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의 채무 탈출기-112화 (112/249)

#112

귀환(8)

모든 정황은 사실로 드러났다.

득의양양한 표정의 스고르.

"봤지? 봤지? 맞잖아. 저렇게 귓속말까지 하는 거. 그냥 고양이면 저렇게 속삭이겠냐? 아니지. 그게 다 말이 통하니까 그런 거 아냐?"

잔뜩 흥분한 상태로 말을 하는 스고르.

약간 떨떠름한 나머지 둘이 들어보니 그것 또한 맞는 말인 것 같다.

스고르의 말에 나머지 두 명의 표정 또한 싸악 식어갔다.

"감히 인간이 마수와 내통을 해? 지금 이 시기가 어떤 시기인데. 가뜩이나 마수의 수가 급증해서 나라가 시끄러운 판에 인간이 내통을 한다? 네 녀석이 미쳤구나!"

"본때를 보여줘야겠군!"

저마다 목소리를 드높이는 두 명의 사내.

"야야. 있어봐. 이봐. 실버."

스고르가 자신의 일행들을 진정시킨 후 체스를 쳐다보았다.

"뭐가 문제야?"

날이 선 목소리다.

체스는 여기까지 자신의 뒤를 밟으면서까지 저 자가 저렇게 행동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문제? 문제라면 많지. 우선 네가 마음에 안 든다는 것과 지금 그냥 계속 마음에 안 드는 것?"

실은 이렇게까지 나설 건 아니었다.

마수 사냥꾼 협회에 이야기하거나 다르게 처리할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스고르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마음에 안 드는 놈 제끼고 마음에 조금 드는 놈 짓밟고 자신의 위치를 넘보는 놈 족치고 그러면서 여기까지 실력을 쌓아낸 것 아닌가.

그리고 저 녀석.

얼굴도 마음에 들지 않는데 이상하게 랭커들도 관심을 보인다.

그는 그게 너무나도 싫었다.

실력도 없는 녀석이 말이지.

왜 그런 것 있지 않나.

주는 것 없이도 그저 미운 사람.

스고르에게는 체스가 딱 그런 종류의 사람이었다.

"그래서 내가 뭘 어떻게 해주면 되는데?"

"별 건 없어. 협회에 얘기하지 않는 대신 우리를 위해 일을 좀 해라."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는 스고르.

그의 말은 조금 이상했다.

그리고 지극히 정상적인 요구였다.

그럴 것이라면 그냥 시키면 될 것 아닌가.

"아~ 그런 의문은 품지마. 그건 네가 승낙을 해야 하니까. 그리고 넌 당연히 하게 될 것이고."

젠장맞을.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떻게 이 위기를 타개할 수 있을 것인가.

체스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

가만히 들어보니 나쁜 조건은 아니었다.

함구하는 대신에 일을 한다라.

생각보다 쉽게 끝날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이걸 어떻게 할까?

고개를 끄덕이고 넘어가기에는 여러모로 감이 안 좋은 것도 사실이다.

그들을 쳐다보던 헬캣의 머리에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어이. 인간.

헉.

헬캣의 말에 스고르 일행이 깜짝 놀랐다.

저...정말이잖아.

...마...말을 한다.

해괴한 상황에 어버버거리는 두 명.

-일일이 설명하기는 귀찮고 신기해하지 마라. 여하튼 그래서 넌 이 녀석을 이용해 먹고 싶은 거구만? 쓰고 버리는 패로 말이지.

"그... 그렇다."

지극히 담담하게 얘기하는 헬캣의 말에 오히려 스고르가 약간 움찔했다.

뭘 믿고 저렇게 당당한 것이지?

게다가 말투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살기랄까 예기에 자신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러내렸다.

-너. 내가 누군지 잘 모르지?

표정을 보아하니 당연히 모르는 얼굴이다.

하긴 제대로 본 적이 없으니 알 리가 없다.

헬캣이 자신의 변신을 풀었다.

슈와아아아아-

"헉! 뭐...뭐야!"

