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심사 후(11)
험험-
아벤이 헛기침을 했다.
"미안하오. 원래 이런 일은 우리도 처음 겪는 일이라."
"괜찮아요. 뭐 그럴 수도 있죠."
갑작스레 마리안느가 기절을 해버리는 바람에 한바탕 소란을 치른 이들이었다.
놀란 마음에 부랴부랴 마리안느를 깨웠더니 그녀의 입에서 다짜고짜 나온 말은 더욱 가관이다.
"...어리면 뭐 어때. 저랑 사귀어 주세요."
"네???"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휘둥그레진 체스의 두 눈.
'뭐야. 이 여자.'
그리고 아벤 일행 또한 마찬가지였다.
'얘가 이런 캐릭터였나...?'
아벤이 다소 황망하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구애를 하는 마리안느는 본 적이 없는 이들이다.
하긴 그건 그럴 수 밖에 없다.
그녀의 저 높은 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을 정도의 남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이리 보나 저리 보나 체스 정도면 그녀의 기준에 딱 맞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는 아벤이었다.
"싫은데요?"
명백한 거절이었다.
순식간에 주변의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고개를 살짝 떨군 마리안느.
그녀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왜...죠?"
"저 아세요? 잘 모르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만나나요? 그리고 무엇보다 전 연상은 별로라...시ㄹ..."
촤라라라-
체스의 머릿속에 갑자기 다음의 장면이 펼쳐졌다.
마리안느가 주먹을 날리고 자신이 그걸 막고 주르륵 밀려나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냅다 의뢰소를 나가는 마리안느의 모습까지.
거기에서 체스의 머릿속에 그려진 장면은 끝이 났다.
'뭐. 뭐야 이게?'
화들짝 놀란 체스.
바로 그때 마리안느의 주먹이 바람을 가르며 체스에게 날아들었다.
방금 그의 머릿속에 보인 것과 같은 장면이었다.
퍼어억-
커헙-
그리고 뒤의 장면이 그대로 체스의 눈앞에서 펼쳐졌다.
그녀의 주먹에 뒤로 주르륵 밀려나는 체스.
다른 이들은 말릴 새도 없었다.
"다 싫어!!!!!!"
고함을 꽥 지른 마리안느가 의뢰소를 그대로 달려나갔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뭘 어찌할 것도 없었다.
게다가 엉겁결에 두들겨 맞은 체스.
지금 이 곳에서 제일 황당한 건 체스 바로 그였다.
"...뭐야. 왜 때려. 저 여자..."
****
이제야 좀 정리가 된 의뢰소 안.
"그래서 왜 부른 거요?"
"아차. 정신이 없어서 그만. 일단 앉아요. 줄 것도 있고. 아까는 죄송했습니다. 애가 원래 그런 애가 아닌데."
"쩝... 뭐... 그럴 수도 있죠."
홱 달려나가 버린 마리안느를 대신해 아벤은 체스에게 사과를 한 후였다.
기분은 당연히 나쁠 수 밖에 없는 체스였다.
영문도 모른 채 순전히 일방통행의 감정으로 인해 두들겨 맞았으니.
그래도 좀 이해는 갔다.
자신이라고 그녀와 별반 다른 처지가 아니었으니.
그래서 체스는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간다는 듯 거기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체스는 일단 팔을 주므르며 아벤 일행과 마주 보고 앉았다.
헬캣은 여전히 테이블 위에서 뒹구는 중이었다.
잠시 그를 본 체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체스와 눈이 마주친 아벤.
"일단 줄 것이 있소."
"???"
서로 딱히 거래를 한 적이 없는 걸로 아는데.
체스가 빤히 아벤을 쳐다보았다.
"자. 여기."
아벤이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영롱한 빛을 뿜어내는 그것.
마정석이었다.
"이건???"
"그때 도르도라의 마정석이오. 원래대로라면 그대의 것이 될 수 없지만 이번은 좀 예외의 상황이라. 그래서 직접 전해주라고 하더군요."
응???
이게 웬 굴러 들어온 떡이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수익이었다.
B급 마수의 마정석은 지금껏 손에 넣어본 적도 없던 체스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그건 다른 마수가 튀어나오는 바람에 그렇게 된 것 아니오?"
