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의 채무 탈출기-108화 (108/249)

#108

귀환(4)

-자~ 우선은 가볍게~

쾌활한 목소리였다.

그리고는 가볍게 앞다리를 휘두르는 헬캣.

하지만 말과는 전혀 다르게 그의 앞발은 가볍지 않았다.

퍼어어어억-

황급히 손을 들어 막는 체스.

그렇지만 이건 가볍게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한 번의 타격이 어찌나 무거운지 육중한 체스의 몸조차도 자연의 법칙 마냥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왜 때려요!"

체스가 소리를 꽥 질렀다.

방금 막아낸 자신의 팔을 보니 겨우 막아낸 부위는 시뻘겋게 달아오른 채 꽤나 부어 있었다.

-응?

다짜고짜 소리를 버럭 지르는 체스를 보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의 헬캣.

-아니. 가르쳐 준다고 했잖아.

"그럼 그냥 말로 조곤조곤 가르쳐 주면 되죠!"

-쯧쯧. 무식한 놈. 이건 말로 가르쳐 줄 게 안돼. 그리고 생각보다 진행이 빨라서 하나씩 가르치면 그 속도를 맞출 수가 없어.

"그런 게 어딨어요?!!!"

맞고 싶지는 않았다.

요 근래 자신의 능력을 훨씬 상회하는 마수들만 상대를 했더니 아무리 맞는 데 이골이 난 자신이라도 맞고 싶지가 않았다.

훈련은 어디까지나 훈련이어야지.

훈련을 빙자한 구타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 아니겠는가?

암.

그렇고말고.

체스가 자신의 생각에 지극히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안 보이냐?

"응? 네? 뭐가요?"

-미래의 장면 말이다.

갑자기 주제가 확 바뀌었다.

그런데 그러고 보니.

아. 진짜네.

조금 전 헬캣이 자신에게 다리를 휘둘렀을 때에는 미리 그려지지 않았다.

자이앤트와의 전투 때에는 그렇게나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지더니.

"안 보였어요. 이제 안 보이게 된 건가요?"

-집중을 해라. 전투를 하는 것처럼 긴장을 하라는 말이다. 그럼 자연스레 집중이 될 것이다.

다소 과격한 방법이긴 하지만 헬캣은 체스를 얼른 깨우쳐 줄 생각이었다.

이대로라면 매번 자신이 마지막에는 손을 거들어야 하지 않겠나.

귀찮다.

게다가 본격적으로 주인들이 손을 쓰기 시작하면 자신이 막지 못할 경우가 생길수도 있고 말이다.

-그거 말이다. 집중해라. 전투 중이라고 생각을 해라. 이제 본격적으로 들어간다.

"아. 자...잠까ㄴ..."

체스가 잠시 헬캣을 말리려는 사이.

허나 그런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는 듯 피식 웃음을 지은 헬캣은 이내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훈련을 빙자한 구타가 시작되었다.

****

퍽- 퍽-

퍼버버벅-!!!

'이상하네.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었나? 왜 이렇게 신이 나는 거야?'

얼마나 때렸는지 모르겠다.

때리면 때릴수록 어째 신이 나는 게 흥이 마구 돋았다.

후하-

크게 심호흡을 한 헬캣이 그제야 속사포 마냥 때리던 앞발을 멈췄다.

쿠당탕탕-

그 사이 체스는 땅에 사정없이 처박히는 중이었다.

허억- 허억-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그.

헬캣은 그런 그를 무심한 표정으로 그저 쳐다볼 뿐이었다.

'에휴...'

환수계의 다섯의 주인.

그 중 한 명의 기운이 담겨진 체스의 몸.

그리고 그 몸에 담겨진 일명 '예지안' 이라 불리는 그의 능력.

저건 인간이 함부로 가져서는 안 되는 능력 중의 능력이다.

어떤 식으로 그 기운이 이 녀석에게 넘겨졌는지까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기운을 넘기면서 그 능력까지 거기에 같이 섞인 것 같다.

예전에도 말했지만 저 능력은 상단을 개방했을 때에만 사용이 가능한 것.

만약 상단이 억지로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2단이 제대로 틀이 안 잡혀 있다면 그것은 차고 넘쳐 버린다.

파사삭 깨어져 버린다는 말이다.

지금 체스의 몸처럼.

그래서 자신이 그 길을 열어주려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체스의 온 몸을 자극시켜서 말이다.

"어우... 죽겠다."

