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의 채무 탈출기-113화 (113/249)

#113

귀환(9)

'에라. 모르겠다. 이긴다는데 뭐.'

솔직히 자신은 없었다.

이미 스고르의 등급이 자신을 훨씬 상회하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객관적으로 봐서는 안 맞아죽으면 다행이지.

도대체가 무슨 근거로 자신이 이긴다고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왕 이렇게 무대가 만들어진 이상에야...

뚜껑은 열어보면 알겠지.

스릉-

체스가 검을 빼냈다.

그 모습을 보며 스고르가 자신의 단창을 쥐었다.

"시작하면 되나?"

스고르의 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체스.

체스의 태도에 스고르의 눈썹을 꿈틀거렸다.

'건방진 놈.'

그래도 사파이어 등급의 체면이 있지.

스고르가 손바닥을 위로 한 채 손가락만 까딱거렸다.

"와라."

****

칫.

명백하게 자신을 아래로 깔고 보는 듯한 스고르의 행동이건만 여유를 부릴 틈이 보이지 않는다.

막상 마주 하고 보니 점점 자신이 없어지는 체스였다.

'쉽지 않겠네.'

그래도.

"오라고 하면 못 갈 줄 아냐?"

타앗-

체스가 힘껏 도약을 했다.

호오~

스고르의 눈이 가늘어졌다.

생각보다 더 잘 하네?

하지만.

풋내가 물씬 나는구만.

카아아아앙-

뽑는 속도보다 막아내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체스의 대검이 부들부들 떨린다.

단창에 막힌 채.

"아니야. 잘 하긴 하는데 아직은 아니야."

빈정거리는 스고르.

그의 입꼬리가 스윽 올라가더니 기분 나쁜 웃음이 체스의 두 눈에 들어왔다.

헉-

반 박자 빠른 속도로 몸을 빼내는 체스.

그리고 그가 빠져나간 공간을 스고르의 나머지 단창 하나가 푸욱 찔러 들어왔다.

"뭐야?"

공격을 하기도 전에 빠져나간 체스의 몸.

뒤에서 지켜보던 둘이 깜짝 놀랐다.

"저걸 피한단 말이야?"

"...분명히 실버 등급이라고 했지? 저게 저 등급에서 보일 수 있는 움직임은 맞아?"

"글쎄... 일단 지켜보자고..."

****

약이 오른다.

공격은 하는데 왜 아슬아슬하게라도 전부 피해내는 것이지?

스고르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 체스.

처음 공격 빼고는 공격다운 공격을 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뱀처럼 자신의 목을 노리고 파고드는 스고르의 단창.

대검이 막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고르의 단창은 궤적을 비틀며 그대로 목으로 치고 들어왔다.

하지만 체스의 목은 이미 살짝 방향을 틀어져 있었다.

'또! 또! 아이씨. 짜증나네.'

공격을 아무리 한들 뭘 하나.

상대방이 맞지를 않는데.

그 사이 체스가 대검을 날렵하게 뻗어낸다.

티익-

하지만 체스의 공격은 채 제대로 뻗어나가기도 전에 막혔다.

팔꿈치도 제대로 못 폈는데!

어느 새 단창의 손잡이 부분으로 검의 진로를 막아버린 스고르였다.

파팟-

스고르의 발이 땅에서 떨어졌다.

어엇...

체스가 당황하는 사이 스고르의 호리호리한 몸이 그대로 체스의 몸을 타고 올라왔다.

이건 못 피하겠지.

스고르의 몸은 순식간에 체스의 어깨까지 도달해 있었다.

순간 체스가 어깨를 그대로 튕겼다.

투우우웅-

이미 무엇이 벌어질 지 머릿속에 그려지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스고르도 보통 내기가 아니다.

그도 이미 마수 사냥꾼으로서 잔뼈가 굵을 대로 굵은 몸.

스고르의 단창 중 하나의 날은 체스의 대검에 살짝 걸려 있었다.

몸싸움으로 인해 충격을 받았을 법도 한데 그의 몸은 여전히 날렵했다.

다시 체스에게 달려드는 그의 몸.

"이익... 떨어져!"

순간 체스의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집요하게 달라붙는 스고르 때문에 심히 당황해 버린 탓이었다.

