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귀환(7)
그렇게 며칠이 더 지났다.
체스는 조금씩 자신의 몸에 적응해 가는 중이었다.
중단은 어느 새 쌀알 정도의 크기가 되어 있었다.
고작 며칠 사이에.
"오오오~ 더 커졌어요. 이거 키우는 재미가 좀 있네요."
가득 흥분한 목소리로 말을 하는 체스.
불과 며칠 전에 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새 쌀알 정도로 그릇을 키워낸 체스였다.
'이거 어떤 의미로는 천재라고 볼 수 있겠네.'
중단을 키운다는 것.
말이 쉽지 어떤 이들은 평생을 걸려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시작점을 잡는다는 것.
저건 웬만한 감각으로는 할 수 없었다.
헬캣이 지금껏 지켜본 바로는 그다지 천재형의 타입은 아니었는데.
어쩌면 자신의 가르침이 너무나도 뛰어난 탓일지도 모르겠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헬캣.
그나저나.
-빨리 더 키워라.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다시 시작이다.
칭찬은 오만을 키우는 지름길.
헬캣은 더욱 강하게 그를 채찍질하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칭찬을 해줘야. 헉!!!"
어느 새 자신의 앞에 불쑥 나타난 헬캣.
그리고 잠시 후.
꾸에에에에에엑-!!!
어김없이 터져나오는 체스의 비명이었다.
****
"그런데 확실한 거야?"
"당연하지. 내가 벌써 몇날 며칠을 지켜본 줄 알아?"
산을 올라가는 세 명의 사내.
마치 곧 있을 전투를 대비라도 하듯이 풀세트로 장비를 맞춘 그들.
마수라도 잡으러 가는 양 모든 장비를 갖춘 사내들이었다.
개중에는 익숙한 얼굴도 있다.
그 얼굴은 참견쟁이 스고르.
그는 드디어 건수를 하나 잡았다는 듯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그렇다면 나머지 둘은?
이들은 스피어 사냥단의 인물들.
사파이어 등급의 스고르와 골드 등급의 나머지 두 명이었다.
"일단 네 말이니까 따라가기는 한다만은..."
"그 녀석. 실버 등급이랬는데 우리가 굳이 이렇게 갈 필요가 있냐?"
"아 이 멍청한 것들. 다 생각이 있어서 네 녀석들을 데리고 가는 것 아니냐. 내가 설마 그딴 실버 등급 하나 못 이겨서 데리고 가는 걸까봐?"
버럭 짜증을 내는 스고르.
거 좀 따라오랬더니 말은 또 어찌나 많은지.
조잘조잘.
스고르의 말에 주눅이 들어버린 나머지 둘.
"아...아니. 사파이어 등급인 네가 그럴 리가 없지."
"그...그래. 우리야 뭐 당연히 널 믿으니까 따라가는 거고."
그래.
이제야 말귀를 좀 알아듣는구나.
"그나저나 가면 알아서 할 거지?"
"그래. 그래. 증인이 필요해서 데리고 가는 거니까 얼른 따라와."
뭐 결투라도 할 셈인가...
스고르의 말에 나머지 둘은 고개를 갸웃거리기는 했으나 괜히 또 물어봤다가 타박이나 들을까봐 입을 다물었다.
"여기 쯤인데..."
잠시 멈춰선 스고르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분명히 이 쯤이었던 것 같은데...
"뭘 말이야?"
바로 그때.
"맞네. 맞아. 다 왔다. 가자!"
스고르가 걸음을 빨리 했다.
혼자 훌쩍 가버리는 스고르.
"야. 같이 가야지!"
영문도 모른 채 나머지 둘도 엉겁결에 속도를 올려 스고르의 걸음을 따라붙었다.
****
-슬슬 내려가자. 오늘은 이만하면 됐다.
차츰 익숙해져 간다.
비록 아직은 어린아이가 장난감을 휘두르는 것 마냥 어설픈 수준이지만 점점 성장하는 게 눈에 보이니 않은가.
그러다 보니 때리는 입장에서도 조금씩 재미가 붙는다.
