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의 채무 탈출기-95화 (95/249)

#95

자이앤트 여왕(2)

난감하다.

어떻게 피해야 할 지 감이 오질 않는다.

그는 천장에서부터 스물스물 흘러내리는 산을 망연자실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한 방울씩 뚝뚝 떨어지는 산.

치이익-

쌓여있는 시체에 닿은 산은 그대로 시체의 살로 파고들며 더욱 역한 냄새를 풍겼다.

'아. 이거 어떻게 해야 하나.'

이대로라면 자신 또한 저 꼴이 되는 건 시간 문제.

망연자실한 표정의 체스였다.

체스가 아무리 성장을 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S급의 마수들까지 혼자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 것은 아니다.

본인의 몸에 변화가 생긴 것 정도는 알지만 그걸 제대로 본인 것으로 만들지도 못한 그가 아닌가.

그의 시선은 시체가 쌓여 있는 곳에 향해 있었다.

순간 체스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아!

저기!

다음 생각이 그의 머리를 뒤덮기 전 몸이 더욱 빨리 움직였다.

푸슉-

클링어를 발사해 시체 더미로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는 체스.

그리고 그는 그대로 몸을 그 안으로 슉 파고 들어갔다.

****

-음하하하하하하. 맛이 어떠냐!

의기양양하게 웃음을 터뜨리는 여왕.

여왕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작품을 보며 심히 만족하는 중이었다.

요즘 양질의 먹이를 많이 섭취했더니 딱 봐도 달라진 게 눈에 보인다.

저기 쌓여있는 먹이들이 녹는 속도가 조금 더 빨라졌지 않나.

그리고 잔뜩 쌓인 산.

쌓아만 둬서 뭐해.

한번씩 시원하게 빼줘야지 이렇게.

배 꽁무니가 뭔가 시원해진 감각에 그제야 그간 쌓였던 임신 스트레스가 확 날아가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푸드득- 푸드득-

배에 쌓여 있던 나머지 산을 털어내는 여왕.

'아~ 시워~~~~언하다.'

여왕은 녹아내리는 시체들을 보고 있었다.

여기 쌓여있는 모든 먹이들이 다 녹아내려도 상관없다.

이 모든 것들을 다 합쳐도 그거 하나 만도 못하지 않은가.

바로 그때.

여왕이 무언가에 생각이 미쳤다.

아차-!!!

자신이 강력해졌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 이 먹이들이 다 녹아내린다는 말은 그것 또한 녹아내릴 수도 있다는 말 아닌가?

-안돼!!!

여왕이 자신의 집게를 이용해 반쯤 녹아내린 시체 더미를 마구 파헤치기 시작했다.

설마!

설마!!!

****

순간.

슈욱-

여왕의 시야로 무언가가 날아왔다.

재빨리 고개를 살짝 트는 여왕.

뭔지는 몰라도 그런 얕은 수에 당할까보냐?

하지만 그것은 그저 그런 공격이 아니었다.

시체 더미를 헤치고 땅 속에 파고 들었던 체스가 클링어를 날린 것이었다.

여왕에게로 곧장 날아온 클링어는 고개를 숙인 여왕의 더듬이를 그대로 휘감아 버렸다.

촤락-

히끅.

민감한 더듬이에 무언가 감겨오는 느낌이 들자 여왕이 그것을 떨쳐내기 위해 머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

푸와아아악-

어느 새 땅 속으로 파고 들었던 체스가 녹아내린 시체들 사이로 불쑥 튀어나왔다.

한 손에는 클링어를 조작함과 동시에 한 손에는 대검을 든 채 말이다.

으랴아아아아압-!!!

그의 기운찬 함성이 울리고 체스가 힘껏 대검을 니래쳤다.

바람을 가르며 정확하게 여왕의 머리로 떨어지는 그의 대검.

지금 이대로라면 여왕의 머리가 그대로 조각이 날 판.

하지만 여왕은 다급해하는 기색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순간적인 대응이나 판단력은 칭찬할 만하다.

그래.

나름 강한 건 알겠으나 그렇다고 자신의 생명을 위협할 정도는 또 아니니.

그냥 거기까지인 것이지.