슈우우우욱-

빠르게 뻗어내는 스고르의 주먹.

뻐어어어억-

처음으로 스고르의 공격이 통했다.

체스의 얼굴에 정통으로 그의 주먹이 꽂혔다.

"어억..."

단 한 방에 체스의 몸이 휘청였다.

저 거구가.

문제는 그 한 방으로 끝이 나질 않는다는 것.

순간 폭포수 마냥 스고르의 공격이 이어졌다.

퍽퍽퍽퍽퍽퍽퍼어어어억-!!!

커헉-

체스의 몸이 그대로 튕겨져나갔다.

바닥에 쿠당탕탕 놔뒹구는 체스.

더군다나 헬캣처럼 요령있게 딱딱 때리는 스고르가 아니지 않나.

마구잡이로 때린 탓에 바닥을 놔뒹구는 체스의 코에서 갑자기 주르륵 흐르는 코피.

"아이씨!!!"

체스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

-쯧쯧쯧. 바뀐 게 없는데? 사용법 정도는 혼자서 알아차려야지. 답답한 놈.

헬캣의 눈이 가늘어졌다.

기껏 열어주면 뭐하나?

활용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는데.

중단은 상, 하단을 모두 아우르는 기능을 한다.

기본적으로는 물론 그릇을 이루는 바탕이 되긴 했지만 단련 여하에 따라 여러 형태로 발현될 수 있는 것 또한 중단이었다.

지금 체스는 중단이 만들어진 상태.

크기는 쌀알 정도?

본인의 입으로 쌀알 정도라고는 했으나 실제로는 조금 더 클 것이다.

그런데!

저 답답한 놈.

-중단을 써라! 중단을.

보다못한 헬캣이 고함을 쳤다.

****

눈두덩이를 맞았나...?

한쪽 눈이 잘 떠지지 않는다.

그 와중에 헬캣의 목소리가 들렸다.

...중단을 써라니.

어떻게 쓰라는 거지?

이익...

이이익...

엉거주춤 몸을 일으키던 체스는 아랫배 쪽에 힘을 밀어넣기 시작했다.

마치 내장에 그 덩어리를 밀어내듯 힘을 끄응 줘보는 체스.

"...달라진 게 없는데요?"

-으휴...

돌 굴러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온다.

-그렇게 말고 자식아. 중단을 열었으니 담는다는 생각을 하라고. 네 몸 안에 뭔가 커다란 공간이 있다고 생각을 해. 뻥 뚫린 뭔가가.

하지만 둘이 간과하는 게 있었다.

스고르와 그의 일행들이 마냥 기다려 줄 리가 없다는 것.

"어디서 헛수작이냐!"

셋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어...어... 자...자ㅁ..."

그리고 그 꼴을 바라보던 헬캣.

하여간 인간들이란 틈만 보이면 그저 떼로 덤벼들려고.

-끌끌. 안되겠네.

헬캣이 몸을 슬쩍 일으켰다.

순간 헬캣을 제외한 모두의 몸이 움찔거렸다.

분명히 참견을 하지 않을 거라던 헬캣 아니었나.

스고르를 비롯한 그의 일행들은 달려가던 그대로 몸이 굳어 있었다.

"...분명히 끼어들지 않을 거라고...했었지 않나...?"

-맞아. 안 끼어들 거야. 그런데 말이지. 너네 너무 비겁한 것 같아서. 얘는 혼잔데 너희는 셋이잖아. 그럼 쪽수가 안 맞는데 얘가 힘들지 않겠니?

"그...그렇지."

-그래서 내가 다른 방식으로 전투를 좀 바꿀까 해서. 괜찮지?

자신의 말이 끝난 헬캣은 동의다운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무언가의 빛을 뿌렸다.

그의 손 끝에서 빛나던 빛은 그대로 허공을 날아 체스와 스고르에게 안착했다.

"이...게 뭐에요?"

둘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

-아~ 별 거 아냐. 환수계에서 환수들이 결투를 할 때 보통 사용하는 건데 보통은 서로를 반드시 죽여야 할 때 사용하지.

순간 체스와 스고르 둘의 시선이 동시에 헬캣에게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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