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의 채무 탈출기-117화 (117/249)

#117

랭커(2)

산등성이에 걸쳐 있던 해는 어느 덧 자취를 감춘 지 오래.

해가 주인인 양 행세하던 하늘은 어느 새 주인이 바뀌어버렸다.

까만 양탄자가 뒤덮은 듯 검은색으로 바뀐 하늘을 수놓은 건 수많은 별들.

그리고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양 별들이 마음껏 뽐낸 별빛이 그들의 어깨에 내려앉을 즈음.

후훗-

파락이 한 손을 길게 늘어뜨렸다.

반면 별반 표정의 변화가 보이지 않는 페릴턴.

자신보다 높은 랭커와 마주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 1의 긴장한 기색도 보이지 않는다.

'건방진 애송이 놈. 지금 그 여유도 곧 사라질 게다.'

파락의 눈매가 깊이 가라앉았다.

화르륵-

갑자기 그의 손에서 피어오르는 불꽃.

그것은 그의 불꽃.

바로 그 불꽃이 그를 염편으로 만들어 준 존재였다.

이내 춤을 추듯 그의 손 위에서 하나의 뱀처럼 살아있는 듯 움직이는 불꽃.

혀를 날름거리던 불꽃은 다시 움직임을 바꿔간다.

마치 채찍처럼 길다랗게.

'오호~ 염편이 바로 저걸 보고 하는 말이었군.'

조그맣게 입을 벌려 탄성을 내뱉는 페릴턴.

하지만 거기까지.

보기 드문 광경이긴 하지만 그 외의 감성은 그닥이다.

어차피 결과는 정해져 있으니.

겁을 먹은 게로군.

아무렴.

자신의 이런 위용을 보고도 겁을 안 먹을 리가 없지.

하긴 아직 애송이지 않나.

"껄껄껄. 너무 겁먹지는 말게. 살살 다뤄줄 테니."

"이제 시작하면 됩니까?"

긴말은 필요없다는 듯 자세를 취하는 페릴턴.

"후후. 들어오게."

파락이 손을 까닥까닥거렸다.

****

잠시 몸을 풀던 페릴턴.

흡-

그가 온 몸에 기운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그러자 갑자기 떠오르는 그의 등에 매여있는 무기들.

둥실 떠오른 무기들이 천천히 방향을 바꾼다.

파락을 향해.

"흐음. 저래서 만병이군."

실제로 보니 장관이긴 하나 겉멋이 잔뜩 든 모습이다.

파락은 자신의 손에 불꽃을 감은 채 그의 공격을 기다렸다.

먼저 움직인 것은 페릴턴.

하압-

그의 움직임에 따라 춤을 추기 시작하는 그의 무기들.

달려나가던 그는 이내 몸을 살짝 숙였다.

그러자 파락을 향해 쏜살같이 쏘아지는 창 한 자루.

쌔애애액-

"흡. 어딜!"

파락의 손이 크게 반원을 그리며 불꽃을 휘둘렀다.

그 불은 이내 날아오던 창을 휘감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창을 다 태워버렸다.

급격히 달아오른 열기에 창 끝만 덩그라니 땅에 툭 떨어지는 찰나.

그 뒤에 숨겨져 있던 창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 얄팍한 수가 통할 것 같은가!"

하찮은 속임수를 쓰는구나.

하지만 거리가 워낙 가까워진 탓에 아까처럼 불꽃을 사용해 태워버릴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딴 수에는 당하지 않지.

파락은 몸을 살짝 띄워 창을 피해내며 다시 불꽃을 던져 창대를 감았다.

차아압-!!!

힘찬 고함소리.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힘이 가득한 목소리다.

순식간에 불꽃에 휘감기는 창대.

일순 그의 불꽃에 의해 창의 방향이 바뀌었다.

"가져가라!"

불 붙은 창을 그대로 페릴턴에게 되돌려 버리는 파락.

그걸 본 페릴턴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어렸다.

그리고는 그대로 뛰어오른 그는 창을 밟는가 싶더니 자신의 3단을 모두 열어젖혔다.

딱히 기합소리를 넣을 필요도 없다.

이미 그의 주위를 맴도는 만병들은 그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기에.

슉- 슉- 슈욱-

연이어 몇 개의 검이 파락에게 쏟아진다.