머리의 각도만 살짝 비트는 여왕.

그 까닭에 체스의 검이 여왕의 두껍게 덮인 눈껍질을 강하게 쳤다.

쩌적-

금이 슬쩍 가는 여왕의 눈껍질.

-이이이...이놈이!!!

여왕이 급격한 분노에 휩싸였다.

그 사이 체스는 다행히도 공격이 먹힌 것을 확인하며 바닥에 사뿐히 착지했다.

'먹혔나...?'

손에 감촉은 확실히 있었다.

하지만 바닥을 예상 못했다.

치이이이익-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르며 체스의 신발이 타들어간다.

그가 밟은 곳은 산에 녹아내린 시체가 쌓여있는 곳.

당연히 산이 사라졌을 리도 없다.

어찌나 독한지 거기에 닿은 체스의 신발은 순식간에 녹아갔다.

"어. 이런! 개 같은!!!"

체스가 재빨리 산이 닿은 부분을 벗어 던지려 했다.

하지만 그의 행동을 방해하는 게 있었으니.

바로 화가 머리 끝까지 가득 찬 여왕이었다.

체스의 그런 행동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분노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던 여왕이 자신의 더듬이를 그대로 슬쩍 당겼다.

미처 클링어를 회수하지 못했던 체스였다.

그의 몸이 여왕의 머리 쪽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간다.

퍼어어어어어억-

여왕의 집게턱이 정확하게 올라온 체스를 강타했다.

강한 둔탁음과 함께 그대로 여왕이 만든 기운의 벽 쪽으로 날아가는 체스.

하지만 한 번으로 끝이 나지 않는다.

여왕은 튕겨져 나가는 체스를 다시 당겨 몇 번이고 체스의 몸을 자신의 집게턱으로 강타를 했다.

요요처럼 튕겨져 나가다가도 빠른 속도로 다시 당겨져 오는 체스.

완전 장난감 수준이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개미 한 마리를 죽이기 전에 가지고 노는 느낌이랄까.

체스의 공격이 통한 것은 그저 요행.

지금 이 꼴을 봐서는 오히려 여왕을 자극만 시켰을 뿐 피해를 입히기는 개뿔이다.

그나마 맷집이 좋았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벌써 피떡이 되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공격이었다.

터어어어엉-

체스의 몸이 바닥에 내팽겨쳐졌다.

아직 바닥의 산이 남아있던 탓에 그의 옷이 타들어갔지만 그는 제대로 일어서지조차 못했다.

제법 강한 충격을 받은 듯했다.

몇 번이고 공격을 먹인 뒤에야 그제야 분이 좀 풀리는 듯 더듬이를 숙여 클링어를 잘라내는 여왕.

-버러지 같은 게. 곱게 먹이가 되었으면 편할 것을 어디서 발버둥을 치는 것이냐!

불쾌한 투로 자신의 감정을 여과없이 발산하는 여왕이었다.

하지만 먹이에게서는 아무런 반응이 흘러나오지 않는다.

-죽었나?

자신의 집게다리로 바닥에 널부러진 체스를 툭툭 건드리는 여왕.

아무런 움직임도 없다.

하긴 자신의 산에 닿았으면 그 아픔 때문이라도 벌써 일어나서 온 몸을 비틀어댔겠지.

-그럼 보자. 그건 멀쩡한가?

여왕의 목소리가 나긋나긋해졌다.

이제 식사를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체스의 몸을 살펴보니 그건 멀쩡한 듯 보였다.

여전히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그것.

-좋아. 하긴 그게 이 정도로 박살이 날 리가 없지. 우흐흐흐흐흐흐.

만족스러운 웃음소리를 흘리며 여왕이 자신의 집게다리로 축 늘어진 체스를 들어올렸다.

다른 먹이들이 녹아내린 것 따위 아깝지도 않다.

이 먹이 하나 정도면 그걸 다 채우고도 남지.

아니 오히려 넘칠 정도다.

-자~ 식사 시간이다.

쩌어어어억-

날카로운 이빨이 빈틈없이 가득 찬 여왕의 입이 벌려지며 흥분에 넘실거리는 타액이 번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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