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의 채무 탈출기-91화 (91/249)

#91

자이앤트(10)

끼에에에에엑-!!!

자이앤트 한 마리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통로 안을 가득 채웠다.

체스의 검은 자이앤트의 머리와 가슴 사이 육질이 약한 곳에 반틈 정도 박혀 있었다.

후하-

본인의 힘으로 모든 걸 한 건 아니지만 어쨌거나 해치웠다.

그런데 도르도라 정도보다 훨씬 약해 보이는데 왜 어째서 이게 B급 정도의 마수지?

체스의 머릿속이 의문에 휩싸였다.

"정신 차려라!!!"

멍 하게 생각에 잠긴 체스를 현실로 되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심슨이 체스에게 고함을 친 것이었다.

아차.

퍼뜩 정신을 차리는 체스.

이크-

그때 자신을 정확하게 노린 집게가 양쪽으로 쩍 벌린 채 자신을 향해 쇄도해 왔다.

체스는 재빨리 자신이 잡은 자이앤트의 시체를 디딤판으로 삼아 공중으로 살짝 점프를 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손에서 발사되는 클링어.

퍽-

천장에 클링어가 강하게 박히고 체스는 그 반동을 이용해 그대로 공중에 떠올랐다.

순간 원래 자신이 있던 자리를 서겅 베어가는 집게.

하지만 목표를 잃어버린 집게는 속절없이 두 개가 서로 맞물리며 삽질만 했다.

잔뜩 약이 오른 듯 주변을 두리번 거리는 자이앤트 한 마리.

그리고 그것이 그 마수가 본 마지막 풍경이었다.

퍼어어억-

자이앤트의 머리를 사정없이 꿰뚫어버리는 장창.

일순 늘어난 것처럼 보이는 건 착각이겠지.

체스는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그것을 빠짐없이 보고 있었다.

'역시 잘 하네. 저걸 저렇게 쉽게 해치우다니.'

체스가 감탄을 했다.

하지만 마냥 감탄할 수도 없는 노릇.

어느 새 자이앤트 병사 하나가 자신의 큰 머리를 앞세워 체스가 매달려 있는 천장으로 박치기를 해왔기 때문이었다.

슈우우웅-

재빨리 클링어를 회수해 그걸 피하려고 하는 체스.

순간 체스의 머릿속으로 다시 어떤 장면이 흘러 들어왔다.

그걸 뒤늦게 발견한 자신의 몸이 방어태세를 취하지 못한 탓에 곤죽이 되는 모습이었다.

'헉. 저거 나야...?'

그렇다면 방어를 해야지.

체스가 한 손은 클링어에 매달린 채 나머지 한 손으로 대검을 들어 자신의 몸을 가렸다.

그리고 있는 힘껏 몸을 웅크리는 체스였다.

본능적으로 충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걸 아는 것이겠지.

몸집이 큰 탓에 대검 만으로 모든 몸을 가릴 수는 없었지만...

퍼어어어억-

무자비한 마수의 머리가 체스에게 직격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체스의 몸이 그대로 천장에 박혔다.

흙가루가 후두둑 떨어진다.

체스의 몸은 아예 천장에 박힌 채 떨어질 생각을 않고 있었다.

"뭐야. 이거..."

끙차 힘을 줘봤지만 어찌나 단단하게 박혀버렸는지 쉽게 빠질 생각을 않는다.

역시 자이앤트 병사들은 A급 정도라더니 그 말이 사실인가보다.

일반 자이앤트와 붙을 때랑은 아예 천지가 다른 힘이었다.

하지만 마수의 다음 공격은 이어지지 않았다.

자신의 위기를 본 다른 마수 사냥꾼들이 그 마수에게 달려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휘유~ 잘 싸우네들.'

다이아 등급이라는 심슨 저 자도 굉장하고 나머지 마수 사냥꾼들도 다들 베테랑인지 감탄을 금치 않을 수 없다.

누구 한 명을 봐도 모자라는 이 하나 없다.

되레 자신이 한없이 부족해보일 뿐이었다.

'이거 열심히 해야겠는데...'

하지만 체스는 모를 것이다.

