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의 채무 탈출기-96화 (96/249)

#96

자이앤트 여왕(3)

으으으으......

의식을 잃은 채 집게발에 잡혀 끌어 올려지던 체스.

희미한 신음소리와 함께 가까스로 눈을 떴다.

그리고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

과하다 싶을 정도로 빼곡하게 들어선 이빨이 보이고.

자이앤트 여왕의 떡 벌어진 입이 자신의 두 눈동자 가득히 비쳤다.

히이이이익-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해 바둥바둥거리는 체스.

그나마 다행인 건 대검 만은 어떻게든 손에서 놓지 않은 것이라고 해야하나.

체스가 검을 마구 휘둘렀다.

슈왕- 슈왕-

하지만 거리가...

...닿지 않는다.

"이익... 하아..."

쩍 벌려진 여왕의 입이 점점 가까워진다.

역한 냄새가 확 느껴졌다.

하지만 장점이라면 장점인 끈기.

체스는 끝까지 마지막 끈을 놓지 않았다.

그는 먹히기 직전까지 끝까지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

"어엇...?"

아차...

검...

놓쳐버리고 말았다.

자신의 검이 횅횅 회전을 하며 날아간다.

그의 눈은 속절없이 자신의 손을 떠나가는 검을 바라보고 있었다.

워낙 한 손으로 마구 휘두르던 검이라 제대로 쥐지 못했나보다.

마지막 희망이 사라졌다.

슝슝-

여왕의 머리 위쪽으로 홱 날아가버리는 체스의 검.

서겅-

갑자기 뭔가 시원하게 잘려나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여왕이 방금 일어난 상황을 인식하기 위해 일순 자신의 행동을 멈칫거렸다.

......끄어어어어어어어어어아아아아아아아아-!!!!!!

여왕의 날코롭고도 높은 비명이 방 안 가득 울려퍼졌다.

물론 소 뒷발에 걸린 것이겠지만 여왕의 두 개의 더듬이 중 하나가 싹둑 잘려나갔기 때문이었다.

더듬이가 투욱 떨어지는 게 마치 슬픈 영화의 한 장면처럼 천천히 눈에 들어온다.

여왕은 집게다리에 들고 있던 체스를 내동댕이쳤다.

그리고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망연자실한 얼굴을 한 채 땅에 떨어진 더듬이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내...내 더듬이가... 이런...

더듬이를 집어든 여왕의 집게다리가 덜덜 떨렸다.

더듬이.

자이앤트에게 있어 제일 중요한 감각기관이 바로 여기였다.

자신의 모든 감각을 표출하고 모든 감각을 조종할 수 있는 더듬이.

그게 날아가버린 것이다.

저 하찮은 인간의 노림수에.

더군다나 자신은 여왕이 아닌가.

무리를 통솔하고 움직이기 위해서 제일 필요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모든 자이앤트 무리들은 자신의 더듬이에서부터 뿌려지는 페로몬에 따라 움직였다.

그런 더듬이가 하나가 싹둑 날아가 버렸으니.

게다가 태어나서부터 지금껏 단 한 번도 잘려본 적이 없는 더듬이가 아닌가.

-이...찢어죽일 놈...감히...감히...감히...!!!!!!

여왕이 모든 기운을 폭사시켰다.

으윽...

체스가 감히 견딜 수 있을 정도의 기운이 아니었다.

속절없이 날아가 뒤로 쳐박혀 버리는 체스.

-기운이고 나발이고 주...죽여 버리겠다!!!

쿵쾅쿵쾅-

여왕이 미친듯한 속도로 달려왔다.

그리고는 자신의 집게다리를 이용해 그대로 체스를 힘껏 쳐버렸다.

분노에 가득 찬 일격이었다.

퍼어어어억-!!!

큰 소리가 울리고 체스의 몸이 마치 줄이 끊어진 연처럼 공중으로 휘익 날아갔다.

커헙...

다행히 두 팔을 들어 막기는 막았는데...

충격은 그가 지금껏 받아본 그 어느 것보다도 강력한 한 방이었다.

그걸로 끝이면 다행이련만.

끝이 아니다.

