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루비온 왕국(2)
헉헉-
세차게 숨을 내쉬는 한 남자.
"전하. 늦었습니다. 아휴... 죄송합니다. 우웨에에에에에에엑."
그 남자는 어찌나 급하게 뛰어왔는지 헛구역질마저 해대었다.
몹시도 키가 작고 똥똥한 남자였다.
뛰어올 때에도 참 빠르긴 한데 말이지.
흠...
마치 펭귄이 뒤뚱거리는 듯한 느낌이랄까.
'후... 참나...'
그를 빤히 쳐다보는 왕의 눈빛은 한심하기 그지 없다는 눈이다.
이제는 잔소리조차 사치스러울 정도다.
도대체 어디에서 무얼 하다가 이제사 나타났단 말인가.
왕궁에 변고라도 생기면 가장 먼저 달려와도 시원찮을 녀석이 제일 늦게 나타나다니.
"잠시만요, 전하. 이게... 아... 좀 살이 쪄서... 잠시만요..."
낑낑-
그는 말을 하는 와중에도 들고 온 갑옷을 몸에 하나씩 꾸역꾸역 장착하는 중이었다.
"어우씨... 이거 왜 이렇게 안 끼워지는 거야? 아오. 힘들어... 으라차! 악! 살 끼였어!"
갑옷을 입는 것만으로도 한 세월이다.
그는 왕이 쳐다보는 와중에도 낑낑대며 팔 보호대를 끼우는 중이었다.
"아. 죄송합니다. 전하. 이게 좀 영 그렇네요. 아이고. 어. 아. 여기다. 이게 제가 너무 오랜만에 풀세트를 장착하다 보니..."
...허... 이번 기회에 월급을 좀 삭감이라도 해야 정신을 차리려나.
그를 바라보는 왕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런데 저 치가 누구길래 왕이 군소리를 안 한단 말이지.
그는 왕궁의 모든 방위를 책임지는 기사대장.
데프트라는 녀석이다.
이 녀석을 표현하자면 흠...
아주 기가 막히는 녀석이다.
검과 방패를 사용하는데 그 실력 만큼은 다이아 등급의 랭커들과도 맞먹을 정도다.
아니 어쩌면 오히려 그들보다 더 강할지도.
호사가들 사이에 흔히들 하는 말이 있다.
왕국에는 보물이 2개가 있다며.
하나는 자신의 딸이자 공주인 로레인.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바로 지금 왕의 눈앞에 있는 자.
데프트였다.
왕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둘은 보물이라고 일컬을 정도의 존재라는 것을.
괜히 백성들이 자신에게 '모든 것을 다 가진 자' 라는 칭호를 붙여 부르겠는가?
하지만 지금 저 모습만 봐서는 저게 도대체 어디가 2개의 보물 중 하나라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실력은 더 말할 나위 없이 훌륭하지만...
나머지가 영 개판이다.
개판!
지금도 봐라.
헐레벌떡 뛰어와서는 보호대도 하나 제대로 못 끼워서 저렇게 낑낑대고 있지 않나.
그를 바라보는 왕의 눈가에는 여전히 한심하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
"아하하하하하하하하~"
어글리불의 웃음소리가 또다시 흘러 나왔다.
"설마 저 자가 여기 이 곳의 히든카드이거나 뭐 그런 건 아니겠죠? 저에게 웃음을 주시기 위해 저 자를 부른 건 아닐 것 같은데. 이것 참. 왕이란 자리도 참 힘든 자리네요. 저렇게 모자라보이는 자들을 데리고 가야 하니 말이죠."
보호대를 끼우는 데프트가 웃겨 죽겠다는 듯 허리까지 접어가며 웃음을 그칠 줄 모르던 어글리불.
"하아. 하아. 너무 웃었네요. 절 즐겁게 해주었으니 얼른 목적만 달성하고 사라져 드릴게요~"
너무 웃은 탓에 호흡마저 가빠진 어글리불이었다.
그는 이들 덕분에 너무나도 기분이 좋아보였다.
선심 쓰는 듯 말을 하는 어글리불.
정말이지 너무나도 수준 차이가 난다.