자신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예전에는 상상도 못한 일이 아니었는가.

이런 B급 이상의 마수를 잡는다는 것.

단지 비교 대상이 없어서 자신이 알아차리질 못할 뿐이었다.

그나저나 천장에 박힌 채 바라보니 보는 재미가 또 쏠쏠하네.

직접 움직일 때는 몰랐는데 위에서 보니 마치 무슨 자신이 관객이 된 것만 같았다.

'에이~ 저기서는 저렇게 해야지. 어우. 저 사람은 팔이 아예 잘려버렸으니...'

혼자 관람을 하느라 정신이 없는 체스였다.

콰콰쾅-

순간 심슨의 장창이 체스가 박혀있는 곳 근처의 천장을 사정없이 때렸다.

두두두두 마치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천장 전체가 흔들렸다.

그 덕에 박힌 곳에서 쑤욱 빠지는 체스의 몸.

촤악-

체스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 마냥 멋진 포즈를 취하며 바닥에 착지했다.

'흠. 기술 점수 만점. 퍼포먼스 만점. 좋아.'

"야이 띨띨한 놈아! 뭐하냐! 얼른 전투 안 하냐?"

자이앤트의 체액을 잔뜩 뒤집어 쓴 스고르가 신경질이 가득 난 목소리로 체스를 보며 짜증을 냈다.

'뭐야? 미친 놈이. 왜 다짜고짜 잔소리야.'

어이가 없없다.

천장에 박히기 전까지 맨앞에서 누가 제일 열심히 싸웠는데.

뒤에서 깔짝깔짝하기나 하던 놈이.

화가 확 치밀어 올랐다.

욱한 체스가 뭔가 따지려는 때.

심슨이 체스의 몸을 툭 쳤다.

"잘 하고 있다. 조심해라."

단 두 마디였다.

그리고 그대로 심슨이 눈앞의 자이앤트를 처리하러 달려가는 심슨이었다.

'와씨... 멋지네...'

아까까지만 해도 스고르에게 당했던 거지 같던 기분이 그대로 안정이 되었다.

검을 다시 움켜쥔 체스도 이내 전투에 다시 합류를 시작했다.

그리고 마수 사냥꾼들 대 마수의 전투는 갈수록 더욱 치열해져갔다.

****

후...

그래도 어째어째 끝이 났다.

자이앤트 무리들은 많은 수의 시체를 남긴 채 둥지 안쪽으로 다다다다 물러났다.

"얼른 피해를 봐봐. 남은 사람들 상처도 보고 좀."

바닥은 자이앤트들의 체액과 마수 사냥꾼들이 흘린 피로 흥건했다.

하지만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아직 얼마나 많은 수의 무리가 남아있을 지도 알 수가 없다.

처음의 전투에서 죽은 마수 사냥꾼들의 수를 들은 심슨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패였다.

생각보다 피해가 심했기 때문이었다.

자이앤트 여왕은 몇 명이 함께 뭉쳐도 되겠지만 그 전까지가 문제가 아닌가.

"...거참. 난감하네."

그래도 들어온 이상 매듭은 맺어야지.

부상자들을 뒷 대열로 보낸 심슨은 다시 전진을 지시했다.

그런 심슨에게 문득 체스가 시야에 들어왔다.

체스는 자신의 장비를 다시 동여매는 중이었다.

그에게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심슨.

"내가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지."

"네? 뭐죠?"

갑자기 궁금한 것이라니.

체스는 의아했다.

별로 잘못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그거 어떻게 안 것이지?"

"...무슨 말...?"

"조금 전에 그거 있잖아. 입구 막히는 것도 그렇고 자이앤트 산이 밀려 들어오는 것도 그렇고."

아~

알았다.

처음 자신이 이야기했던 그걸 말하는 것이구나.

그런데 그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어...음... 그냥 머릿속에 보이던데요?"

"보였다고??????"

"네. 그냥 보였어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요."

헬캣이 이야기한 게 있긴 했지만 자세히는 이야기하지 않는 체스였다.

그걸 설명해 봤자 괜히 미친 놈으로 오해받기 딱 십상이지.

아!

그러고 보니 헬캣은... 어디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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