"후... 가야죠. 암. 가야죠."
체스의 얼굴은 그새 한 10년은 늙은 듯한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조금이라도 집중을 풀기라도 할 손이면 어김없이 치고 들어오는 헬캣이었다.
순간의 틈은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말이다.
그렇게 방심하는 족족 훅 들어오는 헬캣 때문에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몹시도 지친 체스였다.
-...잘 하고 있다.
두어 걸음 앞서있던 헬캣이 잠시 멈추더니 툭 내뱉는 한 마디.
두 귀를 의심케 하는 말이었다.
저 치의 입에서 칭찬의 말이라.
"어라? 잘못 들은 거 아니죠? 그거 지금 칭찬같은데. 그렇죠? 이거 이거 웬일이실까? 생전 칭찬 한 번 안하던 양반이."
-까불지 마라. 그새 좀 친해졌다고 앵겨붙는 것이냐?
"에이~ 아니 뭐 그런 건 아니지만요. 그래도 기분은 좋네요."
체스의 말에 그만 피식 웃어버리는 헬캣.
하지만 착각은 금물이지.
-잊어버리지 마라. 언제나 난 네 녀석의 몸 안에 있는 그 기운 때문에 붙어있는 것이라는 걸.
"예이~예이~ 당연히 압죠. 어련하실까봐."
그런 그를 빤히 뒤돌아보는 헬캣.
어째 갈수록 능글맞아지는 것 같은데.
한 가지 걱정되는 건 머리가 더 굵어지면 어쩔까이다.
그건 또 그것 나름대로 곤란한데...
-후...
고개를 절래절래 내젓는 헬캣이었다.
순간.
"멈춰라!"
응?
갑자기 치고 들어온 소리에 체스와 헬캣의 걸음이 멈췄다.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자.
체스가 두 눈을 가늘게 뜬 채 불쑥 나타난 남자들을 보았다.
그리고.
...저 자는,
분명히 지난 번부터 계속 시비를 툭툭 걸던 자인데.
그 전부터 그랬고 자이앤트의 둥지에서도 그랬고.
"뭐죠?"
탐탁치 않은 표정으로 체스가 물었다.
"후후후후. 이미 다 알고 있다."
"뭘요?"
"네 녀석. 그 옆에 있는 것 마수가 아니냐!"
의기양양하게 외치는 스고르.
그는 확신에 찬 모양이었다.
'뭐야. 저 자가 어떻게 알고 있지...?'
흠칫 놀라는 체스.
그가 자신의 뒤를 밟았다는 것은 꿈에도 모르는 체스였다.
야아~옹-
스고르의 말을 부정이라도 하듯 울음소리를 내는 헬캣.
동시에 모두의 시선이 그리로 쏠렸다.
"에이~. 스고르. 네가 착각한 거잖아."
"저건 고양이야. 고.양.이."
저마다 한 마디씩 내뱉는다.
저렇게 앙증맞고 사랑스러운 게 무슨 마수는 마수야.
"조용히 좀 해봐. 맞다고!"
버럭 짜증을 내는 스고르.
반면 헬캣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실은 헬캣은 처음부터 스고르가 계속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시발점은 우연일지 몰라도 말이다.
하지만 굳이 말썽을 일으킬 필요도 없을 뿐더러 괜히 긁어 부스럼이 될까봐 냅뒀던 자였다.
게다가 자신이 인간계에서 일일이 인간을 건드릴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때 체스가 헬캣에게 슬며시 질문을 던졌다.
그는 헬캣의 표정에서 무언가를 읽어낸 듯했다.
"알고 있었어요?"
그의 속삭임에 헬캣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 행동이야말로 자신이 환수라는 것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가 아닌가.
늘 하던 대로 우쭈쭈나 하면 될 것을 갑자기 자신에게 말을 걸면 어쩌란 말이냐 도대체.
...역시...
한순간이나마 이 녀석이 천재라 착각한 자신의 잘못이다.
'후... 이 돌대가리를 어쩌면 좋나...'
한숨을 푹 내쉬는 헬캣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