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의 채무 탈출기-99화 (99/249)

#99

자이앤트 여왕(6)

숨을 쉴 때마다 뿜어져 나오는 그의 기운이 점점 펴져 나간다.

한 번 뿜어져 나온 헬캣의 기운은 여왕의 둥지 곳곳으로 뻗어나가며 그가 여기 이 곳에 있음을 알렸다.

-이 모습을 얼마 만에 한 것인지 모르겠네.

오랜만에 드러낸 본체가 어색한 듯 자신의 몸을 둘러보는 헬캣.

어느 새 아까 입었던 상처는 아물어 있었다.

여왕은 여전히 아무런 말도 못 하는 중이다.

헬캣이 뿜어내는 위압감에 질식이라도 된 양 여왕의 얼굴은 밀랍 마냥 굳어 있었다.

-그나저나 너 진짜 이번에는 긴장해야 할 건데. 괜찮겠냐?

-...너 변신계였...나?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의 여왕.

그 모습에 헬캣이 피식 웃었다.

-아~ 하긴 착각할 수는 있겠네. 모습이 바뀌었으니. 실은 이건 아무도 모르는 비밀인데 말이지... 너에게만 알려줄게. 나 강화계야. 너처럼.

각각의 환수들은 자신이 가진 능력에 따라 그 성질이 정해졌다.

변신계, 조작계, 강화계 그 3가지의 종류였다.

변신계는 말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변형시키는 환수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변할 수 있는 모습은 무궁무진했다.

특히나 변신계의 환수들 중 꽤 높은 등급의 환수들은 인간계에 눌어앉곤 하는 녀석들도 있었다.

물론 그것은 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는 환수들 한정이긴 하지만.

그리고 조작계.

여러 가지 신묘한 능력을 쓰는 환수들이다.

헬캣의 말을 빌리자면 뭐라더라?

아~ 사기꾼.

그는 조작계의 환수들을 보며 늘 그렇게 이야기하곤 했다.

잡스러운 기술로 남들을 속이는데 능통한 녀석들이라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강화계.

헬캣이 속해 있는 강화계는 말 그대로 자신의 육체의 강약이 조절한 환수들이었다.

자고로 진정한 환수들이라면 강화계라나 뭐라나.

헬캣은 보통 인간계에서는 물론 환수계에서조차 자신의 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게 편하기도 했고 주목을 끌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고 큰 육체를 유지하기 위해 쓰이는 에너지도 줄이기 위해서였다.

그 덕분에 대부분의 다른 환수들은 헬캣이 원래 어떤 모습인지 아예 모르고 있었다.

아는 건 기껏해야 헬캣보다 상위의 환수들 정도이려나.

그런 그가 여기에서 자신의 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만큼 현재의 여왕이 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는 상대하기 힘들다는 말이겠지.

우두둑- 우두둑-

헬캣이 온 몸의 관절을 풀어대며 다가올 전투를 준비했다.

-자. 한 번 해볼까? 오늘 자이앤트 새끼 한 마리 머리 가슴 배로 삼등분하는 날이다. 차라리 주인들의 감시를 받던 날이 훨씬 좋았다고 생각하게 해줄게.

헬캣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본 모습을 드러낸 이상 필살이지.

꿀꺽-

그런 헬캣의 모습에 여왕이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부지불식 간에 긴장을 한 탓이었다.

기세가 예사롭지 않은 헬캣만 쳐다보고 있는 여왕.

-안 오냐? 그럼 내가 먼저 가지.

헬캣이 움직였다.

그리고 격렬한 둘의 움직임이 불꽃을 튀기기 시작했다.

****

"뭐지? 이 기운은?"

둥지의 깊숙한 곳을 걸어가던 심슨이 멈칫거렸다.

뭔가 좀더 깊숙한 곳에서부터 울리는 기운이긴 한데.

이 기운을 느끼는 것 만으로도 닭살이 돋을 정도로 엄청나게 강한 기운이었다.

그것도 2가지의 기운.

자세하게 알 수는 없지만 그 2개의 기운은 격렬하게 불타오르는 것 같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지?'

그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바로 그때.

쿵-

쿵-

쿠쿠쿵-

둥지가 연신 울려댄다.

투두둑- 투두둑-

천장에서 부스스 떨어지는 흙먼지들.

둥지 전체가 버틸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강한 기운이었다.

게다가 몇 번으로 끝나는 울림이 아니다.

