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의 채무 탈출기-109화 (109/249)

#109

귀환(5)

푸르릉-

벌려진 콧구멍에서 커다란 김이 새어 나온다.

"아...아니...그...그..."

무슨 말을 해야할 지도 모른 채 그저 어버버거리는 체스.

그도 그럴 것이 저 위압감.

체스의 의식의 저 편에 희미하게 남아있던 잔상과 딱 일치하는 모습이었다.

-뭐냐? 겁 먹었냐?

"아...그... 아니오! 누굴 보고 겁 먹었다고 그래."

자못 당당한 기세로 빽 고함을 치는 체스.

'귀엽네 귀여워.'

츠츠츠츠-

잠시 그를 내려다 보던 헬캣이 다시 몸을 줄였다.

'흐...'

"그...그게 낫네요. 훨씬."

-그래서 본 소감이 어떠냐?

"...소감이랄 게 뭐 있나요? 뭐 강한 건 한눈에 봐도 알겠네요."

-흐흐흐흐. 걱정마라. 널 잡아먹거나 그런 건 없으니. 내 취향도 아니고. 그건.

"아~ 예예~ 그러시겠죠~"

체스가 먼저 몸을 돌렸다.

욱신거리는 몸을 한시라도 빨리 뉘이고 싶은 그였다.

먼저 걸음을 내딛는 체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며 헬캣이 입을 열었다.

-중단이 열릴 때까지 매일이다.

흠칫-

일순 체스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매...일인가요?"

-당연하지. 살고 싶지 않냐? 그냥 죽을래? 난 네가 죽는다면야 훨씬 더 편하긴 하다만은.

"참나~ 살아야죠. 그까짓 거 합시다 해!"

투덜거리며 산을 내려가는 체스였다.

그의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피식 웃으며 그를 따라가는 헬캣.

둘이 떠나간 자리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적어도 둘의 생각에는 말이다.

그리고 둘이 떠난 자리에서 약간 떨어진 곳의 덤불이 부스럭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불쑥 몸을 일으킨 인영 하나.

참견쟁이 스고르였다.

****

참견쟁이 스고르.

자이앤트 둥지의 벽에서 갑작스레 치고 들어온 자이앤트들에 의해 동료를 여럿 잃은 그였다.

끌려간 자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젠장!"

뒤를 돌아보니 반수도 채 남지 않았다.

스피어 사냥단의 이름이 무색해질 정도로 수가 확 줄어든 것이다.

"스고르. 어떡...할까? 우리도 랭커들 뒤에 따라붙어야 하지 않겠어? 이대로 더 깊숙이 들어갔다가 다 죽을 것 같은데..."

겨우 살아남은 자 한 명이 그에게 다가왔다.

어딘가에서 눈 한 짝을 잃어버렸는지 그 자의 눈은 한 쪽이 아예 날아간 채였다.

"하아. 일단 조금만 더 가보자. 아까 같은 공격은 더 없겠지. 여기까지 와서 아무 것도 안 얻을 셈이야? 여기에서 살아남기만 한다면 순식간에 은퇴를 해도 된다고."

"그래... 그 말은 맞지만 이대로 가다가 너 빼고 다 죽을 수도 있으니까..."

"제길. 그럼 어쩌라고! 돌아가고 싶으면 돌아가. 난 앞으로 갈 거야."

여기까지 와서 돌아간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지금까지의 전리품만 해도 어마어마할 텐데 그 큰 희생을 치르고 되돌아간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잔뜩 역정을 낸 스고르가 앞으로 더욱 들어가기 시작했다.

****

그 앞은 더욱 빡빡했다.

빛이라고는 단 한 줄기도 비치질 않지.

게다가 어둠을 이용한 공격은 계속 되지.

어느 덧 스피어 사냥단의 수는 반에 반도 되지 않았다.

흐읍-

눈앞에 더듬이가 잘린 채 죽어있는 자이앤트의 몸에서부터 무기를 뽑아드는 스고르.

