혹시 랭커인가요?"

문득 자신을 물러나게 했던 그 남자가 떠올랐다.

우스꽝스러운 공격을 하던 자.

하지만 엄청나게 강했던 자.

직접 붙더라도 감히 승리를 장담하게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기세를 뿜어내던 자.

"누구... 말하시는 거죠?"

"왜 그 있잖아요. 왕궁에 굉장히 화려한 갑옷을 입고 데구르르 굴러 다니던 사람."

굴러다닌다라...

아!

"기사단장 데프트를 말하는 거군요?"

"...그 자 이름이 데프튼가요?"

"네네. 뭐 데구르르 구르는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떠오르는 사람은 그 사람 밖에 없군요. 기사단장입니다."

"흐음..."

데프트.

확실히 강하지.

그라면 어글리불 이 자가 도망갈 정도긴 하다.

"그 자는 흠... 저희 선에서 정리가 가능할 지는 모르겠습니다."

"정리해 달라고 한 적 없거든요? 그 자 만큼은 제가 처리할 것입니다. 나서지 마세요."

"저도 어글리불 님이 잘 처리하실 거라 믿습니다. 으허허허허허허."

하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저 깐족거리는 혀 때문인지는 몰라도 정말 죽이고 싶다.

어글리불이 자신의 손을 쥐락펴락하며 힘을 넣었다뺐다하기 시작했다.

순간 방 안에 어색한 기류가 맴돌았다.

어색하면서도 포악한 힘.

이번만큼은 진심으로 마음을 먹은 듯 어글리불에게서 살기가 슬금슬금 새어나왔다.

"아이고오~ 왜 이러십니까~ 제가 말실수를 했나봅니다. 이거이거."

두 손을 조물조물거리는 덴테.

하지만 태도와는 다르게 실실 웃음을 흘리는 그였다.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어글리불.

'재미있는 녀석이군.'

살기와는 또다른 흥미가 조금 생겨났다.

덴테에게.

명백히 알 수 있었다.

이 자.

자신의 기운을 상쇄시킬 수 있는 자이다.

하지만 확실히 지금은 아니다.

몇 번이나 생각을 해봐도.

"오호홍. 뭐 됐어요. 여하튼 시킨 일이나 잘 하세요."

"예예~ 그럽죠. 걱정 마십시오. 제가 언제 실망시킨 적이 있습니까? 으흐흐흐."

"뭐 그렇긴 하죠. 알겠습니다. 그럼 전 할 말은 다 했으니 이제 가보죠."

옷 매무새를 다시 한 번 깔끔하게 정돈하는 어글리불.

그리고 그의 보라색 연미복에 먼지 한 톨조차 남겨지지 않았을 때.

그는 몸을 뱅글 돌리더니 문을 향해 걸어갔다.

뚝-

문의 손잡이를 잡던 그가 멈칫거렸다.

다시 몸을 돌리며 덴테를 바라보는 어글리불.

"참. 헬캣이라고 아세요?"

"헬캣요? 헬켓. 헬켓이라. 헬캣이라면...... 마수도감에 있는 그 S급의 마수를 말하는 건가요?"

"네. 잘 아시네요."

"그 자가 지금 활동 중입니다. 그리고 그 자의 곁에 관여자가 있습니다."

"관...여...자요?"

관여자...라는 게 뭐지?

누구를 지칭하는 말인가?

처음 듣는 이야기이다.

마수들과 지금껏 거래를 해온 그조차 들어보지 못한 단어였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덴테.

"흠... 설명하자면 기니 간단히만 말해드리죠. 법칙을 벗어난 자입니다. 그 자를 찾으세요. 그냥 그 자를 찾으면 됩니다. 찾으면 반드시 생포하세요."

벌컥-

자신의 할 말만 하고 사라지는 어글리불.

그리고 그가 사라진 방에 다시 혼자가 된 덴테.

"뭐야? 미끼만 던지고 가버린 거야? 말을 할 거면 좀 제대로 가르쳐 주고 가던가... 하여간 안돼 안돼. 합이 맞질 않아. 살기를 질질 뿌리질 않나."

어글리불이 나가버린 문 쪽을 바라보며 덴테가 피식 웃었다.

저렇게 감정을 마구 드러내서야 원.

쯧쯧-

나이를 헛처먹은 게 틀림없지.

저리 살고도 자신이 던진 간단한 말장난에도 저렇게 걸려드니.

쓰잘데기 없는 마수의 자존심이겠지.

그나저나.

관여자라...

관여자라......

어글리불이 던지고 간 화두였다.

분명히 뭔가가 더 있네 더 있어.

"재밌겠네. 후후. 그런데 가만 보자. 헬캣과 같이 움직인다고? 헬캣이면 S급인데 잡을 수 있으려나? 페릴턴을 또 써먹어야 하나? 아니지. 우선은 정보부터 모아봐야겠군."

덴테가 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

"누가 내 얘기를 하나?"

귀를 비비며 걸어가는 체스.

그들은 여전히 호송대와 함께 움직이는 중이었다.

-뭐냐?

그의 옆을 타박타박 덜어가던 헬캣이 다른 이들에게 들키지 않게끔 작은 목소리로 체스에게 물었다.

"아뇨. 누가 제 얘기를 하나봐요. 귀가 근질근질하네요."

-이자 밀렸냐?

"...아뇨. 다 줬거든요. 이번 달치."

하아.

아직 빚이 도대체 얼마나 남은 건지...

그저 한숨만 푹푹 나오는 체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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