여왕은 자신의 네 다리를 살짝 오므렸다.

그리고 그대로 날아오른 체스를 향해 점프를 하는 여왕.

'헉.'

체스의 두 눈에 똑똑히 보였다.

순간적으로 점프를 하는 여왕의 몸이.

그리고 집게다리를 휘두르는 모습까지도.

하지만 막을 수가 없다.

지금 공중에 뜬 상태에서 체스가 할 수 있는 건 단지 온 몸을 최대한 웅크린 채 몸으로 때우는 것 밖에는 없다.

퍼어어어억-!!!

또 한 번 큰 소리가 울렸다.

커허어어어업-

체스가 피를 왁칵 토해냈다.

정신이 아득해져만 갔다.

하지만 정신을 잃는 순간 끝인 걸 알기에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애썼다.

'아...안돼... 정신을 놓치면,,,'

그러나 공격은 끝나지 않았다.

여왕은 자신의 가슴 뒤편에 달린 조그만 날개를 펼쳤다.

위이잉-

그대로 허공에 떠있는 여왕의 몸.

자신의 기운을 집게다리에 그대로 집어넣는 여왕.

일순 여왕의 집게가 짙은 남색으로 물들어 갔다.

가뜩이나 시커먼 여왕의 몸이 더욱 짙어졌다.

그리고는 쉬지 않고 쏟아지는 여왕의 공격.

공격을 받아내는 건 오롯이 체스의 몸 뿐이다.

그나마 방어가 된다고 하면 얄팍한 경량갑옷 정도?

퍼버버버버버버버벅-

전후좌우 가릴 것 없이 여왕의 공격이 쏟아진다.

체스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몸 속의 장기라도 보호하기 위한 팔을 드는 것 정도이다.

끄어어어어...

정신줄이 나갈 것만 같다.

온 몸의 뼈란 뼈에서는 다 아우성을 질러대는데 어찌나 자꾸 정신줄은 가출하려고 하는지...

거기에 여왕이 다시 한 번 힘을 보탰다.

힘없이 떨어지는 자신을 조금이라도 빨리 땅에 닿게 해주려나보다.

공중에 뜬 상태로 다시 한 번 배 부분을 이용해 체스를 정확히 가격하는 여왕.

퍼어어어억-!!!

슈와아아악-

콰다아아아아아앙-!!!

오로지 소리 뿐이지만 어떤 상황이 벌어진 건지 충분히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체스의 몸은 이미 바닥에 거의 파묻혀 있었다.

충격이 상당히 큰 듯 연신 피를 게워내는 체스.

'와씨... 엄청 강하네...'

말조차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가 지금 받은 충격은 지금껏 그 어떤 마수와의 충돌보다도 강력했다.

오히려 지금까지 자신이 했던 그 모든 마수 사냥은 마치 소꿉장난이라고 해두 무방할 정도다.

끄으으...

충격이 어마어마하다.

아예 온 몸의 뼈가 다 부서진 것 같았다.

손가락 하나 꿈틀하지도 못 하겠다.

쿠웅-

여왕이 땅에 무게감 있게 착지했다.

하지만 영 예전의 위압감은 사라졌다.

싹둑 잘려간 더듬이 때문이려나.

여전히 분노에 휩싸인 여왕.

여왕은 네 다리를 이용해 체스에게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감히... 인간 따위가 감히 나의 더듬이를 잘라?

이런 인간 따위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도 분이 풀릴 것 같지 않다.

저 안에 탐스럽게 빛나는 저것만 아니면...

그냥 지금이라도 당장 피떡을 만들어도 시원찮겠구만.

그래도 일단은 분이 풀릴 때까지 쳐야 만족을 하겠다.

여왕은 자신의 집게다리를 힘껏 치켜들었다.

그리고 이내 빛살 같은 속도로 체스에게로 내려찍었다.

슈와아아아악-

체스는 손가락 하나 움찔거릴 힘도 없었다.

피떡이 된 얼굴로 자신에게로 내려쳐지는 여왕의 손만 하염없이 바라보는 그.

'인생 다 부질없다. 시발...'

그리고 집게다리를 힘껏 드는가 싶더니 그대로 힘껏 내려찍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