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귀환(3)
'이걸로 이번 달은.'
체스의 눈이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응당 받아야 할 것을 받는 것이지만 언제나 공짜는 좋은 법.
게다가 이 정도를 매달 받을 수 있다면 굳이 사냥은 하지 않아도...
-꿈 깨라. 앞으로 그럴 일은 없다.
그의 생각을 단박에 읽었는지 헬캣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어째 좀 쉽게 가나 싶었더니 그건 또 아닌가보다.
-그런데 언제까지 누워있을 거냐? 다 나았지 않냐?
"아. 그... 그렇죠."
헬캣의 다 알고 있다는 잔소리 아닌 잔소리 같은 말투에 체스가 주섬주섬 몸을 일으켰다.
하긴 의사조차 그의 경이로운 회복력에 깜짝 놀랐지 않나.
자신도 모르는 새에 다 나아버린 체스였다.
환자 행세를 하기에도 좀 애매하고.
옆에 가지런히 놓여진 넝마 같은 옷을 주섬주섬 입는 체스.
"아참. 질문이 있어요."
-질문?
"네. 이상해진 것 같아요. 제 몸이."
-뭐가 이상해졌다는 거지?
"그게... "
체스는 그간에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다소 두서없이 펼쳐지는 그의 이야기였지만 그것 만으로도 헬캣을 이해시키기에는 충분했다.
-흠... 회복되는 속도도 그렇고...
가만히 턱을 괴고 있던 헬캣.
-그거 아냐? 그거 내가 전에 얘기했지 않냐? 3단계가 있다고. 그게 좀더 심화된 것 같은데.
"그 순서가 뒤바꼈다는 그것 말인가요? 상이 먼저 열렸다는 그거 얘기하는 거죠? 그런데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보인다구요? 완전 머릿속에 그려지던데요?"
-그건 아마 그 분의 그런 능력이 발현되는 것 같기도 하다만은. 어쨌거나 넌 머리보다는 몸으로 익히는 타입인 것 같은데 빨리 나머지 둘을 열어라. 그저 구르다 보면 된다. 그렇지 않으면 무너질 것이야.
"...무너지다뇨...?"
역시 이해를 못 한다.
지난 번에도 제법 가르쳐 준 것 같은데 말이지.
-흠. 간단히 말해서 그건 최종단계. 궁극으로 가는 경지지. 세 개를 모두 열어 그것들을 한데 합칠 수 있을 때 궁극에 다다렀다고 할 수 있지. 하지만 그 전에 밑의 2단계를 열어 그릇을 갖추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넌 너무 강제적으로 상이 열려버렸기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그걸 열지 않으면 무너지지. 그 말인즉슨 몸이 못 버티고 인간으로서는 죽는다는 말이지.
"...젠장. 죽는다는 말을 그렇게 쉽게 해요?"
한 마디로 그릇을 만들라는 이야기다.
문을 열라는 말이지.
어떤 수를 써서라도.
...이해는 가지 않지만 이해를 하려고 노력은 했다.
"그러면 나머지 2단계를 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도와주세요! 저도 살아아죠. 결혼도 해야 하고 빚도 까야 하고..."
-그건 네가 깨달아야지. 내가 약간의 길은 이끌어 줄 수는 있지만 모든 걸 가르쳐 줄 수는 없지. 난 원래부터 알고 있는 것이니까. 그리고 공짜는 없어.
"...아..."
-이왕 이렇게 된 것. 나로서도 네가 살아있어야 하니 인적이 없는 곳으로 가자. 말이 나온 김에 상태를 좀 살펴봐 주지. 그리고 하나 알려줄 게 있다. 난 고급강사니까 수강료는 비싸다.
일순 체스의 얼굴이 굳어졌다.
...치사하다.
-후불제로 해주지. 환석으로 말이야.
그제야 얼굴이 펴지는 체스.
...사...살았다.
빚 갚기도 힘든데 또 지출이 생길 뻔했다.
"얼른 가시죠!"
