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의 채무 탈출기-103화 (103/249)

#103

루비온 왕국(3)

호오.

어글리불의 눈매가 이채를 띠었다.

갑옷을 입었을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엉성해 보일 수가 없던 데프트였는데...

하지만 지금은 전혀 다르다.

검을 뽑아든 채 방패로 자신의 몸을 가리고 서 있는 저 모습을 보라지.

그냥 검사가 아니라 완벽한 하나의 방패이자 검이 된 듯 보였다.

빈 틈.

그런 게 없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빈 틈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좋아. 그럼 이왕 이렇게 된 거 살짝 시험해 볼까?'

"오호호홍. 가볍게 처리해 드릴게요."

촤락-

어글리불이 손에서 여러 장의 카드를 뽑아냈다.

'카드? 마술사인가?'

어글리불을 바라보는 데프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카드를 날린다고 가정했을 때 폭파형의 기술을 사용하는 것일수도 있고 암살형일 수도 있다.

그런데 저런 마수도 있었나?

카드를 쓰는 마수라...

아직 저 마수의 정체를 모르니 저 자가 어떤 식으로 움직일 지 예상도 되지 않고 안개 속에 갇힌 듣한 느낌이었다.

어글리불은 여전히 허공에 떠있는 상태로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그런데...

땅으로 내려올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너 안 내려오냐? 내가 거기까지 가기가 좀 힘들 것 같은데."

"아하하하하하하하하. 그럼 거기서 그냥 두들겨 맞으시면 되겠네요."

쳇.

역시 내려올 생각이 없구만.

하지만 자신이 마수를 모르듯이 마수도 자신을 모르기는 매한가지.

그 방심이 분명 독으로 돌아온다는 걸 알게 해줘야지.

준비를 마친 데프트는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주위를 슬쩍 둘러보았다.

자신과 왕을 중심으로 모여있는 병사들과 대신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탓에 혹여나 공격이 거세지기라도 하면 피해가 좀 클 것 같았다.

"전하. 일단 위험하니 살짝 뒤로 물리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일상생활은 덜렁거림의 연속이지만 적어도 전투에 있어서만큼은 대륙 전체에서도 손에 꼽히는 데프트가 아닌가.

왕은 그의 말을 따라 살짝 몸을 뒤로 피했다.

"오호호홍. 어딜!"

****

처음에는 자신이 직접 움직일까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여기 마수들도 데리고 온 판에 굳이 자신의 힘을 소비할 필요는 없지.

자신은 따로 해야할 일이 있으니.

어글리불이 앞쪽으로 손가락을 살짝 까딱거렸다.

자신의 주변에 떠있는 마수들이 그의 손가락이 의도하는 바를 알아차렸다.

키에에에에에-

일제히 괴성을 질러대는 마수들.

슈와아아아아악-

그리고 그의 손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허공에 머물러 있던 마수들이 일제히 급하강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A, B, C 등급의 마수들.

어글리불이 이번 임무를 위해 특별히 데리고 온 녀석들이었다.

처음 데프트에게 날아온 건 마치 잠자리처럼 생긴 B급의 마수.

치이사플라라는 녀석이다.

유난히 크고 댕그란 눈이 포인트인 이 마수는 여러 날개가 달린 마수들 중에서도 특히나 빠른 비행속도를 자랑하는 마수였다.

쌔애애애애애액-

날개를 펴고 강하하는 소리가 바람을 가른다.

그저 한 호흡이었다.

치이사플라는 어느 새 지척.

순식간에 데프트에게까지 날아온 마수는 갈퀴처럼 생긴 자신의 다리를 활짝 펼쳤다.

"헹."

코웃음을 치는 데프트.

혼쭐을 내줘야겠구만.

통- 통-

데프트가 갑자기 발을 굴렀다.

처음에는 가벼운 발놀림이 점점 그 속도를 더해갔다.

'뭐하는 짓이지?'

어글리불이 눈을 가늘게 뜬 채 그 자가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인지 유심히 지켜보기 시작했다.

갑자기 저 행동을 왜 하는 건가 싶다.

그러는 사이.