체스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게다가 B급의 마정석.
저 비싼 것을 그냥 덥석 넘겨주다니.
얼마나 가격이 나갈지 감이 오질 않았다.
그래도 준다는데 넙죽 받아도 되련만 이놈에 성질머리가 참...
납득이 가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는 성격 때문에 지금 이렇게 반문하는 자신이 자신에게 이해가 가질 않는 체스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괜히 어딘가에 휘말리는 것은 또 아닌가 의심도 들기도 했다.
또 이걸 빌미로 뭔가 요구사항이 있을지도 모르고 말이다.
"하하하. 이미 마수 협회 측이랑도 모든 얘기가 끝난 것이오. 그리고 우리가 가져봤자 이걸 어디에 쓰겠소?"
'약올리나? 지금. 빚에 허리가 끊어질 정도구만.'
부들부들-
역시 상위의 마수 사냥꾼들은 다 돈에 깔려 죽을 정도로 부자라더니...
아벤의 말에 체스가 일순 발끈할 뻔했지만 평정을 유지한 채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흠... 그렇다면 이건 내가 받겠소."
생각지도 못한 횡재에 내심 기분이 좋아진 체스.
"가져가도 되오. 조합에서 그리 결정한 것이니."
그럼 이게 이제 내 것이란 말이지?
하지만 겉으로 그런 표정을 드러내지는 않는 체스.
그는 프로니까.
"아... 뭐 주는 것이니 감사히 받겠습니다."
말은 머뭇거리는 듯했으나 행동만큼은 빨랐다.
순식간에 테이블에서 자취를 감춘 마정석은 체스의 가방 안으로 그대로 슉 빨려 들어갔다.
'뭐야. 기다렸다는 듯이 가져가네.'
아벤은 황당하다는 듯 체스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심 한 번 더 거절하길 바랬건만.
어쨌든.
"어험험. 그리고 승급 심사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들었을 것으로 압니다만 보류가 나온 건 아시죠?"
"아. 네. 그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쪽이랑 같이 의뢰를 한 번 하는 걸로 평가를 한다는 것도 들었습니다."
"네. 맞아요. 실은 그래서 일주일 뒤에 국가에서 의뢰가 들어온 게 있습니다만..."
말 끝을 흐리는 아벤.
"있는데요?"
"그게 좀 위험할 수도 있어서 내키지 않으시면 그 다음에 좀 편한 의뢰를 함께 해도 된다는 것이죠."
"위험한 마수인가요?"
"흠. 위험하다고 할까. 무리로 움직이는 마수라 아무래도 그럴 수도 있죠. 저희도 직접 의뢰를 받은 건 처음이라서요."
그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A급 마수인 듯하다.
에둘러 말하기는 했지만 자신들이야 괜찮겠지만 체스에게는 무리가 있지 않겠냐는 뭐 그런 말이었다.
하지만 찬 밥 더운 밥 가릴 처지가 아닌 체스였다.
그런 것이라면 무조건 찬성이지.
게다가 빚을 갚으려면 난이도가 높은 의뢰일수록 자신에게는 더욱 유리하지 않겠는가.
"할게요."
체스의 시원한 대답이었다.
"혹이 붙었네. 피할 줄 알았더니..."
아벤이 중얼거렸다.
"네?"
"아~ 아니에요. 그럼 같이 하는 걸로 하시죠. 일단은 알겠습니다. 자세한 건 따로 알려드릴게요."
"네. 그렇게 하시죠. 그럼 이야기는 다 끝난 걸로 알고 돌아가볼게요."
"아. 하나 더."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서려는 체스를 아벤이 붙잡았다.
"그나저나... 저 마리안느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게 누군데요?"
"방금 그 여자요."
"모르는 사람이에요."
더 이상 거기에 대해 말을 하지 말라는 의미다.
"아... 네. 그 얘기는 없는 걸로 하죠. 그럼 일주일 뒤에 보죠."
"네. 그럼 이만."
체스는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자리를 떠나는 기스의 한 마디.
"결혼이 이렇게 어렵다."
아벤과 나머지 일행을 남겨두고 떠나는 기스의 짧은 한 마디였다.