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의 채무 탈출기-84화 (84/249)

#84

자이앤트(3)

"헉헉. 이번에 자이앤트라면 마수 사냥꾼들이 좀 많겠네요?"

체스가 자신보다 한 걸음 정도 앞에서 빠른 속도로 걸어가던 탐색조 중 한 명에게 물었다.

지금껏 별말도 않은 채 묵묵히 따라가던 체스였다.

체스는 지금 숨이 턱까지 차오른 상태였다.

다른 이들은 늘 이런 속도가 익숙한 듯 별다른 말이 없었다.

체스가 질문을 던진 의도는 명확했다.

다리도 터질 것 같고 좀 쉬어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말을 걸면 속도가 조금 늦춰지지 않을까라는 약간 희망을 안고 던진 질문이었다.

하지만 이 사람들.

진정한 프로다.

말을 하면서도 걸음 속도는 전혀 늦춰지지 않았다.

심지어 숨소리조차 평온하다.

'짐승 같은 놈들...'

체스가 숨을 헐떡이며 생각했다.

그때 누군가가 체스에게 대답을 해주었다.

"흠. 좀 많이 왔을 거에요. 저희끼리 이야기하기로는 다이아 등급도 몇 명 참여한다고 하더라구요."

"...다이아 등급도 온다구요? 랭커? 랭커?"

체스가 입을 쩍 벌렸다.

그 사이 여전히 걸음을 멈추지 않던 탐색조가 갑자기 멈춰섰다.

"그렇죠. 이런 데에는 다이아 등급들도 당연히 와야죠. 수가 얼마나 많은지도 모르는데. 아마 자이앤트 둥지 안으로 들어가면 지금 계신 분들 중에 몇 분들 정도는 다시는 못 볼 지도 몰라요."

듣기에 따라 아주 모골이 송연해지는 말이다.

몇 명은 못 볼 수도 있다니.

그 말은 그만큼 위험하다는 말이 아닌가.

하지만 체스에게는 다이아 등급이 온다는 말이 더욱 구미가 당겼다.

"......그 정도인가요? 다이아 등급이라니..."

다이아 등급의 마수 사냥꾼들은 몇 명 되지도 않았다.

한 명 한 명이 전부 한 시대를 풍미할 정도의 강자였으니.

하물며 수많은 마수 사냥꾼들 정도에서 정점에 꼽히는 자들이었기에 과연 몇 명이나 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이 온다는 것은 즉 생각 이상으로 비상사태라고 밖에는 거들 말이 없었다.

"그렇죠. 그만큼 사태를 엄중히 여긴다 뭐 그 말이겠죠. 아마 뭐 실버 등급 정도시면 그래도 잘만 하시면 비비기 정도는 하실 수 있겠죠."

"전 아직 아이언 등급인데... 저도 좀 비빌 수 있겠죠?"

"네?????? 아이언 등급요? 에이~ 장난하시는 거죠?"

탐색원 중 한 명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자이앤트 무리를 사냥하는 일이 애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언 등급이라니.

탐색원이 아벤 쪽을 힐끗 보았다.

"...라이손 성에서 참가하는 마수 사냥꾼들은 전부 실버 등급으로 알고 있었는데 아닌가요? 이 무슨 말도 안되는..."

서류를 마구 뒤지는 탐색원.

분명히 의뢰를 할 때 국가에서 엄선해서 의뢰를 한다고 했는데.

그래서 그만큼 위험한 일이니 어중이떠중이들은 다 빼고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마수 사냥꾼 조합에도 특별히 말을 했다고 들었었다.

그런데 뭣이라?

이번에는 다이아 등급의 마수 사냥꾼까지도 참가할 정도인데 고작 아이언 등급이 여기에 참가를 한다니.

탐색조들이 체스 쪽을 뚫어져라 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고개를 절래절래 젓는다.

보상을 노리는 불나방인가보지.

게다가 혹여나 살아난다면 확실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가.

뭐...

본인 생명이고 본인의 삶이니 알아서 하겠지.

자신이 간섭할 일은 아니니.

"여하튼 저희는 여기까지입니다. 저기 막사들 보이시죠? 저기에 아마 나머지 마수 사냥꾼 분들이 모여있을 겁니다."

"아 그래요? 고생하셨어요."

아벤이 모두를 대표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네. 저희야 뭐 여기까지니까요. 부디 이번 일이 끝나고 모두를 다시 뵐 수 있으면 좋겠네요."

그 말을 끝으로 탐색조들은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그들이 사라지는 것을 보며 아벤과 모두는 막사가 잔뜩 세워져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이미 약 많은 수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 같았다.

수백여 명은 될 듯한 규모다.

"가자."

아벤의 말을 필두로 그들은 막사로 향했다.