태어나서 처음으로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
그것이 체스를 몹시도 기쁘게 만들었다.
하물며 그것이 자신을 살리는 길이라는데 전혀 거부할 이유가 없다.
"얼른요~"
붕대를 마구 뜯어낸 체스가 먼저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문을 열어젖혔다.
-미친 놈.
헬캣이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절래절래 내저었다.
****
숲 속.
인적이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곳이다.
그리고 그 곳에 서있는 둘.
체스와 헬캣은 서로가 마주 보는 중이었다.
"전 뭘하면 되나요?"
드디어 길을 가르쳐 준다는 말에 체스의 목소리는 한껏 업이 되어 있었다.
아까 방금까지 누워있던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쌩쌩한 모습의 그였다.
'훗. 그 기대감이 얼마나 지속되는지 보자꾸나.'
헬캣이 체스를 잠시 진정시켰다.
-잠깐 기다려라.
헬캣이 앞다리를 휘저었다.
그러자 그의 다리에서부터 뻗어져 나가는 기운.
그 기운은 곧장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그리고.
사라락-
헬캣의 기운이 닿은 하늘 부분에서부터 결계가 뒤덮이기 시작한다.
마치 아지랑이의 물결이 퍼지듯 넘실넘실거리는 그 결계.
둘이 있는 공간을 뒤덮은 결계는 이내 그들이 서있는 공간과 바깥의 공간 사이를 단절시켜 나갔다.
"호오~ 이건?"
체스가 눈을 반짝였다.
이 것은 예전에 봤던 어글리불이 만든 것과 비슷하다.
아니 그것 같았다.
"이거 그거 맞죠?"
-그래. 혹여나 굉음이라도 들리면 안 되니까.
굉음이 날 게 있나?
체스가 의문을 가지는 사이.
헬캣의 한쪽 입꼬리는 스윽 올라가 있었다.
그의 입에서 살살 지어지는 미소.
무언가 꿍꿍이가 있음에 분명했지만 아쉽게도 체스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
준비는 다 된 듯하다.
두 발로 서있는 체스를 보니 말이다.
-자. 시작해 볼까?
"네. 그럼 전 뭘 하면 되나요?"
-넌 막아야지.
"...네? 막다뇨?"
헬캣은 대답 대신 온 몸의 근육을 두두둑 풀기 시작했다.
'뭘 어쩔 셈이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이게 가장 빠른 방법이 있지. 너에게는 시간이 많이 없으니 속성으로 하는 게 제일 나을 것 같다.
"그게 뭐죠?"
-뭐 간단해~ 내가 때리고 네가 방어하는 거지?
??????
체스의 얼굴에 의문이 서렸다.
때려서 가르친다니.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때려서 가르친단 말이지?
너무 옛날 마수라 그런가?
-맞다보면 뭔가 몸 안에서 깨달아지는 게 있을 거다. 으흐흐흐.
"...그래서 그렇게 즐거운 얼굴을 하고 있는 거였어요? 그 뭐시기냐? 혹시 때리거나 그러면서 쾌감을 느낀다거나... 그런 건 아니죠?"
-에이~ 무슨 그런. 난 어디까지나 교육을 위해서 말하는 것이야.
"저... 이래 보여도 곱게 자란 몸이에요..."
체스가 말끝을 흐렸다.
-헹. 나도 곱게 자랐어. 너만 곱게 자란 줄 아냐? 우리 엄마가 얼마나 엉덩이를 토닥이면서 키웠는데. 나도 마음 아파서 사람 잘 못 때린단 말이야. 아아. 일단 시작하자. 너 지금 맞는다는 말에 맞기 싫어서 수 쓰는 것 같은데.
"...아이씨. 눈치는 빨라가지고..."
-뭐라고 했냐?
"아...아니에요."
스륵-
순간 헬캣이 체스의 시야에서 자취를 감췄다.
응?
그리고 헬캣이 모습을 드러낸 건 체스의 눈앞.
-그럼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