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의 채무 탈출기-105화 (105/249)

#105

귀환(1)

번쩍-

헙-

체스가 눈을 떴다.

눈동자에 비치는 건 높은 천장 뿐.

뻐끔뻐끔-

손이며 발에 힘을 줘 움찔거려 보았지만 전혀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이래?'

분명히 여왕과 싸우고 있었고 마지막으로 확실히 기억하는 건 죽기 직전이었다는 것 정도인데...

눈동자가 뒤룩뒤룩 돌아간다.

잠시 현실을 파악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 것인지 머리를 한참 굴리던 체스였다.

-야.

따악-

일순 그의 눈앞에 별이 번쩍거렸다.

헬캣이었다.

체스의 머리맡에 앉아있던 헬캣이 자신의 꼬리를 이용해 그의 이마를 갈겨버린 것이었다.

읍-

아픈데 입 밖으로 목소리가 튀어 나오지 않는다.

입마저 붕대로 막아버린 탓이었다.

몸이 고정이 된 탓에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대신 체스는 자신의 눈동자로 모든 감정을 표현했다.

-아휴. 맞다. 참. 입도 막아놨지.

사락-

헬캣이 슬쩍 입 부분의 붕대를 잘라냈다.

허억허억-

"끄에에에엑! 아파!!!"

그제야 차오른 숨을 비명으로 승화시키는 체스.

-조용히 해라. 이 녀석아. 뭐 어지간히 세게 쳤다고 엄살은 엄살은. 쯧쯧쯧.

"...진짜 아프다구요... 그나저나 여긴 어디에요? 제가 왜 여기에 있죠?"

-다 끝났다. 넌 여기에 실려온 거고.

"네?"

설명을 해달라는 눈치다.

-여왕은 어찌어찌했다. 널 데려온 건 그 뭐냐. 인간 중에 아주 강한 녀석이 있었지 아마? 그 녀석이 널 여기까지 옮겨왔다.

"아..."

자세한 설명은 아니었다.

자신의 궁금증이 해결이 안 된 체스가 더 물어봤지만 헬캣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

잠시 과거로 되돌아가 자이앤트의 둥지 안.

헬캣은 열심히 자이앤트 여왕을 쫓고 있었다.

땅을 마구 파헤치며 헬캣에게서 미친 듯이 도망을 가는 여왕이었다.

하지만 새끼마저 밴 몸이 그에게서 쉽게 도망갈 수 있을 리 없다.

퍼어어어억-

결국 헬캣이 여왕을 따라잡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앞발로 여왕의 머리와 가슴 사이의 약한 부분을 힘껏 후려치는 그.

쿠당탕탕탕-

여왕이 헬캣의 강력한 한 방에 놔뒹굴었다.

-헉헉. 날 살려다오. 제발. 너야 모르겠지만 난 이미 새끼도 배고 있지 않느냐! 이 아이마저 죽으면 앞으로 환수계에서 자이앤트라는 환수는 아예 사라져 버는 걸 알지 않느냐!

-그거야 내가 알 바냐? 그러게 왜 인간계까지 와서 다 망치고 있냐? 그냥 늘 살던 대로 환수계에서 살면 되는 것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너는 모른다. 그 주인들의 압박을.

-압박? 주인들이?

헬캣도 현재 환수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인간계에 머무른 터라 자세한 내막까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자이앤트들은 주인들이 관리하는 종족이라는 건 익히 알고 있지만 압박이라니.

-좋아. 말해봐.

그는 좀더 들어보기로 했다.

자세한 내막을 알고 싶기도 했고 말이다.

-그래. 말해봐. 사정에 따라서는 내가 널 놓아줄 수도 있겠지.

-좋다. 실은 하르무가 찾아왔었다.

-하르무? 북쪽의 주인?

-그렇다. 그가 날 찾아왔었지. 그리고는...

-그리고는 뭐??? 빨리 말해라. 현기증 난단 말이다.

헬캣이 여왕을 채근했다.

-하르무가 되레 관리를 풀어준다고 하더군. 단, 조건이 있었다. 환수계에서 먹을 수 있는 환수를 더 줄인다고 하더군.

-그래서?

-그래서는 무슨 그래서야. 그 말인즉슨 환수계를 떠나라는 말이 아니고 뭐란 말이냐? 관리는 풀어주는데 먹이가 줄어든다면 굶어죽으라는 말과 별반 다를 게 뭐가 있는가.

그래서 관리가 느슨해지자마자 넘어온 것이지.

