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의 채무 탈출기-97화 (97/249)

#97

자이앤트 여왕(4)

"아니. 시발. 이게 다 어떻게 된 거야!!!"

스고르가 잔뜩 역정을 냈다.

좀전의 갑작스런 습격에 일행의 반수 이상이 줄어버렸다.

그리고 지금 이들은 또다시 앞뒤로 둘러싸여 있었다.

퇴로조차 막혀버린 이 곳.

이미 깊숙이 들어와버린 터라 퇴로도 마땅치 않다.

이런 거지같은...

스고르가 자신의 단창에 기운을 잔뜩 실어 힘껏 앞으로 던졌다.

쌔애애애애애액-

앞으로 날아간 단창은 정확하게 자이앤트 병사의 머리에 푹 박혔다.

끼에에에에에엑-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체액을 뿜으며 뻗어버리는 마수.

그걸로 끝이었다.

탁탁-

자신의 단창을 회수하러 가는 스고르.

갑자기 둥지의 벽 너머에서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의 감각이 엄청나게 위험한 신호가 밀려 들어온다.

'이건?'

"또 온다!"

푸와아악-

순간 벽을 뚫고 치고 들어오는 자이앤트들.

미처 방비를 하지 못한 낮은 등급의 마수 사냥꾼들이 나자빠진다.

집게턱에 물려 허리가 두동강이 나거나 그 충돌의 충격에 반대편 벽으로 날아가는 일행들이 다수다.

스고르도 미처 방어를 제대로 못했다.

그의 온 몸에 전해지는 충격과 함께 그도 반대편 벽으로 그대로 튕겨나갔다.

커헙-

짧은 신음소리와 함께 내다꽂히는 스고르였다.

이런 거지 같은 것들이...

성깔 돋게 하네 진짜.

스고르가 벌떡 일어났다.

재빨리 달려가 자신의 단창을 뽑아든 후 재차 공격을 이어가는 스고르.

어느 새 둥지의 벽을 파헤치고 자이앤트들이 그들을 덮쳐온 것이었다.

또 이렇게 난전이 벌어진다.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오고 곳곳에서 들리는 비명소리.

팔다리가 날아가고 체액이 여기저기 묻는 게 난리에 난리도 아니다.

크아아아악-

또 누가 죽었나보다.

끼에에에에엑-

이번에는 마수도 한 마리 잡았나보네.

"헉헉헉... 이러다가 여기에서 뼈를 묻는 거 아냐? 젠장맞을 거."

숨이 차오른다.

끌려간 이들은 어차피 다 죽었겠지.

하긴 자신들도 자칫 잘못하면 지금 여기에서 뼈를 묻을 것 같은데 거긴 더 지옥이겠지.

그나마 안 끌려간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개 같은 거.

다른 쪽은 괜찮으려나?

랭커들이 있는 곳은 좀 괜찮을 것 같기도 한데.

하지만 아마 상황 자체는 별반 차이가 없을 것 같다.

"하아. 짜증이 막 나네."

팔이 부러진 것 같았다.

가만히 생각하니 짜증이 확 치밀어 올랐다.

"젠장..."

****

타닥- 타닥-

가벼운 발걸음 소리.

-이놈에 둥지 진짜. 뭐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어 놓은 거야?

중얼거리는 자는 다름아닌 헬캣.

자신의 앞발에 묻은 체액을 할짝할짝거리며 핥아대며 중얼거리는 중이었다.

헬캣의 발 밑에는 벽을 뚫고 자신에게 달려든 자이앤트 한 마리의 머리가 박살이 난 채 널부러져 있었다.

현재 그는 여왕에게 곧장 전진하는 중이었다.

좀 내버려두면 좋겠지만 자신을 내버려두지 않는 자이앤트들을 하나하나 상대해 가며.

헬캣의 뒤로는 그가 일일이 처리하고 온 자이앤트의 사체로 가득 덮여 있었다.

방금 자신에게 머리가 뚫린 이 녀석이 이 구역의 우두머리인 듯했다.

다른 녀석들에게 비해 좀더 반항을 하는 걸로 봐서는 말이다.