아무리 자신의 등급이 사파이어라고는 해도 밀려드는 수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스고르.

여왕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이건 뭐 여왕에게 다가가기도 전에 죽을 것 같지 않은가.

바로 그때.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재빨리 경계 태세를 갖추는 살아남은 자들.

'이대로 자이앤트들이 덮친다면... 앞뒤로 다 먹히는 꼴이 되는데...'

그러나 그의 염려와는 다행히도 달리.

나타난 자들은 심슨을 위시한 마수 사냥꾼들이었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스고르와는 달리 심슨의 표정은 그래도 여유가 흘렀다.

...랭커란 말이지.

"스피어 사냥단도 살아남아있었군. 여기서 보게 되어 반갑기 그지없구만."

"후. 여왕은...?"

"곧 여왕이 보일 것 같은데. 이거 도대체 둥지가 어느 만큼 깊은 지 모르겠군."

"...일단 우리도 합류하겠소."

"음."

고개를 끄덕인 심슨.

순간.

안쪽 깊숙한 곳에서부터 굉음이 파도를 타고 들려왔다.

둥지 전체가 격하게 떨릴 정도로 커다란 굉음이었다.

"저기다. 여왕이 있는 곳!"

심슨이 외쳤다.

저 소리가 들리는 걸로 봐서는 자신들보다 먼저 도달한 팀이 있다는 말이다.

아스타가 이끄는 불곰 사냥단인가?

뭐가 되었든 간에 도와주어야 한다.

그를 비롯해 나머지 마수 사냥꾼들은 걸음을 빨리 했다.

그리고 그들이 도착했던 곳.

여왕의 방.

그 곳은 마수 두 마리의 격렬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도착하기가 무섭게 여왕이 땅을 파 도망치며 나머지 한 마리의 마수가 여왕의 뒤를 쫓으며 사라져 갔다.

그리고 그 직후.

자이앤트의 둥지가 그대로 무너져 갔다.

****

허억- 허억-

진심 죽을 뻔했다.

자이앤트를 잡느라 죽을 뻔한 게 아니라 이 곳 무너지는 둥지에 깔려 죽을 뻔했다.

아마 심슨이 없었다면...

이미 모두는 남은 여생을 신과 함께 보냈겠지.

그런데...

둥지가 이렇게 무너져버린 이상 보수는...?

"우리 보수는 어떻게 되는 거요?"

스고르가 심슨에게 질문을 던졌다.

살아남은 이상 남은 자들에게 참여한 보상이 주어져야 할 것 아닌가.

"보수?"

하지만 오히려 무슨 소리를 하냐며 되묻는 심슨.

"...여왕을 잡은 것도 아니고 전리품도 못 챙겨서 참여비 조금 정도 나오지 않을까? 보다시피 둥지 자체가 아예 무너졌지 않나."

"...그럼 보상이 쥐똥 만큼 떨어진단 말이오?"

"음. 그렇겠지. 나라에서 주는 것 조금 받겠지 아마."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는 심슨이었다.

지금 그에게는 사후처리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는 과연 여왕은 어떻게 되었을까와 그 여왕을 쫓아간 마수에게 온통 관심이 쏠려 있었다.

기억이 맞다면 그건 헬캣인데...

왜 그 마수가 둥지 안에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심지어 둘이 싸우고 있을 줄이야.

"뭐 여하튼 거기에 대해 보수가 나오면 주도록 하지. 자네는 자네 사냥단들을 챙기게. 난 나머지들을 챙겨 돌아가야 하니."

이미 저 멀리서 아스타를 비롯한 불곰 사냥단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뒷처리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긴 하지만...

이번 의뢰의 총 책임자인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보상은 개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손해만 본 스고르였다.

그런 찰나에 뭔가라도 해야 했기에 산을 헤매던 그는 헬캣과 체스를 목격한 것이었다.

'좋아. 이렇게 된 이상 네놈이 내 분풀이가 되어라.'

스고르는 이내 사라진 체스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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