털썩-

인간들은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온 헬캣을 보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리는지 그만 주저앉아버렸다.

한 녀석은 너무 놀랐는지 지린 냄새마저 풍기고 있다.

중간에 제일 강해보이는 녀석은 맨정신으로 서있기는 했지만 가까이에서 본 헬캣의 모습은 처음인지 마찬가지로 하얗게 질려 있었다.

-심약한 것들. 쯧쯧쯧.

이제야 헬캣의 진정한 모습을 안 스고르는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헤...헬캐애...ㅅ"

-잘 아네. 뭐 내 정체는 그 정도로 알면 됐고... 여하튼 그냥 넘어갈 생각은 없는 거지?

"그...그렇다!"

막상 말은 내뱉었지만 지금이라도 마수 사냥꾼 협회에 얘기를 하는 게 차라리 나았으려나 후회막급인 스고르였다.

헬캣.

자신이 상대할 수 없는 마수가 아닌가.

'지금이라도 돌아간다고 해야 하나...?'

뒤의 두 녀석들을 힐끗 돌아본 스고르.

상태가 썩 좋지 않아보였다.

"아니. 그...그냥 ㄷ."

-됐고. 너네 그냥 한판해라.

에??????

...설마 지금 자신을 상대하라는 말인가?

헬캣의 말뜻을 이해못한 스고르의 눈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너. 그리고 여기 체스. 둘이 한판하라는 말이다. 난 끼어들지 않을 테니.

순간 희비가 교차했다.

스고르의 경직되었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체스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떠올랐다.

****

체스는 어이가 없었다.

되도 않은 소리다.

지금 자신에게 사파이어 등급의 마수 사냥꾼을 상대하라는 말은 곧 죽으라는 말과 진배 없는데.

"저... 제 의사는...?"

-없어. 그리고 걱정마라. 네가 이길 것이다.

"에? 무...무슨 근거로... 아~ 2:3으로 싸우자는 말이군요."

-아니. 너랑 그리고 저 녀석이랑 하는 거지. 무슨 내가 애들 싸움에 어른이 나서리?

무슨 헛소리냐는 헬캣의 말투.

그리고 헬캣이 앞발을 들어 가리키는 방향에는 스고르가 떡 하니 서있었다.

맙소사...

"아니. 말이 안 되잖아요. 제 수준을 뻔히 아시면서. 저한테 무슨 억하심정이 있는 거에요?"

-글쎄. 그건 아니다만 난 네가 이길 거라 생각하니까 괜찮아.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체스가 당혹감에 빠져있을 때.

"그러면 내가 이기면?"

-흠... 네가 이기면? 살려주지. 그리고 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하게 해주지. 그리고 만약에 그게 부족하다면 나도 부릴 수 있게 해주지.

완전 파격적인 조건이다.

헬캣의 제안에 모두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럼 내가 지면?"

-지면? 지면 넌 평생 아마 말을 못 하게 될 거야. 그리고 우리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안 되는 것도 있고.

좋아.

그 정도면 아주 완벽한 조건이다.

저 녀석이 싸우는 것도 이미 다 봤었지 않나.

실력은 이미 알고 있는 터라 그는 충분히 자신이 있었다.

스고르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저..."

-시끄럽다.

한 마디의 말로 체스의 입을 막아버린 헬캣이 다음 행동을 했다.

앞발을 들어 결계를 치는 헬캣.

슈아아아아아아-

순식간에 그들은 바깥과 격리가 되어갔다.

"뭐냐? 이건."

-이거? 이건 너 같은 녀석이 또 안 나타나게 방지하는 거야.

"별 게 다 있군. 아참. 마수 넌 절대 참견하기 없기다."

-걱정하지 마라. 절대 안 도와줄 테니.

헬캣의 말에 스고르가 그제야 안정이 된 듯 진득한 웃음을 흘리며 체스를 바라보았다.

"자. 안 그래도 네 녀석이 좀 궁금했었는데 제대로 한 번 해보자. 부디 너무 쉽지만 않기를 바란다."

자신감이 넘치는 스고르의 모습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