****

"그런데 그 고양이는 어디까지 데리고 가는 거죠?"

마리안느가 드디어 체스를 향해 첫 입을 열었다.

실연 당한 이후 처음이다.

말을 안 걸자니 계속 서먹할 것만 같고 저 고양이도 자신의 신경을 너무 자극시켰다.

라이손 성에서 출발할 때부터 쭉 붙어있던 앵앵이가 아닌가.

도대체 얼마나 고양이를 아끼길래 줄곧 데리고 다니는지도 몹시 궁금했다.

저 고양이를 챙기는 것 반만이라도 자신을 좀 챙겨주면...

그녀의 입가에 처량한 미소가 미묘하게 맺혔다.

그때.

"아. 앵앵이요? 실은 이 녀석 데리고 온 이유가 따로 있어요."

"그게 뭔데요?"

"이 녀석 좀 능력이 있는 녀석이에요. 마수의 기척을 미리 느낄 수 있어요."

에??????

모두의 시선이 앵앵이에게 집중이 되었다.

-아...나... 이 자식. 날 팔아먹네.

체스의 말에 어이없다는 듯 야옹거리는 헬캣.

그러나 체스는 헬캣의 말이 들리건 말건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차피 헬캣이 이야기하는 건 자신 밖에 알아들을 수 없으니.

"그래서 여기까지 데리고 온 거에요. 조금이라도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을 올려야 하니까요."

"아~ 그래서 그렇게 데리고 다니는 건가보네요. 그런 고양이가 있다니. 저도 좀 데리고 다니고 싶긴 하네요."

"이 녀석. 엄청 비싼 것만 먹고 다녀요~ 아마 데리고 다니면 지갑 텅텅 비는 것 정도는 감당하실 수 있어야 할 걸요?"

찌릿-

-이런 개새...

헬캣이 매서운 눈초리를 체스에게 쏘아보냈다.

그 눈초리를 고스란히 받아내는 체스의 등에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식은땀이 주륵 흘렀다.

지르기는 했지만 막상 뒤끝이 좀 걱정이 되기는 했다.

그런 그를 구제해준 건 경계를 서고 있던 마수 사냥꾼 무리였다.

어느 새 그들이 모여 있는 막사 앞에 도착한 것이었다.

"멈춰라."

****

4개의 다리를 빠르게 움직이며 자이앤트 한 마리가 그들의 둥지 속으로 들어왔다.

그 마수는 자신의 동료들은 곧장 지나쳐 어디론가 향했다.

샤샤샥-

그의 빠른 걸음에 다른 그 어떤 자이앤트들은 제지하지 않았다.

그를 멈추게 하기에는 그의 더듬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페로몬이 1급 경계태세임을 알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이앤트가 도착한 곳은 자신들의 여왕을 지키는 머리가 몸통의 2배 만한 호위가 2마리 있었다.

[무슨 일이냐?]

그 자이앤트를 멈춰세우는 호위들.

호위들은 아무리 자신들의 동족이라고 한들 쉽게 여왕에게 접근시킬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급한 일입니다.]

[그게 뭐지?]

[인간들이 쳐들어 왔습니다. 여왕께서 좋아하시는 맛있는 기운을 가진 인간들인 것 같습니다.]

일순 바빠지는 호위들의 더듬이.

서로 간의 생각을 교환하는 듯 보였다.

잠시 후.

[그건 여왕께 직접 전해드려라.]

호위들이 살짝 길을 열어주자 자이앤트는 여왕에게로 재빨리 발을 놀렸다.

여왕은 여전히 식사 중이었다.

방금도 막 고치 하나를 먹어치운 여왕이었다.

피가 뚝뚝 흐르는 턱을 쩍 벌린 채 말을 하는 여왕.

[뭐냐? 내가 원하는 맛있는 걸 가져왔느냐? 정찰조가 여기에 왔다는 말은 무언가 성과를 가져왔다는 말이겠지?]

[그렇습니다. 여왕님. 잠시 더듬이를.]

[흐음...]

여왕이 자신의 더듬이를 살짝 내렸다.

그러자 마수가 자신의 다리를 뻗어 더듬이를 쭈욱 늘렸다.

처음으로 맞대보는 여왕의 더듬이가 아닌가.

마수의 다리가 흥분으로 부들부들 떨렸다.

이윽고 둘의 더듬이가 맞닿아지고.

그리고 더듬이가 맞닿는 순간 여왕은 희열에 벅차올랐다.

태어난 이래 이렇게 희열을 느낀 적이 있었던가.

정찰을 다녀온 자이앤트가 알려주는 소식.

자신이 원해 마지않던 것이다.

[오오오오오오오~~~]

자이앤트 여왕의 더듬이가 파르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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