뭐 어정쩡하게 생긴 녀석이 준비도 안 된 채 와서는 보호대를 저렇게 착용하고 있지 않은가.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 대비는 미리 해둬야 하는 게 정상이거늘 헐레벌떡 뛰어오는 모습이 참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저 자가 만약 자신의 부하였어도 속이 터질 것 같은데 하물며 저런 녀석을 데리고 있는 왕은 어떻겠는가.
그러니 자신이 웃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인 것이다.
"자... 어디 보자. 뭐 딱히 방어도 될 것 같지 않은데 금방 갈 수 있겠군요."
어글리불이 손바닥을 쫘악 펼쳤다.
어느 틈엔가 그의 손에는 트럼프 수십여 장이 들려 있었다.
'트럼프...?'
저런 마수도 있었던가.
그를 바라보는 모든 인간들의 눈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그 사이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손으로 장난질을 치기 시작하는 그.
촤라락- 촤라락-
'보자. 이걸 어떻게 요리를 하는 게 좋으려나?'
이번에 그가 데리고 온 환수들은 대부분은 등급이 낮은 환수들이기는 하다.
물론 자신이 직접 데리고 있는 A등급의 환수도 몇 마리 정도는 데리고 왔다.
푸르륵-
간만에 피맛을 본 하급의 마수들이 연신 푸레질을 해댔다.
아직 배가 덜 찼다는 말이겠지.
하지만 엄연히 목표가 있는데 여기에서 허튼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
자신의 주인이 그걸 기다리고 있지 않나.
'내가 나서야겠다. 그건 어디에 있지?'
어글리불이 눈을 가늘게 뜨며 기감 탐지를 하기 시작했다.
상을 깨우자 그의 머릿속으로 수많은 기운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낸다.
모든 기운들은 제각각이었다.
어떤 것은 옅은 빛을 내며.
또 어떤 것은 강한 빛을 내며.
엇.
그리고 순간 그는 깜짝 놀랐다.
그의 머릿속에 그려진 모든 기운들 중 자신의 기운보다 훨씬 크나큰 기운 2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뭐...뭐야? 인간 맞아?'
저 정도라면...
환수들 중에서도 거의 최상급의 기운이 아니고서야 가질 수 없는 기운인데.
물론 나머지 하나는 자신이 원하는 그것이긴 했다.
그것은 왕궁 안쪽에 있었으니.
'이야... 이거 저걸 넘어야 그걸 가질 수 있다는 말이겠군.'
그제야 왕이 왜 저 자를 기다렸는지 이해가 가는 어글리불이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외형은 우스꽝스럽지만 무지막지해 보이는 저 인간을 어떻게 빨리 요리하고 원하는 바를 달성할 수 있을까 생각에 잠겨 들어갔다.
****
그 사이 데프트는 겨우 갑옷을 다 입었다.
빠진 부분이 좀 있긴 했지만 뭐...
일단 구색은 맞췄으니.
"후... 다 끝났다. 전하. 왕궁을 습격한 자가 저 자입니까? 혼자인 것 같은데."
데프트가 그제야 다 갖춘 복장으로 왕에게 말을 건넸다.
그래도 무장을 다 갖추니 역시 허우대는 기사대장답다.
"그래. 저 자지. 아니지. 정확히는 마수다."
"네??? 마수라니요? 마수가 어떻게 저희 말을 한답니까?"
깜짝 놀란 얼굴의 데프트였다.
"나도 처음 안 사실이지. 마수 중에도 지성을 갖춘 것들이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모든 정보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을 것 같군."
"아... 신기하네요. 저런 건 좀 잡아서 연구를 좀 해볼 필요가 있겠네요."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하는 그였다.
"그건 그거고 우선 저 녀석부터 좀 처리하면 안될까? 내가 지금 몹시 불안하거든."
"아! 맞습니다. 제가 정리하겠습니다. 믿고 맡겨만 주십시오! 전하."
'네가 제일 신용이 안 가! 이 자식아!'
마음으로야 백 번도 넘게 외친 소리였다.
데프트가 갑옷을 입는 내내.
하지만 차마 그 말은 하지 못하겠고...
왕의 입에서는 전혀 반대의 소리가 흘러 나왔다.
"뭐... 여하튼 빨리 좀 처리해 주면 안 될까?"
왕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데프트는 검을 뽑아 들었다.
차캉-
"으하하하하! 다 덤벼라! 마수 놈들!"
우렁찬 데프트의 고함이 마수들의 고막을 마구 울려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