흠...

확실히 먹이가 줄어든다면 그건 큰일이지.

하지만.

그 까닭에 인간계가 오히려 위험해졌지 않나?

두 세계는 마치 거울의 양면과도 같은 법.

한 곳이 위험해지면 다른 한 곳은 더욱 위험해지는 건 왜 모른단 말인가.

-...자, 이제 말은 다 했다. 그럼 이제 가면 되는 것이냐? 보내주기만 하면 조용히 지내겠다.

-아니.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역시 안되겠다. 넌 어딜 가더라도 충분히 그럴 것이야.

-이...이... 치사한 놈...

마지막 희망이 사라졌다.

이 녀석.

처음부터 자신을 살려줄 생각이 없었다.

키에에에에에엑-!!!

여왕이 분노에 가득 찬 눈으로 헬캣에게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어딜!

헬캣이 뒤쪽으로 살짝 몸을 띄웠다.

이미 여왕은 부상을 당한 몸.

그렇기에 아무리 강화형이라한들 체력은 빠질 대로 빠졌을 터였다.

몸을 살짝 띄운 상태에서 허공에서 발을 한 번 구른 헬캣은 이내 여왕의 다리를 피하며 쇄도해 들어갔다.

끼에에에에엑!!!

여왕의 고통스러운 괴성이 마구 울렸다.

헬캣의 강력한 앞발이 정확하게 자신의 옆구리를 뚫은 탓이었다.

꿀렁꿀렁-

뚫려버린 갑각의 안에서는 체액이 마구 흘러 나온다.

-제.....젠장... 꼭 이렇게 해야만... 속이 시원하냐!!!

-응. 넌 어쩔 수 없어. 넌 너무 위험해. 이대로라면 인간계 뿐만이 아니라 환수계도 위험해지니.

-이런 개 같은...

하지만 포기는 아직 이르다.

여왕은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짰다.

그리고는 냅다 자신의 꼬리를 치켜들어 남은 모든 산을 헬캣에게 퍼부었다.

촤악-

-어우씨. 더러워. 어디 똥구멍을 함부로 나한테 들이대냐?

헬캣이 재빨리 몸을 피했다.

순간 여왕은 남은 한 다리를 이용해 다시 도망을 가기 시작했다.

-야. 그래봤자 금방이라니까.

산을 피해 다시 도약을 하는 헬캣.

순간.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여왕이 몇 걸음을 채 떼지도 못했건만 갑자기 여왕이 디딘 곳의 땅이 푹 꺼졌다.

그대로 바닥으로 고꾸라지는 여왕.

여왕의 몸은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저 밑으로.

아차-

헬캣이 재빨리 그 구덩이 쪽으로 달려갔다.

-개ㅐㅐㅐㅐㅐㅐㅐㅐㅐㅐㅐㅐㅐㅐㅐㅐ!!! 죽여버리겠다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단지 그에게 보이는 건 점점 작아져만 가는 끝이 모를 바닥으로 떨어지는 여왕이었다.

그 와중에도 여왕은 주둥이에 힘은 살았는지 몇 번이나 복수를 외치며 그렇게 그녀는 저 밑바닥으로까지 사라져 갔다.

그걸 빤히 쳐다보는 헬캣.

갑자기 저런 구덩이 같은 게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모르겠다.

아니.

그건 둘째치고 저걸 따라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순간 약간의 갈등이 피어올랐다.

그런 그의 생각을 정리해준 것.

무너지는 천장이었다.

아까 여왕이 펼친 기운이 자이앤트의 모든 둥지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았다.

-젠장.

하지만 죽었을 것이다.

여왕이 아무리 S급의 환수라지만 부상까지 당한 몸이 아닌가.

분명히 죽었을 것이다.

헬캣은 더 이상 여왕의 죽음을 확인하는 것을 관뒀다.

그 사이 천장은 더욱 빠른 속도로 무너지고 있었다.

여기가 이렇다면 위는 더 하겠지.

체스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좀 궁금했지만 일단은 몸을 피할 때였다.

인간들이 왔으니 어떻게든 살았겠지.

재빨리 자신이 도망가야 하는 방향을 파기 시작하는 헬캣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사라지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자이앤트의 모든 둥지가 와르르 무너졌다.

****

그렇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입을 열지 않은 대신 조용함이 찾아든 병실.

방문을 누가 세차게 열어젖혔다.

"여~ 괜찮나? 으허허허허."

덩치 큰 남자 하나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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