헙-

일순 파락의 얼굴에 떠오른 당혹감.

...너무 빠른데?

예상보다 훨씬 빠르긴 하다.

하지만.

파락의 손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의 손짓에 따라 어느 새 그의 기운을 잔뜩 머금은 불꽃 또한 그 속도를 더해가고.

그 또한 이미 3단을 모두 열어젖힌 넘어선 자 중의 하나가 아닌가.

페릴턴의 무기가 꽂혀가는 지점마다 파락의 불꽃이 불을 뿜는다.

하지만 그 무기들은 전혀 힘을 잃지 않았다.

그 불꽃들은 오히려 물어뜰 듯이 달려드는 무기들의 기세만 더 끌어올릴 뿐이다.

'크으... 어찌 저 정도의 나이에 저 정도의 실력을...'

파락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간다.

염편의 열기 때문인가.

아니면 기운을 가득 뿜어내고 있기 때문인가.

그 이유는 본인만 알겠지.

몇 번이나 쳐냈다.

염편은 거리가 멀어질수록 더욱 파괴력이 높아지는 파락 고유의 기술.

'거리를 벌려야 한다. 거리를.'

하지만 좀처럼 거리를 벌려주지 않는다.

쳐내면 쳐낼수록 꼬리를 물듯 따라오는 페릴턴의 무기들.

게다가 더 늘었다.

하나씩 하나씩 수가 더 늘어난다.

"젠장..."

절로 욕지거리가 나온다.

불꽃으로 잡기에는 무기 하나하나에 담긴 기운이 너무 무겁다.

...그렇다면.

파락의 중단이 더욱 빠르게 돌아간다.

맹렬히 돌아가는 중단 안의 기운이 점점 증폭되어 간다.

갈수록 굵어지는 그의 불꽃.

어느 새 파락의 손에 감긴 불꽃은 웬만한 남자의 허리 정도는 아예 덮어버릴 정도로 굵어져 있었다.

쿠르르릉-

쿠르르릉-

연이어 불꽃이 폭발한다.

사정없이 휘둘러지는 불꽃에 그만 터져버리는 무기들.

"으하하하하하. 어떠냐!"

의기양양하게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는 파락.

이 정도면 승기를 잡았음에 진배없다.

한껏 달아오른 그는 쉬지 않고 불꽃을 마구 휘둘러댔다.

마구잡이로 휘둘러지는 그의 불꽃 한번 한번에 주변이 후끈거릴 정도다.

하지만.

훗-

파락의 공격을 피해가던 페릴턴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무아지경에 빠진 채 그를 몰아가던 파락의 두 눈에도 분명히 그 웃음은 보였다.

'웃...어...?'

파락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린다.

'이... 새끼가...'

슝슝-

불꽃을 연이어 돌리던 파락이 있는 힘껏 불꽃을 내리쳤다.

순간 무기만 쏘아대던 페릴턴이 재빨리 손을 맞잡더니 그걸 앞으로 모았다.

웅웅웅웅-

그러자 빠른 속도로 그의 앞으로 모여드는 무기들.

등 뒤에 매여 있던 무기들 중 꽤나 많은 수였다.

'응?'

저게 뭐하는 짓이지?

파락의 눈이 가늘어졌다.

순간 터져나왔다.

그리고 파락의 불꽃에 정면으로 달려드는 그의 무기들.

콰콰콰콰콰콰콰쾅-!!!!!!

페릴턴이 쏘아올린 무기들이 맹렬히 회전에 회전을 더해가며 곧장 치고 올라온다.

그러자 마치 종이장처럼 마구 찢어발겨지는 파락의 불꽃.

염편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마치 허공에 붉은 실을 수 놓듯 사라락 흩어지는 그의 불꽃이었다.

이...이익...

파락의 3단이 더욱 빠르게 움직여 간다.

덜덜 떨려가는 그의 몸.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금방 깨질 기세로 격하게 흔들리는 몸의 진동은 멈출 생각을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해져만 가는 진동.

순간 그의 몸에서 사라진 불꽃이 흘러나와 페릴턴의 무기와 정면으로 부딪혀 갔다.

지금까지의 불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굵은 불꽃이 불의 꽃을 피어간다.

화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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