계속 이어진 전투로 지친 기색이 역력한 마수 사냥꾼조차 둥지가 한 번씩 울릴 때마다 몸을 움찔거렸다.

뭔가 틀어져도 단단히 틀어진 게 틀림없다.

"조금만 더 힘내자. 속도를 더 낸다."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남은 마수 사냥꾼들을 격려한 심슨은 그 진동이 느껴지는 방햐응로 향해 좀더 걸음을 빨리 옮기기 시작했다.

****

-헉헉헉. 그만 하자.

숨을 헐떡이며 여왕이 입을 열었다.

여왕의 지금 모습은 처음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이미 2개의 앞다리 중 하나는 저기 처박혀 있고 배를 제외한 부분은 여러 군데 갑각이 깨어진 채 체액이 질질 새어나오고 있었다.

'젠장. 아이만 배지 않았어도.'

으득-

여왕이 이빨을 깨물었다.

자신의 새끼를 배며 그쪽으로 모든 양분을 보낸 탓일까.

여왕이 지금 자신의 눈앞에 당당하게 서있는 헬캣을 이기기는 요원한 일이었다.

게다가 부상도 이미 여러 군데 입지 않았는가.

이 상태대로라면 새끼는 고사하고 자신의 목숨조차 부지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우리가 이대로 계속 싸우면 서로에게 좋지 않은 것 아니겠나? 환수계의 주인들도 우리를 주목하고 있을 것이고 말이야. 주인들에게 찍혀서 좋을 게 없잖아.

-머리 굴리지 마라. 내가 너한테 듣고 싶은 게 좀 많아.

어차피 뻔히 보이는 술수다.

여왕이 지금 자신에게 던지는 그만 하자는 저 말은 시간 벌기에 불과하다.

적어도 헬캣이 지금 느끼는 건 그러했다.

-뭘 듣고 싶단 말이냐? 헉헉.

-네가 일족을 줄이면서까지 인간계로 넘어올 리는 없을 터이고 어느 주인이 네 뒤를 봐줬지?

-주인이 내 뒤를 왜 봐준단 말이냐? 오히려 날 감시하면 감시했지.

-아니야. 내가 보기에는 뭐가 있어. 네 뒤를 봐주는 주인이 누구지? 난 그걸 알고 싶단 말이지. 그것만 들으면 내가 네 제안에 대해 생각을 좀 해볼게.

여왕이 보기에 헬캣은 지금 분명히 자신을 의심하고 있었다.

주인들 중 한 명과 손을 잡고 뒤가 구린 짓을 했다고 말이다.

잠시 생각에 빠지는 여왕.

하지만 없었다.

자신이 나올 때 문이 좀 넓어진 것 말고는 그 외에 이상한 점은 하나도 없었단 말이다.

-없다. 그런 건.

단호한 말투로 헬캣에게 대답하는 여왕이었다.

-거짓말하고 있네. 그럼 좀더 맞아야지. 진실을 말할 때까지.

헬캣이 자신의 앞다리에 힘을 잔뜩 두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가뜩이나 새하얀 앞다리가 더욱 새하얘진다.

여왕의 체액이 잔뜩 묻은 부분을 제외하고는.

파앗-

헬캣이 움직였다.

허공으로 살짝 떠오르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여왕에게 접근하려는 헬캣이었다.

순간.

여왕의 방으로 들어오는 입구와 벽 쪽에서 남은 모든 자이앤트들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대로 헬캣을 껴안는 자이앤트들.

마치 말벌 한 마리를 꿀벌들이 질식사시키기 위해 덤벼드는 꼴이다.

촤악- 촤악-

한 마리 두 마리.

열 마리 스무 마리.

어느 새 헬캣의 모습은 자이앤트들의 육탄 공격에 둘러싸여 아예 보이지 않았다.

잠시 생겨난 소강 상태.

-하...하...하...하하하하!!! 히이이힉! 잘난 척하더니 꼴 좋다!!!

여왕이 귀기 어린 목소리로 마구 웃어대기 시작했다.

죽어버려라!

이 기회에!

하지만 그건 단지 여왕의 희망.

갑자기 자이앤트 무리들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뭔가가 차락 차락 베어지고 콰드득 부서지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퍼어어어억-!!!

제일 위에서 헬캣을 덮고 있던 자이앤트 병사 한 마리의 머리가 큰 소리와 함께 몸통과 분리가 되었다.

그 머리는 그대로 몸에서부터 떨어져 나가며 사정없이 천장에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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