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귀환(6)
그 후로 며칠 동안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일과는 온통 헬캣과의 훈련이었다.
그렇다면 저녁에는 쉴 수가 있나?
그렇지도 않다.
지난 번 의뢰가 끝난 이후 그 사후 처리 때문에 협회를 들락날락거리느라 잠잘 시간조차 부족한 체스였다.
이제 그도 어엿한 실버 등급의 마수 사냥꾼이었으니.
그나마 한 가지 안심이 되는 것.
이번 달의 채무는 헬캣 덕분에 해결한 체스였다.
심적 부담은 좀 덜어냈다고나 할까.
헬캣이 가져온 두 개의 환석.
가격이 꽤나 되더라고.
이자까지 해서 한 번에 해결하고도 돈이 좀 남았다.
그래봤자 개미눈곱이지만.
하지만 이번 훈련이 끝나면 바로 의뢰를 하러 가야한다.
돈! 돈! 돈!
돈이 없다...
그 이유는 이번 자이앤트의 의뢰에 참여했던 모든 마수 사냥꾼들에게 따로 보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둥지가 무너지는 바람에 뒷정리가 아예 불가능했었으니까.
여하튼 주변이 정리되고 지금은 오로지 수련이었다.
중단을 열기 위한 수련.
그리고 그것을 빙자한 극한의 구타.
체스는 중단을 열고 헬캣은 스트레스를 풀고.
일석이조?
일단은 그렇다손 치자.
그렇게 훈련을 시작한 이래.
지금 체스는 아주 그로기 상태가 되어 있었다.
"후아... 너무 힘드네요 진짜..."
-엄살 피우지 마라. 내가 본 모습으로 안 하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라.
혀를 끌끌 차는 헬캣.
그건 정답인 듯하다.
본 모습일 때도 이미 봤던 터이고 그 상태라면...
상상 만으로도 절로 소름이 돋는다.
"...이것도 죽을 것만 같은데요...?"
힘들긴 하겠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 하는 것이라 어쩔 수 없긴 하지만.
하지만.
-그나저나 왜 그렇게 늦냐? 늦는 만큼 더 두들겨 맞을 건데.
저런 중대한 일을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는 게 더 무섭다.
헬캣의 말을 들은 체스의 얼굴이 또 한 번 슬픔으로 물들었다.
괜히 자신의 처지가 서글퍼진 까닭이었다.
자신이 원한 기운도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이왕 줬으면 준 김에 처음부터 다 열어주고나 가던지...
왜 나머지를 남겨둬서 이 꼴을 당하게 하는지 원.
심보가 고약하다 고약해.
그리고 또!
중단이라는 놈은 이리도 안 열리는 것인지.
잘 때마다 배를 두들기고 자해를 하는 수준으로 때리는 등 생쇼를 함에도 불구하고 아랫배 부근은 미동도 않았다.
물론 그 꼴을 본 헬캣이 머리를 굴리라며 비웃기는 했지만...
여하튼 자신의 배지만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없다.
마음 같아서는 벌써 골백번도 더 열었겠건만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체스의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었다.
-자~ 간다.
따로 설명도 필요없고 가르칠 것도 없다.
헬캣이 할 일은 그저 때리기.
체스가 할 일은 중단이 열릴 때까지 두들겨 맞기.
아, 하나가 더 있지.
맞으면서 버티기.
퍼어어억-
흐읍-
헬캣이 순간 때린 앞다리를 재빨리 뺐다.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 듯하다.
'아차.'
어느 새 체스는 저 끝으로 꼴아박히는 중이었다.
체스의 복부를 가격한 헬캣이 자신의 앞발을 잠시 내려다 보았다.
그런데 저 녀석.
이번은 지난 번보다 훨씬 강도가 강했을 건데 이상하게 곡소리가 나오질 않네.
헬캣은 체스가 뻗은 쪽으로 사박사박 걸어갔다.
****
헬캣의 앞발이 자신의 복부를 정확하게 가격했을 때.
방어를 할 생각조차 못한 체스였다.
적어도 두 팔로라도 막기는 해야 그나마 고통을 좀 견뎌내는데...
끄으으으으...
비명을 지를 새도 없었다.
튀어나오던 비명은 목구멍까지 순식간에 치고 올라오는가 싶더니 마무리가 약했다.
대신 배꼽 부근을 지나 척추를 타고 올라온 고통이 전두엽을 지나 대뇌를 똑똑 노크할 때.
체스의 몸에서 미묘한 변화가 일어났다.
응? 어째 배가 뜨끈뜨끈한 게 근질근질하다?
두근- 두근-
미약한 심장박동이 점점 커져간다.
느껴지는 고통에 반항이라도 하는 듯.