음...

좀 강하긴 했지.

그래봤자 한낱 환수일 뿐이지만.

-진짜 지겹다 지겨워.

넌절머리가 난다.

불빛을 찾아 달려드는 불나방 마냥 달려드는 것들.

분명히 넘어온 지는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그 사이에 세력을 어찌나 키워뒀는지 원.

아예 작심하고 세력을 키운 듯한 자이앤트들이었다.

달려드는 이유야 뭐 뻔하다.

이 미천한 것들이 자신의 기운을 느끼지 못할 리가 없다.

더군다나 자신은 환수들의 먹이사슬 중 거의 정점에 위치한 자.

자신의 기세를 느낀 자이앤트들이 여왕을 보호하기 위해 더욱 거칠게 달려드는 것이었다.

헬캣은 뒤편에 가득 쌓인 자이앤트들의 시체를 힐끗 보더니 자신의 앞발을 들어 홱홱 내저었다.

사라락-

바람처럼 으스러져가는 사체들.

가벼운 발짓이었지만 그 여파는 절대 가볍지 않았다.

발짓 하나에 좀전까지만 해도 시체로 가득 차있던 둥지의 복도가 텅텅 비어간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그의 뒤로 이어진 둥지는 텅텅 비어갔다.

-그나저나 이 자식은 살아는있겠지?

강해보이는 인간들도 간간히 섞여 있으니 무탈이야 하겠지만 그 기운을 탐지할 수 없는 게 좀 신경이 쓰였다.

-주인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이딴 것들은 통과를 시키면 안 되는 걸 뻔히 알면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말이야.

투덜거리는 헬캣.

자신이 감히 주인들의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있는 자격은 없다.

그래도 자이앤트 같이 위험한 것들은 이 곳에 있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그의 생각이었고 직접 나서게 된 이유였다.

-그나저나... 인간들이 찾기 전에 빨리 잡아야지.

그는 뭔가 생각이 있어 보였다.

잠시 생각에 빠졌던 그는 다시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

체스는 이미 모든 걸 체념한 상태였다.

자신의 눈앞으로 쏜살같이 떨어지는 여왕의 집게다리.

'즐거웠다... 는 개뿔. 아무 것도 못해보고 젠장맞을 거.'

하지만 피할 수 없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조차 없었다.

슈와아아아악-

바람을 가르며 날아드는 여왕의 공격.

순간 체스의 머릿속에 어떤 장면이 다시 펼쳐졌다.

그리고 그 장면은 이내 현실이 되었다.

촤자자자장-!!!

산산조각이 난 유리조각이 비산하듯 그대로 무너져 간다.

여왕이 놀란 눈을 치켜떴다.

-뭐...냐...!!!

작금의 상황에 놀라버린 여왕.

하지만 자신의 결계를 깨어버린 것은 기세를 멈추지 않았다.

조금도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자신에게 달려드는 조그마한 것.

희끄무레한 덩어리 같은 것이었다.

-뭐냐!!!

처음 여왕은 공격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었다.

어차피 그 탐스러운 먹이는 이미 지척.

앞으로 남은 건 몇 센티.

이대로 그 먹이를 쳐죽이고 그걸 취하느냐.

아니면 저걸 막느냐.

둘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저걸 무시하기에는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왠지...

결국 여왕의 선택은 일보 후퇴였다.

황급히 자신의 두 집게를 들어 교차한 후 그 공격을 막아내는 여왕.

퍼어어어억-!!!

굉음이 터져나왔다.

주르르륵-

삽시간에 밀려나는 여왕의 몸.

그 큰 덩치가 작디 작은 것의 공격에 그대로 밀려났다.

크흡-

여왕이 잠시 자신의 앞다리를 내려다 보았다.

다행히 재빨리 막았기에 망정이지 잠시만 선택을 망설였다면 몸통이 뚫릴 정도의 충격이었다.

-젠장... 어떤 놈이냐!

그 사이 자신에게 공격을 가해온 것은 가볍게 바닥에 착지를 했다.

-서...설마 너는...!

여왕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리며 실룩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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