그는 몇 번 그렇게 몸을 통통 튕기는가 싶더니 힘껏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여전히 그의 몸은 방패에 가려진 상태.

거기에 달라진 게 있다면 말아진 몸에 검만 빼죽 나와있다는 것 정도?

그는 그런 상태로 허공에 뜬 채 자신의 몸을 회전시켜 치이사플라에게 그대로 달려들었다.

마수의 입장에서는 전혀 예상치도 못한 공격이었다.

끼이이이-

억지로 몸을 틀어서라도 그걸 피하려는 마수.

하지만 이미 가속도가 붙은 터라 피하기에는 이미...

콰아아앙-

격한 충돌음이 터져 나왔다.

순간 모든 마수들이 멈칫거렸다.

어글리불도 마찬가지.

그의 두 눈이 놀란 토끼눈마냥 크게 치켜터진 게 그 충격의 여파에 깜짝 놀란 듯보였다.

"맙소사..."

그는 자신의 눈앞에 벌어진 이 장면을 믿을 수가 없었다.

치이사플라 한 마리가 인간과 충돌한 직후였다.

후두두둑-

산산조각이 난 치이사플라 한 마리의 사체가 땅으로 투둑 떨어진다.

"...인간 맞나?"

저 결과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어글리불의 예상은 당연히 인간 쪽이 박살이 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의 결과가 벌어졌다.

아예 몸이 산산조각나버린 마수.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 인간은 어느 새 다음을 위해 발을 통통 구르는 중이었다.

심지어 허공에서.

"죽여라!!!"

어글리불이 그가 발구르는 것을 멈추기 전에 재빨리 잡을 생각에 마수들에게 공격을 명령했다.

끼에에에엑-

쿠와아아아악-

마수들이 일제히 괴성을 지르며 다시 달려들었다.

하지만 시작은 늦을지언정 공격은 그가 훨씬 빨랐다.

어느 새 그의 몸은 허공에서 팽이처럼 여기저기를 돌고 있었다.

연이어 이어지는 충돌음.

퍽- 퍽- 퍼억-

용케 살아남는 마수들도 있었지만 선발대로 보낸 마수들 대부분은 어김없이 산산조각이 나 땅에 떨어졌다.

'이...이게 뭐야? 저건 도대체 뭐하는 놈이야?'

어글리불의 얼굴에 황당함을 넘어서 경악이 깔렸다.

이런 인간은 또 처음일세...

딱-

어글리불이 황급히 손가락을 튕겨 나머지 마수들을 물렸다.

...너무 얕봤나?

역시 인간들의 왕이 있는 곳이라 쉽지는 않다...라 그 말인가.

"... 너 뭐하는 놈이냐?"

어느 새 어글르불의 얼굴에 맴돌던 웃음기는 싹 사라져 있었다.

그 사이 땅에 착지한 데프트.

그는 갑옷에 묻은 체액을 툭툭 털어내는 중이었다.

"나? 뭐긴 뭐야? 인간이지. 더 해볼 거냐?"

"아직 시작도 안 하긴 했는데. 다소 귀찮은 방해물이 하나 생기긴 했지만 당신 정도야 뭐 금방 처리하지 않겠어요? 오호호홍."

평정심을 되찾은 듯 다시 웃음을 보이는 어글리불.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의 머리는 아주 빠르게 회전하는 중이었다.

'그건 어디에 있는 것이냐. 도대체.'

기감 탐지를 계속 돌리고는 있지만 이상하게도 뭔가 흐릿해진 듯 머릿속에 보이는 게 하나도 없었다.

언제부터 이게 안 보이는 것인가 곰곰히 생각을 해보니 저 땅딸막한 자가 나타났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어쩔 수 없나?'

"제가 빠르게 처리해 드리죠 이제. 오호호호."

"주둥이만 그렇게 털지 말고 빨리 들어와~ 마수 따위가 뭘 그렇게 주둥이를 터는 거야? 도대체."

"입이 영 교양이 없으시군요. 그럼 사양않고 제가 먼저 들어갈게요. 오호호호."

촤락-

어글리불이 이번에는 다른 색의 카드를 꺼내 손에 쥐었다.

'...방금과는 다른 색인데?'

데프트의 눈동자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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