그렇게 심장에서부터 시작된 박동은 모세혈관을 돌고 돌아 온 몸으로 퍼지는가 싶더니 삽시간에 체스의 배꼽 부근으로 스르륵 모여들기 시작했다.
'뭐...뭐야...?'
솨아아아아아-
스르륵 모여들던 박동은 더욱 빨라지더니 그의 배꼽 언저리에 차곡차곡 쌓여간다.
'뭐...뭐야...'
그리고 얼마가 지나가 떡 하니 자리를 잡은 그것.
분명히 느껴졌다.
좁쌀보다도 더 작은 무언가가.
'엇!'
체스는 헬캣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줄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대신 그저 배꼽 부근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한참을 취해 있는 체스였다.
****
'호오. 이제 열렸나?'
예리한 헬캣의 촉이 발동했다.
-생겼냐?
체스에게 다가온 헬캣이 던진 한 마디였다.
그의 말에 그제야 현실로 돌아온 체스.
"네! 네! 생긴 것 같아요. 아니 생겼어요. 여기에! 여기에 좁쌀만한 게 뭔가가 있는 것 같아요!"
-흐음... 그럼 배를 가르면 그게 나올까? 두 눈으로 확인을 시켜줘야지. 안 그래? 네가 거짓말하는 것일 수도 있잖아.
"아니... 배를 가르다뇨. 여하튼 여기에 있어요. 분명히 확실하게."
황급히 자신의 배를 가리키며 말을 하는 체스.
배를 가른다는 말에 식겁한 그였다.
그도 그럴 것이 말을 하는 와중에 헬캣의 발톱이 이미 빛에 반사되어 번쩍이고 있었으니까.
-농담이다. 자식아. 겁은 많아서. 크흐흐흐흐흐흐.
"...거 장난이 너무 심한 거 아니오?!!!"
-그럴 수도 있지. 그나저나 잘했다. 완전 둔한 건 아닌가 보구만. 끌끌.
"...쳇. 나름 똑똑하다구요... 그런데 그나저나 이제 어떻게 하면 되나요?"
중단을 키우는 방법에는 몇 가지 방법이 있었다.
몸으로 직접 배우는 것.
그리고 자신을 깨달아갈 수 있게 자신의 존재를 지우는 것.
하지만 지금까지 헬캣이 봐온 체스에게 제일 어울리는 방법은 몸으로 배우는 것이었다.
자신을 깨달아 갈 수 있게 존재를 지워간다라...
이건 많은 성찰의 과정이 필요했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말이다.
그리고 우선 이 녀석이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단 1도 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당연히 남는 방법은 한 가지지.
-몸으로 배워야지 당연히.
"네?"
-맞다보면 아마 조금씩 더 커져갈 거야. 흠... 목표는.
갑자기 헬캣이 자신의 앙증맞은 앞다리를 이용해 커다랗게 하나의 원을 그려냈다.
그의 행동을 이해 못하겠다는 표정의 체스.
-우선은 이 정도로 만들면 되겠지?
"...그게 얼마나 걸리는데요?"
-흠... 글쎄. 너 하기에 달리긴 했는데 말이야.그리고 그 사이에 상단이 더 커질 거라 좀더 빨리 하기도 해야지 암.
결국 이걸 더 해야 한다는 말이네.
이거 겨우 힘들게 만들었더니...
...나가리네.
체스는 좌절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순간 그의 머리에 그려지는 잠시 후의 장면.
헬캣이 자신을 열심히 구타하는 장면이었다.
"이런!"
그리고 체스가 재빨리 거기에 반응하려는 찰나.
다시 시작되었다.
둘의 훈련 아닌 훈련이.
끄아아아아아아아-!!!!!!
산 속 깊숙이 그의 비명이 구슬프게 울려퍼졌다.
****
"저 놈은 도대체 몇날 며칠을 저러고 있는 거지?"
참견쟁이 스고르였다.
그는 둘을 발견한 이래 계속해서 체스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는 중이었다.
저 귀엽게 생긴 녀석은 분명히 마수.
그것도 S등급을 넘어서는 마수.
그리고 저기 재수없게 생겨서 매번 두들겨 맞는 체스는 마수들과 손을 잡은 녀석.
스고르가 보기에는 확실했다.
그렇다면 이 무너진 정의를 세워줘야 하는 건 당연히 자신이 아니겠는가.
그는 확실한 증거를 잡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상대가 도저히 어디로도 빠져나갈 구멍이 없을 때 그걸 빵! 터뜨릴 생각이었다.
자신은 정의의 마수 사냥꾼이니까.
마수들과 손을 잡는 녀석은 두고볼 수가 없지.
그렇게 스고르는 알 수 없는 행동을 계속 이어가는 둘을 다시 열심히 염탐하기 시작했다.
해가 저물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