벌러덩 그대로 누워버리는 체스.

아픈데 역설적이게도 아프지는 않다.

게다가 집중을 하니 다음의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지기는 했다.

하지만 막기에는...

헬캣의 공격이 너무나도 빠르다.

보면 뭐하나?

헬캣의 앞발은 이미 자신의 몸 바로 앞에 있는데.

그 덕에 욱신하게 맞아버려 너덜너덜해지다 못해 찢어질 것만 같은 자신의 몸뚱아리였다.

그런데 이제는 진짜 못 맞겠다.

"...이게 최...선이에요?"

-아니. 이제 시작일걸? 엄살 피우지 말고 일어나. 네 몸이 무너지면 어떻게 되는지 아느냐?

"...모르죠..."

-그건. 아니다. 그건 네가 몰라도 되겠지. 그건 그렇고 중단 부근에 좁쌀 같은 뭔가 느껴지는 게 없냐?

"그걸 어떻게 확인하나요?"

-느껴봐라. 없으면 그게 느껴질 때까지 몇날 며칠이고 계속 맞아야 해.

히이익-

경악을 금치 못하는 체스.

끔찍한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해대는 헬캣이었다.

-안 느껴지냐? 그럼 다시 좀더 해야겠지?

"자...잠시만요!"

체스는 다급히 외치며 중단에 있다는 뭔가를 느끼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끙...끙...끄응...

...하지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감조차 못 잡고 있는 체스였다.

-안 느껴지나보네. 간다 그럼?

툭- 투욱-

가볍게 걸음을 옮기며 다가오는 헬캣의 자그마한 모습이 공포스럽게까지 느껴지는 체스였다.

'느껴져! 느껴져! 느껴져라! 제발...!!!'

하지만 느껴지지 않는다.

역시나.

그리고 그의 몸을 헬캣이 화악 덮치기 시작했다.

****

"아...... 살려줘요. 진짜."

엉금엉금 기다시피하며 헬캣을 피하려는 체스였다.

자신의 곁에 있었기에 제대로 몰랐지만 정말 강했다.

그나마 이게 자신을 훈련시키는 것이기에 살살 해서 다행이지...

진짜로 맞붙게 된다고 가정한다면.

...소름이 돋는다.

-너 어차피 금방 나을 거다. 게다가 꼴을 보아하니 한참은 더 두들겨야 될 것 같구만 뭘.

체스의 몰골을 보며 피식 웃던 헬캣이 자신이 쳐놓은 결계를 위에서부터 거둬들이기 시작했다.

파사사 녹아 내리듯이 무너져 내리는 결계.

바깥은 어느 새 달빛을 피해 땅거미가 숨어든 밤이 되어 있었다.

엉거주춤 몸을 일으키는 체스.

삭신이 안 쑤신 곳이 없었다.

-돌아가자. 좀더 하다 보면 되겠지.

이런 끔찍한 걸 더 해야 한단 말이야?

체스의 얼굴이 사색으로 물들었다.

-잔말 말고 일어나. 돌아가게. 좀더 맞을래?

"아...아니오. 그럴 리가."

순간 벌떡 일어나는 체스였다.

아픈 건 아픈 거고 이건 이거지.

몸을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온 몸이 비명을 질러댔지만 체스는 괜히 더 하자는 이야기가 나올까봐 얼굴 밖으로 표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애썼다.

"아...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요."

-아직 말할 힘은 넘치나보구만? 훗. 뭐가 궁금하냐?

"그... 저 자이앤트 여왕이랑 싸울 땐가 그때에요... 그 커다란 환수가 하나 더 있던데 혹시 그것도 보셨나요?"

-아~ 그거?

별 거 아니라는 듯 심드렁하게 말하는 헬캣.

응? 잠깐.

하긴 그때 제대로 보지도 못 했겠지.

뭐 이 녀석에게는 보여주도록 할까?

이 몸의 위대함을 말이지.

-보고 놀라지 마라. 내가 보여주지.

"...네? 그게 무슨...?"

두둑-

갑자기 헬캣의 몸에서 모든 관절이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슈우우우우와아아아아아아-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는 헬캣의 신체.

두둑 소리를 내며 점점 커지기 시작하는 그의 몸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자이앤트 여왕과의 전투에서 체스의 뇌리 속에 남아있던 마수의 모습에 영락없었다.

털썩-

그만 엉덩방아를 찧고 마는 체스.

"마...맙소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